하승창 ‘씽크카페’ 대표와의 인연은 대학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 초·중반 기자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대학생회에서 활동할 때 저자는 경실련의 상근 활동가였다. 우리는 그들을 ‘간사’라고 불렀다. 그들은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다. 당시 참여연대는 막 태동하던 시기였고 경실련의 전성기였다. 경실련은 금융실명제를 주장해 관철했고 정부도 하지 못한 한약 분쟁을 중재해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한 시사주간지는 영향력 조사를 통해 ‘경실련, 군보다 세다’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내보내기도 했다.

시민단체들의 두 번째 전성기는 2000년 총선시민연대가 ‘공천 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할 때였다. 명단을 발표하자 유력 정치인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수도권에서는 명단에 오른 정치인 90%가 낙선할 정도였다. 현실 정치에 실망했던 많은 국민이 시민단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이런 관심을 바탕으로 시민단체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런 시민운동의 전성기에 저자는 굵직굵직한 프로젝트의 실무자로 참여하며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승창 제공하승창씨는 여전히 시민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힘이 가장 커졌을 때 시민운동이 기울기 시작했다. 시민단체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의 견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니 ‘명망가 위주의 시민운동’ ‘언론 플레이에 의지한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각종 뉴라이트 단체들이 만들어져 보수 성향의 시민운동을 시작했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들은 권력의 중심부까지 파고들었다.

하승창 대표는 전형적인 시민운동 1세대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하다 시민운동에 투신해 경실련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함께하는 시민행동’으로 분가해서 예산 감시 활동에 집중했다. 예산을 낭비하는 지방자치단체나 국가기관에 ‘밑 빠진 독’상을 수여해 크게 주목받기도 했다. 시민단체 리더들이 현실 정치에 뛰어들 때도 함께했다.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와 2012년 안철수 대선 후보 캠프에 주요 스태프로 참여했다.

시민운동의 산증인인 그가 사반세기를 넘어선 우리 시민운동사를 정리했다. 〈나의 시민운동 이야기〉는 그가 이슈의 현장에서 경험하며 관찰한 것과 시민운동에 대한 각종 조사연구 자료를 망라해 정리한 시민운동사다. 저자는 이미 2001년에 〈하승창의 NGO 이야기〉를 펴낸 적이 있는데 이번에 그 후 14년 동안의 이야기를 더해 새로이 시민운동사를 정리했다.

잠시 정치 외도를 하기도 했지만 저자는 여전히 시민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는 “지금 중요한 변화는 세상을 바꾸는 방법, 바꾸는 주체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변화와 관련한 열쇳말을 들자면, 개인·네트워크·공유·협력 같은 것이다. 사회적 경제 영역, 협동조합 관련 이야기들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한국 사회의 변화를 위한 의제 만들기에도 주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날로그 네트워크를 넘어

시민운동 진영에서 저자는 네트워크 전문가로 꼽힌다. 2009년 ‘희망과 대안’, 2011년 ‘내가 꿈꾸는 나라’ 등 시민운동 협의체가 만들어졌을 때도 주축으로 활동했다. 특히 저자는 시민단체 활동가끼리의 아날로그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민과 직접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활동에 집중해왔다. ‘씽크카페’와 같은 소통 플랫폼을 만들어 젊은 세대와도 적극적으로 만난다.

책의 뒷부분은 청년들의 활동을 소개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청년학교 담임으로 관계를 맺은 청년들의 성장과 변화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을 통해 새로운 흐름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희망을 본다. 현재의 주된 정치세력들과는 직접적 관련이 적지만 마을과 청년 등 새로운 흐름의 성장은 새로운 정치의 토대가 되어줄 것이라 본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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