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26일 동남아를 덮친 쓰나미는 30만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갔다. 그 가운데 스웨덴 사람이 543명(16세 미만 아동 및 청소년 122명)이었다. 대다수가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타이의 파라다이스로 불리는 카오락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이었다.

이 쓰나미 참사는 유가족뿐 아니라 스웨덴이라는 국가에도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타이 현지에서 구사일생한 피투성이 생존자들이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던 그 순간, 스웨덴 중앙정부는 사실상 책임을 방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스웨덴 총리였던 예란 페르손은 역대 총리들의 휴양지 하르프순드(Harpsund)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내각을 통해 참사 보고를 받고 15시간이 흐를 때까지도 휴양지에 그대로 머물렀다. 외무장관이었던 라일라 프레이발스는 참사 소식이 쏟아지던 사고 당일 저녁 태연히 연극을 관람하러 갔다.

스웨덴 민간에서 조직된 봉사단은 참사 이후 하루 만에 카오락 현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스웨덴 정부의 대응팀은 3일이 지난 후에야 꾸물거리며 나타났다. 정부 차원의 지원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진 것은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AP Photo2004년 12월26일 타이 푸껫(위) 등 동남아를 덮친 쓰나미는 3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참사는 스웨덴에도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정부의 부실 대응이 알려지자 스웨덴 시민사회는 분노로 들끓었다. 스웨덴 정부 역시 과오를 거듭 인정했다. 무엇보다 스웨덴 정부는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유가족에 대한 위로를 표명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했다. 그리고 변화를 위한, 늦었지만 단호한 조처에 착수했다. 먼저 범국가적인 재해위원회를 조직해서 각종 재해에 대한 스웨덴의 취약점을 철저히 조사하고 대처 방안을 제출하도록 했다. 직무 방기의 책임을 물어 라일라 프레이발스 외무장관과 라슈 다니엘손 국무차관을 해임했다.

2006년에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상시적 위기 대응 및 비상사태 수습’ 시스템을 갖추도록 의무화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스웨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 사고와 자연재해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국가적 체계가 새롭게 정비되었다.

동남아 쓰나미 이후 ‘비상대기 시스템’ 마련

새로운 제도의 예로는 ‘비상대기 시스템’을 꼽을 수 있다. 해외 체류 중인 스웨덴 시민이 자연재해나 테러 등으로 위험에 빠졌다는 ‘위기 신호’가 감지될 경우 스웨덴 정부는 6시간 안에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각 분야 전문가 250명을 현지에 파견해야 한다.

그러나 참사의 상처가 쉽게 아물 리 없다. 동남아 쓰나미 사태로 부모와 자식, 배우자, 연인, 친구를 잃은 수많은 이와 생존자들의 애절한 이야기가 매년 참사 주기 때마다 미디어를 통해 국민들에게 환기된다.

쓰나미 참사 10주기인 지난해 12월26일, 스웨덴의 웁살라 대성당에서는 정부 및 왕실의 수장들과 유족,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이 열렸고,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스테판 뢰프벤 총리는 추도식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참사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에게는 정신적 지지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같은 날 타이 주재 스웨덴 대사관은 카오락에서 ‘희생자 및 유족들을 위한 추도식’을 거행했다. 이 추도식에 참여한 스웨덴 아동·노인·양성평등부 장관 오사 렝네르는 2004년 12월26일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스웨덴 역사의 어두운 날이었습니다. 절망과 슬픔,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기자명 스톡홀름·신미성 (스톡홀름 코뮨 유치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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