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되 삶을 잊게 하는 집.’ 이번 호에 소개하는 ‘한칸집’을 설계한 건축가 김개천이 던지는 집에 대한 화두다. 필자는 여기에 덧붙여 이 집은 ‘삶을 잊음으로써 다른 삶을 살게 하는 집’이라 말하고 싶다. 이 집 주인 이내옥 관장의 이야기가 딱  그렇다.

몇 년 전 어느 날, 집주인은 건축가에게 도연명의 시집을 건네며 조선 선비의 사랑방처럼 작고 검박한 집을 지어달라고 의뢰했다. 이후 집터로 고른 이렇다 할 것 없는 시골마을 어귀에 ‘한칸집’이 들어서니, 시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것이 아리송하다. 이 집은 작은 듯 커다랗고, 낮은 듯 높다랗고, 뭉친 듯 뻗었고, 내려앉은 듯 솟구친다.

한칸집은 3m×3m의 정사각형을 가로세로 각각 세 칸씩 이어 붙여 만든 아홉 칸짜리 집이다. 건축가는 이 아홉 칸을 움직이는 문으로 구획해 칸의 경계를 넘나들게 했다. 집 전체를 감싸는 ㄷ자로 꺾인 바닥과 벽, 지붕 아래 열두 개의 기둥을 세워 아홉 칸을 구획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투명한 창문을 달아 내부와 외부의 경계도 영역도 느껴지지 않도록 했다. 81㎡의 아홉 칸은 일순 커다란 한 칸이 되기도 하고, 각각의 칸이 또한 온전한 한 칸이 된다. 그래서 한칸집이다.

ⓒ박영채위치:경기도 양평 / 대지 면적:390㎡(118평) / 연면적:81㎡(24.5평·데크 포함 120㎡) / 구조:중목 구조 / 마감 재료:외벽-시멘트보드, 지붕-무근 콘크리트+사질양토, 내부-지정벽지 마감+온돌마루 / 시공사:㈜하우징플러스 / 코디네이터:㈜하우스스타일 / 준공 연도:2014년 / 건축가 김개천(국민대 조형대학 교수):‘선(禪)의 건축가’로 유명한 김 교수는 동국대 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강원도 인제 만해마을, 전남 담양 정토사 무량수전, 서울 양천구 국제선센터 등 ‘비우는 건축 미학’을 선보였다.

제일 뒷줄 세 칸은 침실과 욕실과 드레스룸으로, 사적인 영역이다. 중간 칸들은 다실과 출입구와 거실로 완충적인 영역이고, 제일 앞 칸은 주방과 식당, 서재가 자리 잡았다. 9칸의 가장 가운데에 자리 잡은 다실은 움직이는 문을 다 열면, 네 기둥으로 구획되어 둘러싼 모든 것을 끌어들이는 하나의 중심이 되고, 네 개 문을 다 닫으면 밝고 안온한 빛으로 가득 찬 오롯한 영역으로 존재한다. 벽과 문과 창이 있는 여느 방과는 달리, 벽과 문과 창이라 부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방이라니! 다실 밖의 칸들은 또 어떤가. 집은 온통 유리로 둘러싸여 열려 있지만, 세 면으로 내뻗은 처마가 드리우는 그림자 속에 몸을 감추어 편안하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넘나들며, 스스로 열린 중심이 된 장소의 힘이다.

경계를 넘나들어 ‘임의적’이며 ‘유보적’이고 ‘무규범적’인 집. 이 집의 가장 중요한 설계 개념이기도 하다. 건축가는 이를 두고 ‘지적인 태도를 가늠하게 하는 척도’라는 모호한 말을 남겼다. 아마 자신의 경험과 인식의 한계 아래 자신을 묶어두지 않고, 인지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그 너머의 우주적 관심에 대한 지적 태도를 말하는 듯하다. 대체, 집이 이것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수위실 설계’로 만난 건축주와 건축가

집주인은 오랫동안 박물관에 근무하며 청주·공주·춘천 등 지역 박물관 관장을 지내온 공무원이다. 건축가와의 첫 만남도 범상치 않다. 청주박물관 관장 시절 수위실을 증축하게 되었는데, 이 박물관이 돌아가신 한국 근대건축의 거장 김수근이 설계한 비범한 건물이라 수위실이라 할지라도 누구에게 설계를 맡겨야 할지 심사숙고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심 끝에 수위실은 김개천 교수의 설계로 지어졌고, 이후 두 사람은 이런저런 문화 프로젝트의 파트너로 서로를 신뢰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차에 은퇴를 앞두고 건축가에게 자신의 은거(隱居)를 설계해줄 것을 부탁해 만들어진 집이 바로 한칸집이다. 미술사학자이기도 한 이내옥 관장이 평생 모은 귀한 도록과 관련 서적들을 후학에게 나누어주고, 빈 몸으로 머물기 위해 지은 집. 이 집의 독특한 건축 형식은 그에 걸맞은 집주인의 삶의 형식과 만났을 때 존재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삶은 자질구레한 일상의 물건과 추억과 사건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예술은 그것을 가볍게 뛰어넘어 삶을 확장시킨다. 건축가는 집주인이 은자의 삶을 이야기할 때, 오래 보아온 그 삶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했다. 그래서 이 집이 은퇴나 여생, 노후와 같은 현실의 이야기를 품어내면서도 이를 훌쩍 뛰어넘어 집주인의 삶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기를 바랐다. 무한히 변화하는 형식은 그 삶의 형식과 맞닿아 있다. 주인의 삶은 이 집의 형식과 만나 무한히 변화하며, 홀로 거하되 스스로가 있는 곳을 세상의 중심이 되게 하고 있다.

ⓒ박영채이 집의 아홉 칸은 움직이는 문에 따라 커다란 한 칸이 되기도 하고 각각의 칸으로 나뉘기도 한다.

한국미술사학자인 집주인이 전한 이 집에 대한 또 다른 설명에 따르면, 고대 중국 건축에서는 아홉 칸 집을 명당이라 불렀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앞 세 칸 중 가운데 칸을 명당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는 주로 이 명당 칸에 앉아 사색하고 독서하고 책을 쓰면서, 하루를 보낸다. 이곳은 사방이 막힌 곳 없이 틔어 있는 데다 경계를 넘어 허공에 떠 있는 길게 낸 퇴 덕분인지, 얼마 전 본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우주 좌표의 어느 지점 같기도 하다.

건축가는 건축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으러 다니던 젊은 시절과 정해진 답 없이 자유로움을 구가하던 때를 지나 이제 자신의 건축에 대해 무언가를 드러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즈음 이 한칸집을 만들게 됐다고 말한다. 건축가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건축 밖의 건축(Back Out of Architecture)”이라 설명했는데, 스스로를 무어라 규정하지 않으며 기능을 해석하지도 않는, 건축 밖에 존재하는 건축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류는 주변의 공간을 내부화해 왔지만, 건축가는 “외부가 된 내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외부적 삶”에 관심을 보이며 다시 외부로 돌아가는 건축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집주인은 한칸집이 작고 검박한 집이기를 바랐지만, 이 집이 한편으로는 무척 화려한 형식이기도 하다는 필자의 의견에 건축가는 동의했다. 한칸집에 대해 건축가는 자연의 화려함을 빗대어 그것은 생명과도 같이 화려하다고 했다. 건축은 자연처럼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지닐 때 화려함으로 승화되는데, 그것이 인문적이고 예술적인 힘을 가진다는 것. 그런 집이야말로 “삶의 무대이자 피안으로, 삶을 살되 삶을 잊게 하는 집”으로서 우리 삶을 확장시킨다.

기자명 김주원 (하우스스타일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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