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국 배치를 노골화하는 가운데, 사드가 배치될 경우 한국은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군사 대응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동안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중국의 반발만 주로 부각되었는데, 러시아 역시 중국 못지않게 사드를 자국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보고 있었다.

러시아의 이 같은 강경 태도는 지난 2월26일 알렉산드르 티모닌 주한 러시아 대사가 국제한민족재단(상임의장 이창주)이 초청한 오찬 모임에 참석해 문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날 한 참석자가 “중국은 수도인 베이징이 서울과 가깝기 때문에 사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이해된다. 그러나 러시아는 모스크바가 서울에서 매우 떨어져 있는데도 사드를 반대하는 이유가 뭔가”라고 질문했다. 

ⓒ美 국방부 미사일방어국2011년 미국 미사일방어국이 하와이에서 사드 발사를 실험했다.

티모닌 대사는 “사드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은 현재 한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라고 운을 뗀 뒤, 사드 배치에 대한 러시아의 인식을 소상하게 밝혔다. 그는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국경지대에서 군사 위협을 가하면 이에 대응하는 것은 국제 안보의 주요 원칙이다. 수도인 모스크바의 위치와 상관없이 사드의 적용 범위는 러시아 국경을 넘어 영토 깊숙이까지 포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미 미국의 MD(미사일 방어)에 맞설 만큼 충분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맞서 러시아의 ‘반격’이 시작되면 (한반도를 포함한) 이 지역의 긴장은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극동 지역이 새로운 긴장 지역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러시아가 사드의 한국 배치를 안보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받아들이며 따라서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그가 언급한 ‘새로운 긴장 지역’이라는 표현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러시아는 이미 미국이 유럽에 배치한 MD에 맞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있는 최전선 도시 칼리닌그라드에 최대 사거리 500㎞의 이스칸데르 전술 미사일을 실전 배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발트 3국, 독일·폴란드 등이 러시아 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들어가 있다. 그런데 극동 지역이 새로운 긴장 지역이 된다는 말은 이곳에 사드가 배치될 경우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가 이를 공격하기 위해 미사일을 배치하는 등 군사적 태세를 갖춰나갈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시사IN 남문희알렉산드르 티모닌 주한 러시아 대사(위)가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드러냈다.
2012년 푸틴 대통령 재집권 이후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한 극동태평양군 전력을 급속히 증강해왔다. 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그동안 이를 예의 주시해왔으며, 그 와중에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사드 시스템의 필수요소인 X밴드 레이더 감시범위(1000~3000㎞)에 극동태평양군도 자연스레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 그런 사실을 러시아 측이 간과할 리 없다. 따라서 역으로 한국도 러시아 극동태평양군의 공격 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티모닌 대사의 얘기는 바로 그런 정황을 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미국이 한국에 사드 배치를 감행할 경우 한국은 중국의 경제 보복과 군사적 대응뿐 아니라 러시아의 군사 대응이라는 십자포화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될 공산이 크다. 미국은 사드 배치에 대해 그동안 북한의 위협을 거론해왔으나 이는 유럽 MD 체제 구축의 명분으로 이란과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핑계 대는 것만큼이나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국에 대한 북한의 주요 위협 수단이 장사정포라는 점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설혹 북한의 핵미사일이 새로운 위협 수단으로 등장했다고 한들 남북한처럼 종심이 짧은 지형에서 사드로 그것을 막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실질적인 내막은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 간 군사 분쟁의 연장선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중·일 간에 국지적 분쟁이 일어날 경우 중국은 해·공군력에서 여전히 일본 자위대에 비해 열세로 알려졌다. 따라서 초전에 제공권과 제해권을 상실할 경우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동풍-21D를 비롯한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주일 미군 기지와 일본 열도 전체가 타격 범위에 들어간다.

이 경우 적기지 공격능력(미사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일본 자위대는 미군에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미군은 오하이오급 잠수함 4대를 동원해 동중국해 바깥에서 순항미사일 수백 발로 중국 연해 지역의 미사일 기지를 초토화시켜 제압한다는 것이 그동안의 시나리오였다.

사드 한국 배치가 급부상한 까닭

그런데 지난해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다. 중국이 오하이오급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순항미사일을 막는 새로운 방패를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2016년부터 중국 연안에 배치될 계획인 러시아제 최신 방공미사일인 S400 시스템은 매우 뛰어난 방공요격 능력을 갖추고 있어 미국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순항미사일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유사시 중국의 미사일 공격에서 미국이 일본 열도를 보호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Vitaly V.Kuzmin Military Blog 갈무리2016년부터 중국에 배치될 방공미사일 S400.

물론 이 S400 시스템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미국 잠수함이 한국 영해인 서해안으로 파고들어 오거나 평택 등 주한 미군 기지에서 베이징을 겨냥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거리가 너무 짧아서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한국의 지정학적인 위치가 다시금 중요하게 떠올랐다. 지난해 7월 시진핑 주석이 집권 후 처음으로 북한이 아닌 한국을 방문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해석됐다.

사드 시스템의 한국 배치 역시 이때부터 어젠다로 급부상했다. 과거 MD의 경우에는 한국 정부가 이를 도입하느냐 마느냐가 쟁점이 됐던 데 비해 사드는 처음부터 미국이 주한 미군 기지에 배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유사시 주한 미군 기지가 베이징 등 중국의 주요 도시를 공격하는 전초 기지가 될 경우 이를 보호할 방위 시스템으로서 사드가 절실해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 법정대 문일현 교수는 최근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한국에 있는 주한 미군이 중국 본토를 공격할 경우 중국이 중단거리 미사일로 견제해야 하는데 사드가 배치되면 중단거리 미사일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미국이 패트리엇에 이어 사드까지 (극동에) 들여오게 되면 미국의 대중국 군사 개입력은 굉장히 높아지는 반면 중국의 억제력은 현저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라 시진핑 주석까지 나서서 극렬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종합해보면 사드의 한국 배치는 서쪽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군사적 충돌, 동쪽으로는 러시아 극동태평양군과 일본의 충돌 과정에서 한국이 일본을 보호하기 위한 최전선 공격 기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칫하면 일본 때문에 중국·러시아의 군사 공격으로부터 우리가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국은 한국에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면서 그 이유를 합리적으로 대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나 한·미 연합군 사령부의 한국군 장성들은 ‘사드 찬성’을 외치고 있다.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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