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강좌 세 번째 주인공은 중학교 상담교사인 윤다옥씨다. 강좌를 주최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학교 안팎에서 임상 경험이 풍부한 윤씨를 ‘재야의 숨은 고수’라고 소개했다. 요즘 아이들은 왜 ‘중2병’이라는 사회현상까지 만들어내며, 격렬한 성장통을 겪는 것일까. 상담실에서 다양한 10대를 겪어온 그녀의 통찰을 지상 중계한다. 동영상 강좌를 보고 싶은 이는 이 단체 홈페이지(noworry.kr)에 들어가면 된다.


거절할 엄두도 못 낸 채 오늘 강의를 맡았다. 나 또한 큰애가 중2, 작은애가 초등 4학년이다. 하나는 사춘기를 한창 겪고 있고, 하나는 막 시작하는 셈이다. 그러니 준비된 사춘기 강사라고나 할까(웃음). 그렇다고 내가 아이를 잘 기를 거라 오해는 하지 마시라. 날마다 지지부진 ‘이게 맞나’ 헤매며 살고 있다. 어떨 땐 아이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내가 미쳤지. 애를 둘씩이나 낳다니’ 생각할 때도 있다. 이런 걸 감안하고 강의를 들어주시면 좋겠다.

올해로 8년째 중학교 상담실에서 아이들을 만난다. 상담실 하면, 여기 드나드는 애들 거개가 교사한테 끌려왔을 거라 짐작하는 분이 많을 텐데, 그렇지 않다. 물론 사고를 치거나 선생님한테 욱하고 대들었다가 오게 된 아이들이 많긴 하다. 너무 무기력해 보이거나 늘 엎드려 있는 아이는 교사가 일부러 살살 구슬려 상담실로 데려오기도 한다. 반면 상담실을 제 발로 찾는 아이들도 꽤 많다. 요즘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상담실 드나드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것 같다.
 

ⓒ시사IN 신선영윤다옥 교사는 8년째 중학교 상담실에서 다양한 10대를 만나고 있다.
상담실을 찾은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이유 없이 짜증나고 답답하다”라는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라 실제로 사춘기 아이들은 스스로의 감정 컨트롤을 잘하지 못해 힘들어한다. “학교에 다니기 싫고 전학 가고 싶다”라는 말도 자주 한다. “공부를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꿈이 없어요” “학원 다니기 너무 힘들어요”도 단골 메뉴다. 남자애들은 “키 크고 싶다”, 여자애들은 “살 빼고 싶다”라는 말도 정말 많이 한다. 그런가 하면 상담실에서 만난 어떤 아이는 “일 안 하고 건물세 받아 사는 게 소원”이라고도 했다.

사춘기 고민에 약간의 성차는 있는 것 같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남자아이들은 가장 큰 고민으로 ‘학업·진로 문제’를 꼽곤 한다. 반면 여자아이들이 꼽는 가장 큰 고민은 대인 관계다. “어제까지 잘 놀던 친구가 갑자기 생깐다”라며 고민한다. 물론 여학생에게도 공부는 주요 고민거리다. “공부가 잘 안 되는데 부모님이 자꾸 스트레스를 준다” “효과도 없는데 학원을 못 끊게 한다”라고 공통적으로 호소한다. 그런데 공부 그 자체보다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공부에까지 영향을 받게 되는 게 여학생들의 특성인 것 같다.

하나씩 따져보자. 일단 공부와 성적 문제. 사실 공부 못하는 아이들도 학습에 관심은 많다. 공부 잘하기를 열망한다. 특히 중2 후반부가 되어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 “3학년 때 공부하면 내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부모가 경제적으로 확실하게 밀어주거나, 이게 불가능하다면 교사나 지역사회가 일대일 멘토링 등으로 그 빈틈을 메워줘야 하는데 알다시피 한국 사회가 이런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 않다.

다만 상담교사로서 부모님께 이런 말씀은 드리고 싶다. “그만 좀 놀아라. 친구가 밥 먹여주냐”라고 다그치지는 않으셨으면 한다. 물론 부모 처지에서는 아이가 친구한테 정신이 팔려 제 할 일을 못한다는 불안감이 있으실 거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절, 나를 위로하고 지지해줬던 그때 그 친구들이 있었기에 내가 그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아이에겐 지금 친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KBS <학교 2013> 화면 갈무리드라마 <학교 2013>의 한 장면. 요즘은 상담실 드나드는 일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수행평가 때 조 편성을 앞두고 굉장히 민감해지는 아이들이 많다는 건 아시는지? 성적에 민감한 상위권 학생뿐 아니라 일반 아이들도 조별 평가를 굉장히 싫어한다. “저랑 같은 조 되는 걸 애들이 싫어해요. 아무도 안 끼워줘요”라고 상담실에 와서 하소연하는 아이도 많다. 어찌 보면 아이들이 함께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거다. 결정장애를 겪는 아이들도 많다. 요즘은 부모가 아이들 공부를 전부 설계하려 든다. 최대한 촘촘히, 효율적으로. 수영 하나도 부모가 가르치기보다는 레슨을 받게 한다. 그래야 최단기간에 마스터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결과 부작용이 발생한다. 아이의 정체감(Identity) 발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심리학자 마르샤는 정체성이 ‘혼미’ ‘봉쇄’ ‘유예’ ‘성취’ 네 단계로 나뉘어 발달한다고 했는데, 요즘 아이들 상당수는 1, 2단계 곧 혼미와 봉쇄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부모님이 외고를 가라는데,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헤매는 게 정체성 혼미 단계라면, ‘부모님이 원하니 외고를 가긴 하겠는데, 그게 내가 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면서 일단 부모 말을 따르고 보는 게 정체성 봉쇄 단계다.

규칙 지키기, 부모 자신부터 점검해야

두 번째로는 사춘기 아이들과 즉석에서 맞짱 뜨지 마시라는 당부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나도 순하디 순했던 큰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미친 눈빛’을 하는 걸 보고 사춘기가 왔음을 깨달았다(웃음). 별것 아닌 일에 아이가 벌컥 화를 내면서 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걸 보면 부모로서는 당연히 속이 뒤집힌다. 그렇지만 그 순간 아이 자신도 당황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자기 자신의 감정 기복으로 인해 스스로 놀라고 당황해하는 게 사춘기다. 초기 사춘기(초등 4, 5년생~중학생 시절)에는 상대 표정을 보고 감정을 잘 읽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상대 감정을 구별하는 능력이 일시적으로 쇠퇴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멀쩡히 있던 엄마에게 “왜 엄마는 나한테 짜증내고 그래?” 하면서 난리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일이 벌어져도 절대 격돌하지 마시라. 역효과만 난다. 대신 움찔하면서 물러난 채 그냥 넘어가서도 안 된다. 아이가 불손하게 행동하는데 부모가 기에 눌려 약한 모습을 보이면 부정적 행동은 더 강화된다. 반드시 잘못을 짚고 넘어가되, 아이 감정이 격해 있을 때는 잠시 시간을 두고 안정을 찾은 다음 대화를 시도하자. 나도 아들이 처음 반항한 날 한두 시간 자게 놔둔 뒤 “엄마가 많이 놀랐다”라고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아들이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하더라.

마음은 다 받아주되 규칙은 필요한 것이 사춘기 양육인 것 같다. 규칙을 지키는 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룰을 익히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룰을 지킨다는 관념이 희박하다. 선생님이 방과후 남아서 벌서라고 하면 도망가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오라고 해도 오지 않는다. 교사들이 뭐라 하면, “잊어버렸다”라고 태연하게 답한다. 가정에서부터 규칙을 지키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규칙에는 정답이 없다. 결국 부모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걸 아이에게 전달할 수밖에 없다. 자녀에 앞서 부모 자신부터 점검해야 할 이유다(한숨). 이게 결코 쉽지 않은데, 부모가 스스로를 손볼수록 효과는 확실히 커진다.

단, 규칙을 정할 때 ‘미니스커트 입지 말기’처럼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는 마시라. 근본적이지 않은 부분에서 풀어줘야 핵심적인 걸 잡아야 할 때 부모에게 권위와 파워가 생긴다. 규칙을 어겼다고 한 달간 게임 금지처럼 과도한 벌칙을 가하거나, 여자애 머리를 자르는 식으로 완력을 쓰는 행위는 절대 하지 마시라. 아이가 바뀌지는 않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사태만 벌어질 수 있다.

상담실에 있다 보면 아이가 게임이나 스마트폰에 빠져 산다고 호소하는 부모님도 많이 만난다. 물론 걱정할 만하다. 사춘기 아이들의 뇌에서는 ‘가지치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활발하게 사용하는 신경세포(시냅스)만 남겨두고 잘 쓰지 않는 것들은 퇴화된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이 시기 전자기기나 영상 매체 자극에만 노출되면 텍스트를 읽는 능력이랄지 문학적·예술적 감성 발달이 더뎌질 수 있다. 이런 걸 아이한테 얘기해주되, 아이들이 처한 현실도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 요즘 아이들이 교사한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재미있게 해주세요”다. 교사가 개그맨인가, 재미있게 해주게?(웃음) 사실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힘들면 그러겠나.

청소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아이들이 여가 시간에 하고 싶은 일 1위로 꼽은 것은 여행이다. 그런데 실제로 여가 시간에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컴퓨터 게임과 인터넷 검색이었다. 현실이 그렇다. 일단 밖에서 놀려면 돈이 많이 든다. 떡볶이 사먹고 노래방 가고 하는 게 다 돈이다. 시간도 없다. 학원 스케줄에 치여 아이들이 짬짬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게임과 스마트폰 정도다. 더욱이 게임이라는 게 주는 매혹도 크다. 공부 못하는 대다수 아이들의 경우 일상에서는 실패와 좌절이 넘치는 반면 게임에서는 시간과 노력을 들인 만큼 성취감을 얻는다. 언제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게임의 강점이다. 상담실 오는 아이들도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빨리 고등학생이 되고 싶다, 전학 가고 싶다고도 한다. 자신이 그대로인 이상,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안타깝게도 모른다.

부모에게 ‘먹힐 만한’ 말만 하는 사춘기 아이들

흡연, 음주, 이성교제, 음란물, 학교폭력…. 사춘기 아이들은 다양한 유혹과 위험에 노출돼 있다. 모범생이라고 안심하지 마시라. 공부 잘하는 아이 중 흡연자가 의외로 많다. 왜 피우느냐고 물어보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란다. 욕과 거짓말은 좀 잘하나? 자기네끼리 하는 말도 알아듣기 어려운 은어투성이다. “여소하는데 완전 라톡스에 안여돼야, 씨망!” 이게 무슨 뜻인지 짐작 가시는 분? “여친(여자친구) 소개받는데 라면 먹고 불어서 보톡스 맞은 것처럼 생긴 안경 끼고 여드름 난 돼지가 나왔어, 씨× 망했다!”라는 말이란다(웃음). 이런 것들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나, 부모라면 고민이 많으실 거다.

나는 ‘마음은 무조건 수용하되,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은 즉시 제한할 것’을 자녀 지도의 원칙으로 제시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자녀 간에 친밀한 관계 맺기가 우선돼야 한다. 어느 부모 교육에서나 이걸 강조할 텐데, 실천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같은 비아냥이나 “괜찮아, 다 지나가. 그땐 다 그래” 같은 어설픈 위로가 모두 아이에게는 도움이 안 된다. 아이는 지금 죽을 지경인데 이를 과소평가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일단은 잘 듣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시라. 아이를 가르치려 들기보다 “네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이유를 내게 얘기해주지 않을래?”라고 진심으로 다가가주시라. 이게 아이에게 굉장한 힘이 된다. 이렇게 아이 마음을 풀어준 다음 대화를 시작해야 먹힌다. 다른 길은 없다.

간혹 “우리 애는 지금도 저랑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요?” 하는 분이 있는데,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사춘기 아이는 부모에게 먹힐 만한 말만 한다.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부모·자녀 간에 신뢰가 형성돼야만 아이가 부모에게 도움을 청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다. 살다 보면 혼자 힘으로 해결 못할 일이 많지 않나. 이는 의존적인 것과는 다르다. 자존감이 높아야 남에게 도움도 청할 수 있다. 이렇게 신뢰를 쌓아가면서 한편으로는 아이와 조금씩 거리를 두는 연습도 해야 한다. 아이가 스스로 뭔가를 해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가까우면서도 먼, 이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아이를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리·김은남 기자

기자명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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