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민씨(가명·33)의 휴대전화 통화 연결음은 소셜 커머스 쿠팡의 CF 모델인 배우 전지현씨 목소리다. “내가 잘 사는 이유, 쿠팡.” 박씨는 소셜 커머스 업체 쿠팡의 배달 직원 ‘쿠팡맨’이다. ‘쿠팡’이라는 문자가 새겨진 파란색 티셔츠와 모자를 쓰고 상품을 배송한다.

쿠팡맨은 다른 유통업체의 배달 직원과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지위를 누린다. 타 업체에서는 외부 택배회사를 통해 배송을 하는 데 비해, 쿠팡맨은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다.

쿠팡맨 박씨는 물품을 직접 수령하지 못한 고객에게 손편지를 남기거나 배송된 상품을 사진으로 찍어서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쿠팡맨 박경민입니다. 직접 전달해드리지 못해 분실이 염려되니 상품 수령 후 문자 한 통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객님의 소중한 상품이 로켓 타고 날아갑니다. 혹시 부재중이실 경우 어느 곳에 보관해드릴까요? 답변 주시면 힘이 불!끈! 솟아날 것 같습니다^^.’ 박씨는 입사 이후 2주간 본사 교육을 통해 서비스 화법, 고객 전화 응대법, 손편지와 문자 메시지 작성법 등 ‘차별화된’ 고객 응대 서비스를 교육받았다.

ⓒ시사IN 이명익쿠팡맨들은 주문한 다음 날 배송되는 ‘로켓 배송’ 제품으로 분류된 1만여 품목을 배송한다.
쿠팡맨의 색다른 고객 서비스는 유아 커뮤니티에서 소문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쿠팡맨이 직접 기른 화분을 고객에게 선물했다는 일화, 비 오는 날 택배 상자가 젖을까 봐 우산으로 받쳐 배송했다는 일화 등은 쿠팡 이용자 사이에서 반응이 뜨겁다. 박씨는 “유아 물품을 주문한 고객에게 더 신경 써서 배송하다 보니 엄마들 사이에 쿠팡 마니아층이 형성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자상거래 업체 가운데 다른 택배사를 끼지 않고 배송 기사를 직접 고용하는 모델은 쿠팡이 최초다. 김범석 쿠팡 대표가 세계 최대의 인터넷 종합 쇼핑몰인 아마존이 한때 실시했던 실험을 참조해서 고안한 시스템이라고 한다. 당시 아마존은 자체 물류창고와 내부 직원을 활용해 배송 속도 및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는 전략을 추진하다가 폐기한 바 있다.

쿠팡 홍보팀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제품을 준비하고 모바일 앱 같은 편리한 쇼핑 환경을 만들어도,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배송이 불만족스러우면 전체 만족도가 떨어진다. 100% 만족을 달성하기 위해 직접 배송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쿠팡맨이 배송하는 서비스는 ‘로켓 배송’ 제품으로 분류된 유아용품·생필품·애완용품 등 1만여 품목이다. 로켓 배송 제품은 주문한 다음 날 고객에게 전달된다.

쿠팡맨의 근무 조건은 다른 택배업체에 비해 우월하다. 대다수 택배업체의 배달원이 월급 가운데 유류비, 자차 운영비 등을 뗀 200만원 남짓을 가져가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렇다(택배 노동, 만만한 게 ‘사람 값’이지 참조). 쿠팡맨은 1t 배송 차량과 유류비 지원 이외에 260만∼350만원을 월급으로 받는다. 수습 기간인 첫 3개월 동안은 월 310만원을 온전히 받고, 이후에는 기본급 260만원과 안전수당 50만원으로 나누어 배송 중 사고가 나거나 상품이 파손되는 경우, 안전수당 내에서 차감한다. 3개월간 무사고 인센티브를 적립하면 네 번째 달에는 40만원을 추가로 지급받는다.

고객 부재로 직접 배송하지 못할 경우 손편지를 남기기도 한다.
3300억원 투자 유치, 쿠팡맨 전국으로 확대

쿠팡맨은 6개월 근무 후 업무평가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계약을 연장한다. 내규에 따라 계약 연장 횟수는 세 번으로 제한돼 있다. 18개월 동안 정규직 전환이 되지 못하면 퇴사 처리된다. 지난 3월 쿠팡맨 정책을 시작할 당시 700여 명을 채용했다가 최근 연말 물류가 몰리면서 300명을 충원했다. 현재 추가로 400명을 모집 중이다. 아직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는 없다. 하지만 2015년부터 인사 회의를 거쳐 계약 기간이 만료된 쿠팡맨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2012년 쿠팡은 자체 물류센터를 구축하면서 다른 택배업체와 손잡고 당일 배송 서비스를 시도한 바 있다. 하지만 원하는 서비스 품질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쿠팡맨을 고용하고 4개 물류센터를 갖추는 쪽으로 배송 시스템을 개편했다. 쿠팡맨은 현재 서울과 6대 광역시, 경기도 일부에서 활동한다. 나머지 지역 배송은 외주 택배가 맡는다.

12월11일 쿠팡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의 블랙록으로부터 33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상품 재고 관리에서부터 배송 관리에 이르기까지 소매 유통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직접 관리한 덕분에 성장성을 높이 인정받았다는 게 쿠팡의 자체 평가다. 쿠팡은 투자금을 기반으로 현재 서울과 광역시에서 시행하는 쿠팡맨 서비스를 전국 단위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편 쿠팡은 연말이나 연휴 주문 물량이 몰리는 기간에 대비해 내년부터는 시간외수당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쿠팡 홍보팀 관계자는 “배송을 비용 문제로만 접근하면 현실적으로 택배 기사에 대한 처우가 낮을 수밖에 없다. 고객 만족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한 모델이 무엇일까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쿠팡맨의 재계약율은 90% 이상이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