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정치권의 시계도 멈추었다. 세월호 3법으로 불리는 세월호 특별법, 정부조직법 개정안, 범죄수익은닉 규제 및 처벌법 개정안(일명 ‘유병언법’) 등이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지만, 갈등으로 인한 상처는 컸다. 많은 관심을 받았던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의 처리는 12월17일 현재 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살아남아라, 김영란법! 참조).

주목받는 성과로는 ‘세 모녀 3법’을 들 수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 사회보장 및 수급권자 발굴·지원법 제정안 등 복지 분야 3개 법안이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2월9일 통과됐다. 2월26일 주검으로 발견된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주목받았던 법안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은 빈곤층에게 지급하는 기초생활보장비의 사각지대를 줄이려 개정되었다. 이번 개정안은 그동안 통합급여로 받던 기초생활보장비를 생계, 의료, 주거, 교육급여 등으로 나눠 개별급여로 전환하고, 부양의무자의 소득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이다. 종전에는 부양의무자가 ‘최저생계비의 130%(4인 가구 기준 212만원)’ 이상을 벌 경우 기초생활비를 받을 수 없었다. 이 기준이 이번 개정법에서 ‘중위소득(4인 가구 기준 404만원)’으로 완화되었다. 실제로는 자녀 등 가족으로부터 부양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부양의무자 소득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지 못하는 이들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이 법안은 2013년 5월 법안 제출 이후 처리가 미뤄지다가 ‘세 모녀 사건’ 이후 공감대가 형성되며 통과될 수 있었다. 함께 개정된 긴급복지지원법은 지방자치단체의 긴급지원 재량권을 확대했고, 사회보장급여법은 정부가 단전·단수 가구 정보, 건강보험료 체납 정보 등을 활용해 위기 가구를 미리 구제할 수 있도록 했다.

ⓒ시사IN 자료지난 2월26일 생활고에 시달리다 동반 자살한 세 모녀가 메모와 함께 현금 봉투를 남겼다.

같은 날 통과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과 환경오염피해구제법 제정안도 관심을 끌었다. 일명 ‘관피아 방지법’으로 불리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고위 공직자의 재취업 제한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렸고, 취업 제한 대상기관도 대폭 늘렸다. 퇴직한 고위 공직자가 재취업을 원할 경우 취업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세무사나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경우에도 취업심사를 받아야만 재취업할 수 있다.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은 환경오염 사고 피해에 대한 구제장치를 구체화했다. 피해 범위가 넓고 가해 기업이 도산한 경우 지금까지는 법적 보완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추가 피해가 컸다. 2012년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가 대표적이다. 사업자의 환경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했고 원인 미상 환경오염 피해에 대한 보상 지원 등이 법제화되었다. 올해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 중 여야 이견이 적은 법으로 꼽힌다.

전반기인 5월2일에 통과된 금융실명법 개정안, 이른바 ‘차명거래금지법’도 21년 만에 금융실명제를 대수술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1993년 도입된 금융실명법은 가명으로 계좌를 만드는 걸 금지할 뿐, 차명 계좌를 막지는 못했다. 실소유주와 계좌 명의자 간의 합의에 대해서는 규제를 가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차명 거래가 공공연하게 이뤄졌고,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절세 목적으로 차명 거래를 권하는 경우도 있었다. 재산을 은닉하거나 탈세를 목적으로 한 차명 계좌는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실제 개정하기까지 21년이 걸렸다.

 

21년 만에 수술대 위에 오른 ‘금융실명제’

이번 개정법의 핵심은 합의에 의한 차명 거래에 대해 형사처벌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차명 계좌 명의자와 이를 알선한 금융사 직원 역시 처벌받는다.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실에서는 개정안 예고 직후 5개월간 10개 시중은행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9조원이 더 인출됐다고 발표했다. ‘고액 자산가’의 움직임이 바빠진 셈이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올 한 해 국회의 자체 성적표는 그리 자랑스럽지 못했다. ‘올해의 법’을 묻기 위해 통화한 한 상임위 간사 의원실 관계자는 “올해 제대로 통과된 법이 없다시피 해서, 뭘 추천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선거와 세월호 정국이 맞물리면서 핵심 쟁점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법안 제출 건수는 많았지만, 각 상임위에서 치열하게 논의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순조롭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5년에는 ‘미뤄둔 숙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가 입법부 평가의 잣대가 될 전망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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