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m에서 70m까지, 남들보다 높은 곳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이들이 있다. 경북 칠곡에서는 한 해고 노동자가 회사와 노조가 모두 떠나 텅 빈 공장의 굴뚝 위에서 일곱 달째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어느덧 한국 노동문제의 상징이 된 경기도 평택의 쌍용자동차 공장 굴뚝 위에도 노동자 두 사람이 올라 절박함을 호소한다. 서울 한복판, 광화문의 전광판 위에는 협력업체 노동자 두 명이 올라가 있다. 이들은 좁디좁은 전광판 위에서도 동료들이 매일 저녁 여는 문화제에 함께하고자 허벅다리에 밧줄을 묶는다.

높은 곳에서 새해를 맞아야 하기에 보통 사람들보다 아주 조금 먼저 2015년의 첫 해를 보게 될 이들 이야기를 〈시사IN〉이 들어봤다.

 

12월22일, 오늘도 열세 발자국 제자리걸음

ⓒ시사IN 신선영
경북 칠곡군 스타케미칼 공장의 45m 굴뚝에 해고 노동자 차광호씨가 서 있다.

1년 중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짓날인 지난 12월22일. 차광호씨(44)는 구름이 껴서 해를 한 시간 반밖에 보지 못했다. 그는 해가 몇 분간 나는지를 정확히 기억한다. 새들이 움직이는 시간대도 정확히 알고 있다. “오후 5시15분에서 20분께 해질 무렵에 새떼가 한꺼번에 날아가거든요. 그때가 그림이 제일 멋지게 나와요.” 일곱 달째 하늘만 바라보며 살고 있는 그는 45m 굴뚝 위의 해고 노동자다.

차씨는 경북 칠곡군에 있는 폴리에스테르 원사 제조업체 스타케미칼에서 해고당했다. 스타케미칼의 전신은 옛 한국합섬의 자회사인 HK 2공장인데, 한국합섬은 2007년 파산했다. 충북 음성에 본사를 둔 스타플렉스가 2010년 10월 공장을 인수하면서 이름을 ‘스타케미칼’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한 차례 해고된 차씨와 동료들은 꼬박 5년을 싸워 2011년 3월에 복직했다. 이제 고생 끝인가 했더니 2년도 안 되어 두 번째 시련이 닥쳤다.

2013년 1월, 회사는 폐업을 선언하며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차씨를 포함한 228명이 근로계약 종료를 통보받았다. 새로 구성된 노조 집행부는 1인당 위로금으로 평균 800만원씩을 받고 권고사직을 받아들였다. 2014년 5월26일 노조는 ‘회사의 자산 매각에 일체의 방해 행위도 하지 않는다’고 합의한 후 공장을 떠났다. 차씨를 포함해 12명만이 권고사직을 거부했고 상대가 사라진 싸움을 시작했다.

5월27일 새벽 3시, 차씨는 텅 빈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 올랐다. 처음엔 밤낮이 바뀌었다. 무섭기도 하고 경찰에 끌려갈까 봐 두렵기도 했다. 굴뚝에서 여름과 가을, 겨울을 나면서 차씨는 시간표에 맞춰 하루를 규칙적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오전 8시, 오후 1시, 오후 5시30분에 동료가 밧줄로 올려주는 밥을 먹는다. 남는 시간에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오후 3시부터 저녁까지는 지름 8m쯤 되는 굴뚝 위를 서성인다.

비닐 천막을 제외하고 차씨가 움직일 수 있는 폭은 열세 걸음 남짓. 그 길을 농성 날짜만큼 왔다 갔다 한다. 굴뚝 농성 210일째였던 12월22일에는 210번 왕복해 47분이 걸렸다. 앉았다 서기, 제자리 뛰기, 팔굽혀펴기도 날짜만큼 한다. 농성이 길어질수록 차씨의 운동 시간도 길어진다.

수도권의 싸움과 경북 칠곡의 싸움은 분위기가 다르다. 공장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중재를 시도하려 해도 대상자인 ‘사측’이 없는 상황이다. 모회사인 스타플렉스 앞에서 조합원들이 상경 투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쉽지 않다.

노조나 정당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는 것도 아니다. 회사 측과 합의했던 노조 집행부가 금속노조 구미지부였다. 지난 12월9일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이 스타케미칼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지만, 그 당은 해산됐다. “노조 상근 활동가는 기획력과 조직력이 있어야 하는데, 제가 글쓰기가 젬병이에요. 그런 탓도 있겠죠.” 차씨는 자신의 능력을 탓한다. 여론이 주목하는 쌍용차 노조가 은근히 부러운 눈치다. 그는 글쓰기 연습으로 매일 밤 페이스북에 일기를 쓴다.

결혼을 했고 아이는 없다. 18번째 결혼기념일(11월2일)에도, 44번째 생일(12월14일)에도 그는 굴뚝에 있었다. 결혼기념일을 아내와 같이 보내지 못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그래도 매일 저녁 8시에 통화한다. 음치이지만, 응어리가 쌓일 때마다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른다. 소변이 담긴 페트병 120개를 쌓아 바람막이 벽을 만들어서 버틴다. 농성 89일째와 187일째에 ‘희망버스’가 온 덕분에 고비를 겨우 넘겼다고 차씨는 말한다. “기약이 없죠. 하지만 밑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올라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올라와서 삶의 의미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돼요. 이건 저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12월23일, 굴뚝으로 출장 간 아빠

ⓒ이창근씨 페이스북
쌍용자동차 공장 내 70m 굴뚝에 오른 이창근·김정욱씨(왼쪽부터).

지난 12월23일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인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41)과 김정욱 사무국장(43)이 쌍용차 평택공장 내 70m 높이 굴뚝에 오른 지 11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 굴뚝은 2009년 파업 당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3명이 86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당시 식사와 물품을 올려주던 도르래 자국이 아직 선명히 남아 있다. 왜 회사 안 굴뚝이었을까. 11월13일 대법원이 2심을 뒤집고 ‘쌍용차 정리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이창근 실장은 말한다.

“첫날은 너무 정신이 없어서 눈물도 나지 않았어요. 언론 담당이니 입장문도 쓰고 기자들과 통화도 하고 했는데, 사실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요. 다음 날 해고자들 대화방을 봤는데 너무 조용한 거예요. 화를 내는 게 정상일 텐데 굉장히 불안했어요. ‘지친 마음에 포기하고 싶은 날도 있지만 그날이 오늘은 아니다’라고 쓴 칼럼 마지막 단락을 동료들에게 보내면서 많이 울었어요. 그동안 안 해본 거 없지만 또다시 뭐라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끝장이다 싶었어요. 위치를 좀 바꾸면 에너지가 생기지 않을까? 공장 안에 들어가서 동료들 곁에서 호소하는 방법이 가장 좋을 수 있겠다…. 그래서 굴뚝을 생각했어요.”

두 사람은 눈이 내리던 12월12일 새벽, 펜스를 넘어 공장 안 굴뚝에 올랐다. “올라와서 어떤 멋있는 말을 할까, 사측과 정부가 뜨끔해할 말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어요. 다 올라와 짐을 부리고 턱 주저앉았을 때, 그저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해고자들이 강한 걸 증명하러 온 게 아니라, 이렇게 연약한 사람들이라고.” 그날 저녁 8시 넘어 암 투병 중이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 박 아무개씨가 숨졌다는 얘기가 들렸다. 정리해고 이후 떠나보낸 동료와 가족이 26명째다.

아내에게는 미리 얘기했지만 아이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아이가 아홉 살인데, 그 또래 언어로 설득할 수 있는 단어를 마땅히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어디 멀리 출장 간다’고 얘길 했지요.” 하지만 아들 주강이는 아빠가 굴뚝에 오른 그날부터 아팠다. 결국 닷새 뒤 엄마가 얘기했다. 이날 굴뚝 밑을 찾은 이창근씨의 아내 이자영씨(41)는 “사실을 말하니 제 눈은 쳐다보지 않고 ‘아, 그렇구나’ 하더라고요. 밤마다 소리 내서 같이 기도하고 있어요. 공장에서 차 만들게 해달라고요”라고 말했다. 이날 이씨는 남편이 알아볼 수 있게 빨간색 벙어리장갑을 끼고 손을 높이 흔들었다.

ⓒ이창근씨 페이스북
하루 두 번 올라오던 식사는 12월30일부터 세 끼로 늘었다.

‘우리를 구해줄 사람은 회사와 동료들밖에 없다’며 굴뚝에 올라간 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배우 김의성씨가 지난 12월15일부터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에 들어갔다. 가수 이효리씨는 12월18일 트위터에 “쌍용 신차 티볼리가 많이 팔려서 회사가 안정되고 해고되었던 분들도 복직되면 정말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티볼리 앞에서 비키니 입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라고 썼다. 슬라보예 지젝, 놈 촘스키, 그리고 쌍용차를 인수한 마힌드라의 고국인 인도 출신 석학 가야트리 스피박에게서 연대사가 도착했다.

쌍용차 회사 측도 계속되는 여론 압박에 부담을 느끼는 눈치다. 두 사람이 굴뚝에 올라간 직후인 12월15일 회사 측은 두 사람의 농성을 “비상식적 불법행위”로 규정하면서 “절대 타협하지 않고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경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12월24일 낸 소식지에서는 “고공 농성 해제를 전제로 노조(현재 쌍용차 노동자들이 속한 기업노조)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측과 대화가 이뤄지고, 그 이후 노조가 중심이 돼 회사와의 3자 간 대화를 요청한다면 이에 대해 회사는 긍정적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다”라고 한발 물러선 의견을 냈다.

이창근 실장은 “대화하려고 올라왔는데 ‘내려오면 대화하겠다’는 건 말이 맞지 않는다. 언 홍시에 바늘도 안 들어갈 소리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면도를 하고 머리도 감으며 회사와 대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이 굴뚝에 오른 날부터 굴뚝 밑을 해고자 20여 명이 24시간 돌아가며 지키고 있다.

어둠이 정점을 찍고 짧아지기 시작한 12월23일, 굴뚝 위에는 반가운 선물이 올라왔다. 공장 안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 뜻을 모아 패딩 점퍼 두 벌을 보냈다. 이창근 실장은 이 선물을 받고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자랑 좀 하려고요. 공장 안에서 일하는 몇몇 분이 돈을 모아 겨울용 점퍼 두 벌을 올려주셨네요. 사무직 분도 있고 정년 얼마 남지 않은 분들이 마음을 모아줬습니다. 모두 2009년 해고되지 않았던 분들. 따뜻합니다.”

12월24일, 산타는 전광판에도 오실까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24일 서울 광화문. 패딩 점퍼를 맞춰 입은 커플이 하늘을 올려다보다 깜짝 놀란다. “어머, 저기 사람 있어!” 이날은 유선방송업체 씨앤앰의 협력업체 노동자 임정균(37)·강성덕(34)씨가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파이낸스빌딩 앞 전광판에 오른 지 43일째 되는 날이다. 전광판 아래에서는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 조합원 20여 명이 집단 단식 3일째를 이어갔다.

ⓒ시사IN 신선영
30m 높이의 전광판에는 강성덕·임정균씨(왼쪽부터)가 산다.

크레인을 타고 30m 높이 전광판 위에 올라가 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폭이 좁아 제대로 다리를 펴고 서 있을 수 없었다. 조합원들이 내려다보이는 인도 쪽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진다. 휘청 하면 떨어지겠다는 아찔함이 느껴진다. 전광판 위에는 난간이 없다.

복병은 또 있다. 아래에서는 견고해 보였던 전광판이 바람에 따라 조금씩 흔들렸다. “배 탄 것처럼 흔들린다”던 임씨의 말이 꼭 맞았다. 멀미가 날 듯해 털썩 주저앉았다. 아래에서 집회가 열려 서 있어야 할 때면 두 사람도 허벅다리를 밧줄로 단단히 묶어둔다. 눈비가 오면 그대로 물이 고인다.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퍼내야 한다.

전광판 상판 밑에 먼지 쌓인 공간이 있다. 전기회로가 그대로 노출된 이곳에서 잠을 잔다. 전자파 때문인지 부쩍 두통이 늘었다. 임씨는 방광염을, 강씨는 어깨 근육통과 소화불량을 앓고 있다. 강씨는 “편두통과 어지럼증이 심하다. 가끔씩 정신줄을 놓을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

임정균씨는 씨앤앰 협력업체인 용산JC비전에서 설치기사로 일했다. 그는 해고자가 아니다. 똑같이 일을 해왔던 동료들이 해고되자, 자신만 따듯한 방에 있을 수 없다고 아내에게 편지를 남기고 전광판에 올랐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일곱 살 딸, 세 살배기 아들은 아빠가 일을 나간 줄 안다. 임씨의 아내 고현정씨(36)는 “일할 때 할당량을 얘기하던 버릇이 있어요. 언제 내려올지 모르니까 일단 ‘아빠 일 100개 하러 갔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오늘은 아빠 일 몇 개 남았다’고 얘기해요”라고 말했다. 고씨는 가족 기자회견에서 “빨리 집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라며 울먹였다.

강성덕씨는 씨앤앰 협력업체 시그마에서 8년째 애프터서비스 기사로 일했다. 그는 지난여름 해고된 109명 중 한 명이다. 한 달에 몇 번 쉬지도 못하고 월 190만원가량을 벌었는데 돌아온 것은 해고 통보였다. 개인택시 기사인 강씨의 아버지는 매일 광화문 도로에 와서 비상 깜빡이를 켜고 천천히 달린다. 뒤에서 차가 빵빵거려도 개의치 않는다. 아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보기 위해서다. 군대 갔을 때도 아들 고생하는데 부모만 따뜻할 수 없다며 보일러를 켜지 않던 어머니는 페이스북으로 아들의 농성 소식을 보며 매일 운다.

전광판 농성 이후 씨앤앰 쪽이 제시한 3자 협의체는 적잖은 의견 접근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해고자 전원 복직 문제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사는 대화를 계속 시도한다. 임씨의 아이들은 엄마와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촛불을 켰다. 임씨는 12월26일 생일을 전광판 위에서 맞았다. 가족이 미역국을 올려 보냈다.

정치권도 이들의 목소리에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가 가세했다. 씨앤앰의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맥쿼리의 ‘먹튀 논란’을 국회에서 다룰 태세다. 협상 타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노조에 동조하는 농성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한 국회의원도 있다. 회사 측이 아예 사라진 칠곡이나 대법원에서 패소한 평택의 굴뚝에 비하면, 그래도 광화문의 전광판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편이다.

칠곡의 차광호씨는 내일도 늘어난 날짜 수만큼 굴뚝 안을 왕복할 것이다. 평택의 이창근·김정욱씨는 매일 오전 7시와 오후 5시30분에 출퇴근하는 동료들을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 것이다. 서울에서 강성덕씨의 아버지는 광화문 도로에서 속도를 늦춘 채 비상 깜빡이를 켜고, 임정균씨의 아이들은 아빠 일이 몇 개나 남았는지 토론할 것이다. 그리고 곡기를 끊고 길에 엎드리는 수많은 해고자들에게도 새해는 어김없이 밝아온다.


* 기사가 나간 뒤인 12월30일 씨앤앰 노사는 해고된 협력업체 노동자 109명 중 이직자 등을 제외한 83명을 신설 법인이 채용하고, 매각 과정에서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합의안을 도출했다. 이튿날인 12월31일 조합원 투표를 거쳐 합의안이 가결됐다. 씨앤앰 협력업체 노동자 강성덕·임정균 조합원은 고공농성 50일, 노숙농성 177일 만에 땅을 밟는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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