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부 류젠차오 부장조리(차관보급)의 3월16일 방한은 역효과만 불러온 것 같다.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주한 미군 배치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는 “중국의 관심과 우려를 중요시해달라”고 점잖게 얘기했지만, 그를 만난 외교 당국자들은 그로부터 내정간섭에 가까운 불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3월17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주변국이 우리 국방안보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 된다”라고 반감을 드러낸 것이 그런 기류를 반영한다. 외교부가 나서면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어서 국방부가 대신 나섰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정부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지난해부터 사드 문제에 대한 중국의 반응이 상당히 노골적이다. 정부로서도 여기서 더 밀리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국의 3040세대가 강대국 의식이 심하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중국의 이런 태도가 계속되면 굳이 친미 보수 성향이 아닌 외교안보 관계자들도 베트남이나 필리핀의 처지를 눈여겨보게 되리라는 것이다. “미국이 자리를 비우면 곧바로 중국이 치고 들어올 텐데, 그 역시 고달픈 일이다”라는 문제의식이다.

ⓒ연합뉴스방한한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물론 정부가 사드 문제에 대해 ‘제안도 논의도 결정도 없다’라던 3무(無) 대응에서 공론화 단계로 방향을 틀어가고 있는 것이 꼭 중국의 태도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미국에서 오는 유무형의 압박이 더욱 심하다. 외교 소식통들은 “미국은 한국이 결국 사드를 배치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미국의 요구가 아니라 한국이 요청하는 형식을 취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미국식’이다. 이를 위해 압박도 드러나지 않게 한다. 외교가에서 “3월16일 방한한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핵심 메시지는 사드를 배치하라는 것과 5월에 모스크바에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라는 얘기가 흘러나오지만, 공식적으로는 어떤 논의도 없었다고 부정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잠행도 이제는 끝물이다. 다음 달 중순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통합국방협의체(KIDD) 고위급회의에서 ‘사드 등 주요 현안’이 안건으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방한한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
사드 배치는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거대한 지역 패권국 옆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미국과의 동맹 유지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지금까지 보여준 한국 정부의 대처 능력으로 볼 때 과연 사드의 원천봉쇄가 가능한지도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대책 없이 최선만 주장하다 막판에 몰려 홀라당 뒤집어쓰는 것보다, 협상에 대비한 논점과 요구 사항을 미리미리 정리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협상의 기본은 가장 많은 이익을 보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를 분명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사드 배치가 과연 누구를 위함인가 하는 것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한·미 당국의 공식 견해는 사드 배치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한국과 미국 본토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3월17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사드 배치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억제책과 대응책 관점에서 비롯된 사안”이라고 했고, 대니얼 러셀 차관보 역시 “북한의 점증하는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따른 위협에서 한국과 한국 국민,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두 가지로 나눠보자. 먼저 북한의 핵미사일이 남한을 겨냥한 경우다. 이는 중단거리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한 때라 할 수 있다. 일부 안보 전문가는 “지금 개발 중인 한국형 MD는 요격 고도가 5~15㎞밖에 안 돼 의정부쯤에서 맞히게 되지만, 사드는 150㎞ 상공에서 요격하기 때문에 북한 지역 내에서 타격이 가능하다”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얘기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한 방송 인터뷰에서 얘기했듯이, 미사일의 초당 속도가 4㎞인 점을 감안하면 평양에서 서울까지 1~2분이면 도달한다. 그 안에 상대방의 미사일 발사를 탐지하고 식별해 발사 결정을 내리고 요격까지 하는 건 불가능하다. 더구나 사드는 포대당 2조원에 이르는 가격에 비해 성능 검증조차 안 된 무기체계다.

사드의 한국 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미국이 즐겨 내세우는 논리가 북한 미사일의 ‘남극 항로’ 발사설이다. 북한은 그동안 주로 북극 항로를 이용해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는데, 이 경우 일본 아오모리와 교토의 X밴드 레이더로 포착이 가능해 미국이 대비할 수 있다. 그러나 2012년 12월 발사한 장거리 로켓은 한국의 서해-제주도, 서해-필리핀-남극 항로로 날아갔기 때문에, 한국의 오산이나 평택에서 막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미사일이 괌에 이르면 고도가 300㎞ 이상 높아져 대기권 밖으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미군이 조사한 사드 배치 후보지들의 공통점

이 또한 사드의 한국 배치를 위한 명분을 강화해준 측면은 있지만, 아직 몇 개인지도 불투명한 북한의 장거리 로켓(ICBM)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 안에도 4개밖에 배치되지 않은 초고가의 장비를 갖다 놓는다는 것은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적절치 않다. 미국은 요즘 오히려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추진하는 중이다. 3월12일자 〈워싱턴 타임스〉는 “미국 정부가 지난해 12월 쿠바와 국교 정상화 협상을 추진했던 것처럼 북한과도 관계 정상화를 위해 비밀리에 협상을 모색 중이다”라고 밝혔다. 〈시사IN〉과 통화한 한 안보 전문가는 “한·미 훈련에 대해 그렇게 난리를 피우던 북한이 사드에 대해서는 형식적 대응에 그치는 것만 봐도 사드의 주요 타깃이 북한이 아니라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그래픽
그럼 누가 타깃일까? 의외로 쉬운 데서 답을 찾을 수 있다. 3월12일자 국내 언론이 보도한 미군의 사드 후보지 관련 기사다. 지난해 초부터 5개월간 미군 관계자가 한국을 수차례 방문해 사드 후보지를 조사한 결과, 평택 기지 외에 강원도 원주시와 부산 기장(김해공항 인근)이 유력 후보지로 검토됐다고 한다. 여기에 최근 언론에 오르내린 대구까지 합하면 모두 다섯 군데다. 이 가운데 평택을 제외한 네 곳은 의외의 장소들이다. 사드가 북한의 중단거리 핵미사일로부터 한국 방위를 위한 것이라거나 남극 항로로 날아가는 장거리 로켓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기존 주장들과 무관하게 모두 동해 연선 지역에 위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중국 연안이나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 극동함대에서 일본으로 날아가는 중거리 미사일을 막기 위한 지형적 조건을 갖춘 곳들이다. 다시 말해, 그동안 한·미 당국이 설명해온 것과 달리 사드의 궁극적 목적은 중국과 러시아의 미사일로부터 일본을 방어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美 국방부 미사일방어국고고도 방어 미사일 ‘사드(THAAD)’ 시험 발사 모습.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렇게 일본 보호에 열심일까. 워싱턴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지금의 미·일 관계를 1949년 중국 공산화 직후의 아시아 냉전기에 비유해 설명했다. 아시아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이 주일 미군 주둔을 영구화하고 일본 재무장을 서둘러 냉전의 방파제로 삼았듯이, 지금은 중국·러시아와의 신냉전 구도 속에서 이들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일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사드를 도입해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편속시키려는 전략적 의도라는 것이다. 아베 정권하의 일본 우익은 틈만 나면 주일 미군을 철수시키고 군사 자립화하겠다는 야망을 불태워왔는데, 사드는 바로 이 같은 일본의 이탈을 막으며 미국의 동맹으로서 역할을 충실하게 만드는 강력한 기제라는 것이다.

한국은, 냉전 시대 일본 방위를 위한 대소련 전초기지였던 것처럼 이제 신냉전기를 맞아 또다시 중국·러시아의 미사일로부터 일본 방위를 위한 전초기지 노릇을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으로는 이 과정에서 한국을 중국·러시아에서 갈라치기해 한·미·일 동맹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부수적 효과도 노린다. 그사이 불거질 수 있는 한국의 불만은 군 위안부나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이 한 발짝 물러서는 쪽으로 유도해 잠재우겠다는 것이 미국의 노림수라는 것이다. 미국이 사드의 한국 배치와 한·일 관계 개선을 패키지로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일본은 일본대로 여전히 워싱턴을 무대로 한국이 ‘이미종중’(離美從中:미국을 떠나 중국을 따른다) 하고 있다며 열심히 이간질해 미국 당국자들이 골머리를 앓는다.
바로 이것이 사드의 한국 배치를 둘러싼 국제 형세다. 이 상황에서 우리 외교부가 주장한 대로 국익을 극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처럼 “사드가 북한 핵미사일로부터 한국과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벗어나지 않을 경우 국익 극대화는커녕 엉뚱한 비용 부담만 뒤집어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어떻게 포장하든 협상 과정에서는 사드가 일본 방위 목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한국의 비용 부담 명분이 사라진다.

‘사드 배치’를 두고 따져야 할 네 가지 조건

그러고는 하나씩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우선으로 중국·러시아와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사드에 수반하는 X밴드 레이더의 탐지거리 문제다. 일반적으로 X밴드 레이더는 탐지거리 2000㎞인 전진배치형과 유효 탐지거리 600~1000㎞인 종말단계형으로 나뉜다. 중국이 실제로 염려하는 것은 중국 내륙 깊숙이 있는 전략 폭격기나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 같은 전략무기 동향이 미국에 탐지될 경우다. 따라서 탐지거리가 짧은 종말단계형의 경우 이런 우려는 줄일 수 있다. 중국 정법대 문일현 교수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이지스함이 이미 1000㎞까지 탐지 가능하기 때문에 종말단계형 정도면 중국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5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릴 러시아 전승기념일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번 대니얼 러셀 차관보 방한 때도 미국이 박근혜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반대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한국에 사드 배치를 요구하면서 모스크바에도 가지 말라는 것은 사실상 일본 보호를 위해 한국이 북한·중국·러시아와 최전선에서 맞서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주권국가로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다. 사드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오히려 박 대통령이 모스크바로 날아가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을 설득하고 양해를 구하는 게 마땅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미국이 이것까지 방해하는 건 그야말로 주권 침해다. 그렇잖아도 최근 워싱턴 내에서 “미국이 한국 내 친미 보수 세력을 앞세워 너무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다 한국이 폭발해 반미로 돌아서면 큰일이다”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사드의 한국 배치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일본 역시 상응하는 보상책을 내놓아야 한다. 한·일 국장급 회의에서 위안부 문제에 살짝 성의나 표시하고 아베 담화를 중립적으로 바꾼다고 해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미국은 사드 한국 배치를 계기로 한·일 관계 개선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한·일 관계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독도나 과거사 문제에는 미국도 책임이 있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담보로 일본을 보호할 생각이라면, 차제에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고 과거사 문제도 명확히 해결하겠다는 선언을 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중국이나 러시아 심지어 북한도 한국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사드 배치를 절대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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