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들, “우리는 회사를 ‘대한여고’라 불렀다”
  • 김은지 기자
  • 호수 379
  • 승인 2014.12.1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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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 땅콩 회항’에 대해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회사=조씨 일가’라는 오너 일가의 사고방식과 요구 때문에 밖에서 들으면 황당하다 싶은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사건 이후 증거 인멸 의혹도 불거졌다.
‘1번. 조현아 부사장의 직급 코드는?’

대한항공 승무원의 내부 시험인 ‘업무 지식 평가’ 첫머리를 장식하는 문제다. 정답은 DDA. 사장·부사장급 대한항공 로열패밀리 앞에 붙이는 코드 DD에 조현아의 ‘아’ 이니셜 A를 붙인 조합이다.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은 DDP(‘P’resi- dent),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DDY(조‘양’호의 이니셜 Y)다. 조현아 부사장은 조양호 회장의 맏딸이다.

조 부사장이 객실승무본부장으로 오면서부터 그녀의 직급 코드는 승무원이 가장 먼저 익혀야 할 ‘업무 지식’이 되었다. 나머지는 기내 서비스·안전 등과 관련된 문제가 나온다. 대한항공의 한 승무원은 “비행기에서는 전달하는 내용이 다 돈과 연관되어 있어 코드화해서 짧게 부르긴 하는데, 분기별로 치르는 시험의 1번 문제를 보면 이 회사가 누구 건지 항상 생각하라는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12월5일 ‘블라인드’ 앱 게시판에 ‘땅콩 회항’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DDA가 사람들 입에 널리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12월5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회사별로 익명 게시판이 있는 앱)’의 대한항공 게시판에 올라온 글(왼쪽 사진)이 시초였다. ‘내려!’라는 제목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제목:뉴욕발 비행기 “내려”/ 곳:출발 전 비행기 안 퍼스트클래스/ 등장인물:DDA, 퍼스트클래스 승무원, 팀장, 그 외. 1막 지상에서….” 3막까지 쓰여 있는 글의 내용은, 마카다미아 너츠를 봉지째 서비스하던 승무원에게 DDA가 규정이 뭐냐고 혼을 냈고 사무장이 태플릿 PC를 꺼내 규정을 보여주자 무안해진 DDA가 사무장에게 내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겪거나 가까이서 보지 않았다면 쓸 수 없는 상세한 글이었다. 인증된 대한항공 직원만 이용할 수 있는 이 게시판에 해당 글이 올라오자 ‘(북한) 고려항공인 줄’ ‘수천명의 승무원 노력을 술 먹고 개인감정을 컨트롤 못해 한 번에 다…’ 따위 댓글이 달렸다.

12월8일 이 사건은 ‘땅콩 회항’이라는 이름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로 전해졌다. 현지 시각으로 12월5일 미국 뉴욕의 JFK 국제공항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KE086편 항공기가 ‘램프 리턴’을 했다. 활주로로 향하던 비행기가 탑승 게이트로 돌아가는 램프 리턴은 주로 기체 결함이나 승객 안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일어나지만 이날은 그런 사유가 아니었다. 블라인드 앱에 올라온 내용처럼, 조 부사장이 서비스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사무장을 하기시키는 이례적인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당장 월권과 위법 논란이 일었다. 비행기 문을 닫으면 기내 모든 권한은 기장에게 있다(항공법 제50조 1항). 아무리 오너 일가라 해도 승객 신분인 조 부사장이 ‘내리라’는 지시를 할 수 있느냐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20년 가까이 비행하는 동안 사무장 하기는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다는 대한항공의 한 조종사는 “조 부사장이 임원이니 객실 서비스에 대해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유로 직원을 내리게까지 하는 건 어느 매뉴얼에 따른 건지 모르겠다. 서비스 이전에 안전 문제인데 조 부사장은 자기가 아는 매뉴얼만 가지고 승무원을 잡을 줄 알았지 항공법까지 숙지했는지는 모르겠다”라고 지적했다. 대한항공은 램프 리턴이 기장의 결정이었다고 해명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  지난 12월12일 조현아 전 부사장이 국토부 사건 조사에 앞서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기내에서 폭언 등 항공보안법 위반 논란

DDA의 ‘갑질’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폭로되었다. 참여연대 등의 말을 종합하면, 조 부사장은 당시 무릎을 꿇은 해당 승무원과 사무장을 질책하면서 굉장히 크게 소리를 질렀고 이들에게 책자 따위를 던졌다는 것이다. 조 부사장이 항공보안법을 어겼다는 의혹을 사는 지점이다. 항공보안법 제23조 1항에 따르면, 항공 안전을 위해 폭언·고성방가 등 소란 행위와 기장 등의 업무를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방해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무장이 태블릿 PC 잠금을 열어서 매뉴얼을 조 부사장에게 보여줬는데, 사무장이 워낙 양이 많아서 계속 다른 페이지를 열고 해당 규정을 못 찾았다. 언성이 높았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던졌다는 건 저희가 확인이 불가능하다. 무릎을 꿇었다는 건 승객 눈높이에 맞춰서 서비스하는 항공사의 기본으로, 두 무릎을 꿇는 게 아니라 한쪽 무릎을 꿇고 서비스하는 게 맞다.”

하지만 12월12일 저녁 공개된 해당 사무장의 인터뷰는 이런 해명을 무색하게 한다. 그는 “조 부사장이 나와 승무원의 무릎을 꿇린 상태에서 삿대질을 하고 욕설을 했고 기장실 입구까지 몰아붙였다. 서비스 지침서 케이스의 모서리로 손등을 수차례 찌르기까지 했다”라고 폭로했다. 심지어 대한항공 직원들이 검찰과 국토교통부 조사를 앞두고 자신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고도 밝혔다. 대한항공이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해 증거 인멸을 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대목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대한항공은 승무원이 유니폼을 착용했을 때 전화 사용, 음료수를 들고 다니며 마시는 행동 등을 금지했다.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한항공 직원들은 조 회장 일가가 직원을 “종 부리듯이 한다” “같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밖에서 들으면 황당하다 싶은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같은 말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다들 입을 여는 것에 극도로 조심스러워했다. 회사가 직원의 카카오톡 같은 휴대전화 메시지나 대화 내용 등을 확인하기 때문에 언론과 접촉하기가 두렵다는 뜻을 여러 승무원이 내비쳤다. 한 승무원은 “지금까지 언론과 인터뷰한 승무원이 많았지만 회사가 다 잡아내 징계를 했다. 기사에 얼핏 언급된, 언제 입사했고 어디를 비행했다는 식의 정보를 가지고 끝까지 잡아내는 거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승무원도 “검열을 많이 한다. 회사가 언제든지 카톡을 확인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겨, 우리끼리 대화한 다음에는 모두 방을 나가기도 한다”라고 말했다(대한항공 관계자는 “승무원은 팀제로 움직이기 때문에 혹시나 그 팀을 이끄는 사무장이 보자고 했을 순 있으나, 회사에서 공식적인 지침을 내린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KIP(대한항공 VIP)가 타는 날이면 그날 비행은 늘 ‘업무 그 이상’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한 승무원은 “로열패밀리가 비행하면 며칠 전부터 공지가 내려오고 전날 모여 브리핑하고 당일은 모의 연습까지 한다. 비행 시간 내내 시험을 치는 거다. 제대로 못하면 회사에 보고가 들어가고 팀은 물론 전체 승무원 교육으로까지 이어질 때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번은 조양호 회장이 비행기를 타면서 보딩 뮤직(비행기 탑승할 때 깔리는 음악)이 너무 크다고 하고, 다른 날은 또 너무 작다고 질책을 해, 같은 곡을 가지고도 어떤 파트에서 볼륨을 낮추었다 다시 높이는 식으로 흐름을 파악하는 게 그날 비행의 주요 업무였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 다른 승무원은 “조 회장의 발음이 또렷하지 않아 어떤 때는 뭐라고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다. 그 앞에서 반문할 수 없기 때문에 승무원끼리 따로 모여서 뭐라고 했는지 말을 맞춰본다. 정말 왕을 모시는 거다”라고 말했다. ‘회사=조씨 일가’라는 오너 일가의 사고방식과 요구 때문에 회사 생활이 더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우리끼리는 회사를 ‘대한여고’라고 불렀다”
특히 로열패밀리와 직접 부딪치는 승무원이 겪는 고충은 더 심하다. 심지어 회사 지침으로 승무원용 ‘3금’이 내려온다(아래 사진 참조). 유니폼을 착용했을 때에는 △공공장소 이동 중 전화 사용 금지 △커피 등 음료수를 들고 다니며 마시는 행위 금지 △국내외 면세점 출입 금지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대한항공 측은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는 동안은 회사를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글로벌 명품 항공사 직원으로서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라며 3금의 이유를 설명한다.

대한항공 내부 문건의 일부.

한 승무원은 “한 직원이 비행을 끝내고 셔틀버스를 기다리면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걸 조 회장이 발견한 다음, 휴대전화 사용 금지 지침이 내려왔다. 커피 금지도 비슷한 상황에서 된 걸로 안다. 면세점 출입 금지는 기내 면세점을 이용하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승무원은 “우리끼리 회사가 사사건건 지침을 내리고 교육해서 ‘대한여고’라고 불렀는데, 어느새 ‘대한여중’을 지나 ‘대한유치원’까지 되었다. 직원들을 어린애 취급하면서 별별 간섭을 다 하는데 이건 인권 침해다”라고 말했다.

승무원용 기내식을 절반으로 줄인 것과 승무원 휴대전화에 면세품 결제 앱을 깔게 한 것 또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 승무원은 “원래 승무원 수대로 실리는 기내식을 원가 절감 차원에서 절반으로 줄였다. 어차피 퍼스트·비즈니스석은 메뉴를 고르게 되어 있어 거기서 남는 식사가 있으니 그걸 먹으면 된다는 식이었는데, 먹는 걸 가지고 그러니까 서럽더라”라고 말했다.

기내 판매용 면세품 계산 기계를 교체하지 않고 각 승무원 휴대전화에 앱을 깔게 하는 것 또한 원가 절감을 위한 승무원 권리 침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직원은 “승무원들에게 유니폼 입은 채로는 개인용 휴대전화로 전화조차 못하게 하면서, 회사 장사를 위해서는 개인 휴대전화까지 다 이용하겠다는 발상이 황당하다”라고 말했다. 다른 승무원도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건 아닌지, 또 일을 하다 휴대전화가 깨지거나 고장 나는 건 아닌지 다들 걱정이 많아서 2G폰으로 갈아타자는 이야기까지 한다”라고 말했다. 이미 해당 앱은 개발은 끝났고 승무원 교육에 들어간 상태다. 내년 상반기 도입을 목표로 한다고 알려졌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기내식 줄인 건 없는 이야기고, 기내판매 면세품 계산 앱은 실무에는 아직 적용한 상태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12월11일 검찰이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대한항공의 기내 판매는 이미 언론에 보도되어 비판을 산 적이 있다. 2011년 조현아 전 부사장이 전무이던 시절 대한항공이 승무원들에게 기내 판매를 강요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당시 면세품 판매수량과 수금액이 맞지 않아 변상금을 채워야 하는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던 새내기 승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죽음이 잇따랐다(<시사IN> 제235호 ‘새내기 승무원은 왜 자살을 택했나’ 참조).

‘램프 리턴은 지나친 행동이었지만 임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라는 마뜩잖은 첫 사과로 후폭풍을 맞은 대한항공은 일주일 내내 입장 발표로 부산을 떨어야 했다. 조현아 부사장은 12월9일 보직 사퇴를 표명했지만 부사장 직함과 등기이사 지위는 유지해 ‘무늬만 사퇴’라는 비판을 샀다. 다음 날에는 부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지만 칼호텔네트워크·왕산레저개발·한진관광 등 계열사 대표이사직은 그대로 맡았다. 결국 참여연대의 고발로 검찰 수사가 시작되고 대한항공 본사가 압수수색 등을 겪고 나서야 조 부사장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12월12일 세 번째 입장 표명을 하면서 계열사 대표직도 내려놓겠다는 뜻을 보였다. 사건이 벌어진 지 일주일 만이었다. 12월12일 오후 국토교통부 사실 조사에 앞서 조 부사장은 해당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직접 사과하겠다고 밝히며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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