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으로 재벌 3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그런 가운데 색다른 이유로 관심을 끄는 또 다른 재벌 3세가 있으니,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차남 조현문 변호사다. 그는 지금 아버지로부터 집안과 회사에서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국내외를 전전하고 있다.

최근 효성그룹 취재 과정에서 그가 국내 한 로펌을 거쳐 기자에게 보내온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A4 용지 7장에 빼곡히 적힌 내용은 효성그룹 오너 일가와 일부 전문경영인의 비리에 대한 장문의 고백이자 고발이다.

ⓒ시사IN 양한모

글은 “저는 수년간 그룹의 투명 경영과 정도 경영을 위해 조현준, 조현상의 불법행위를 방지하고 바로잡는 일을 해왔습니다”로 시작한다. 조현준, 조현상은 각각 효성 사장과 부사장을 맡고 있는 조 변호사의 형과 동생이다. 편지에는 효성그룹 심장부에서 벌어진 불법 비리 행위와 연루자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그 비리를 바로잡으려다 아버지에게 쫓겨났다고 주장하며 부자간의 대화 내용도 상세히 공개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한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고 재벌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우리 집안은 오히려 시대를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MB 사돈으로 낙인찍혀 정권이 바뀌면 반드시 손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데도 이에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대놓고 회삿돈을 빼내는 불법행위들을 주간 회의까지 하면서 노골적으로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룹에 큰 재앙이 올 것이며 망할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

듣고 있던 아버지는 이렇게 답한다. “너는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다.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내 눈앞에서 나가고 집안을 떠나라. 집안만이 아니라 그룹에서도 당장 떠나라. 네 발로 안 나가면 내가 너를 쫓아낼 테다.” 부자가 이 대화를 나눈 시점은 2011년 여름으로 기록돼 있다.

ⓒ연합뉴스 조현문 변호사(가운데)는 조현준 사장(왼쪽)과 조현상 부사장(오른쪽) 관련 회사의 경영진을 고발했다.

아버지의 불호령 끝에 효성에서 쫓겨난 둘째 아들의 경고 사이렌은 그대로 적중했다. 지난해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은 1조원대 분식회계와 4000억원대 조세 포탈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고령에 암 투병 중이라는 이유로 구속은 면했지만 항간에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조 회장이 한때 뒤를 봐준 장학생이었다는 설이 파다했다. 김앤장 소속 변호사 군단의 철벽 방어도 한몫했다.

그룹과 집안에서 내쳐진 조현문 변호사는 지난해 검찰 수사 와중에 형과 전문경영인들이 연루된 부정 비리 내역을 적어 고발장을 제출했다. 효성그룹에서 조 변호사에게 ‘패륜아’라고 주홍글자를 붙인 이유다. 역사는 이 재벌 3세를 어떻게 평가할까.

기자명 정희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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