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4년이 지났다. 폐허가 된 바닷가 구 시가지에는 복구 작업으로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쓰나미로 파괴되어 철근 골격만 남은 구조물들도 그대로 앙상하게 남아 있다. 새 건물과 철근 구조물의 대비가 오히려 4년 전의 참사를 생생히 증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참사가 휩쓴 뒤 남은 구조물을 둘러싼 논쟁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일본에서 피해 구조물은 산 자에게 재해의 참상과 교훈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여겨진다. 전국에서 피해 구조물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다. 가족이나 동료를 잃은 주민들에게는 진혼과 기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피해 구조물을 보존하자는 의견이 많다. 그들은 쓰나미의 엄청난 파괴력을 타인과 후대에 전하는 것이 살아남은 이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보존파’들이 영감을 얻은 ‘기억의 장소’가 여럿 있다.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 1995년 한신 대지진으로 파괴된 고베, 2007년 대규모 지진 피해를 당한 니가타 등이다. 특히 니가타 고고모(木籠) 지구에서는 파괴된 가옥 아홉 채를 보존하고 있다. 지자체장이 “부수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니까 일단은 남겨두자” “우리들의 경험을 전국에 알려 똑같은 피해를 줄여보자”라며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재해 이전의 마을 사진과 당시 신문기사를 전시하는 시설이 생긴 덕분에 하루에 200여 명의 다른 지역 사람들이 견학을 오기도 한다.

ⓒ연합뉴스평화의 상징이 된 히로시마의 원폭돔(위). 상업전시관이었는데 1945년 히로시마 원폭으로 돔만 남았다. 20년의 논의 끝에 보존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 구조물들을 보존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벽이 많다. 먼저 유지비 문제다. 재해 이후 존속 자체가 위태로운 지자체로서는 구조물 관리에 항구적으로 경비를 지출할 여력이 없다. 중앙정부의 지원도 초기 경비를 제외하면 기대하기 힘들다.

정말 심각한 벽은 유족과 재해민들의 반대다. 일본 미야기 현 게센누마(氣仙沼) 마을은 동일본 대지진 당시 쓰나미에 휩쓸려온 대형 어선 교토쿠마루 18호를 보관하고 있었다. 쓰나미의 상징으로 간주되어 보존과 폐기 논쟁이 일었다. 그러나 2013년 8월에 결국 해체하고 만다. 주민들의 심리적 부담을 고려한 결과였다. 일부 주민이 폐어선을 볼 때마다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나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고 호소했던 것이다. 이처럼 재해 구조물들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환기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보존 여부를 결정할 때 유족 및 재해민들의 감정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이시마키(石巻) 시 같은 곳에서는 폐허가 된 초등학교의 보존 여부를 두고 주민들 사이에서 설문조사(해체, 일부 보존, 보존) 등의 방법으로 여론을 수렴한다.

참사 체험을 전하는 일본의 ‘가타리베’ 문화

여전히 가설주택 등에서 생활하는 주민이 많은 지역에서는 추모시설이나 기억의 보존을 논할 처지조차 아니다. 재해민이라고 해도 피해 정도와 현재 상황이 천차만별이라 조속한 합의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서 논의는 하되 성급한 결론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평화의 상징이 된 히로시마의 원폭돔(원래 상업전시관이었으나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대부분 파괴되고 중앙의 돔만 남았다) 역시 보존을 결정하기까지 20년간 논의를 거쳤다.

반면 재해민과 유족 가운데 재해의 기억을 적극 보전하고 전승하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일본에는 가타리베(語り部)라는 문화가 있는데, ‘말을 전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유족 및 재해민들이 스스로 ‘참사의 가타리베’로 나서 자신의 체험을 전하고 슬픔을 이겨나가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을 딛고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일본 전역을 다니며 원폭 참상을 전하는 가타리베 구실을 해왔다. 3·11 동일본 대지진의 가타리베들도 활동을 시작했다. 지진 대비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마다 달려가, 아들을 잃은 체험과 교훈을 이야기하는 어머니들이 있다. 이시마키 시 등에서는 조직적으로 ‘가타리베와 함께하는 재해지역 투어’를 진행 중이다. 지난 3년 동안 400여 단체, 5000명 이상의 소방단, 의원, 교사, 언론, 기업, 해외 시찰단, 일반 가족 등이 이 행사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후쿠시마 현 후타바마치(双葉町) 중심가 입구에 걸려 있는 ‘원자력, 밝은 미래의 에너지’라는 핵발전소 광고 간판을 영구적으로 현장 보존해달라는 서명이 전국에서 진행 중이다. 핵발전소의 재가동 움직임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핵의 위험성과 인간의 어리석음을 후대에 전달해서 같은 사고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간판을 보존하자는 주장이다. 보존 요청을 한 오누마 유지(大沼勇治) 씨는 표어를 만든 당사자다. 1988년 초등학교 6학년 때 그 표어로 우수상을 받았지만, 지금은 임신한 아내와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그는 이 간판을 철거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핵발전소를 옹호한 자신의 행위에 책임감을 느낀 오누마 씨는 철거 반대운동을 주도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간판 철거는 잘못된 과거를 외면하는 행위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도쿄·이령경 (릿쿄 대학 겸임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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