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140억원이나 받았다더라” “지휘 한 번에 4900만원을 따로 받았다더라” “집수리를 하는 동안 머물 호텔비 4000만원을 요구했다더라”.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예술감독 겸 지휘자에게 쏟아지는 비난이다. 성추행과 막말 파문으로 논란이 된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가 서울시향 직원들이 작성한 호소문의 배후가 정명훈 감독이고 자신은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주장하면서 불똥이 정 감독에게 옮아 붙었다.

정 감독에 대한 거센 비난에는 몇 가지 맥락이 있다. 매년 단원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해 5%를 탈락시키는데, 이것이 예술 노동자를 억압하는 조치라는 비난을 샀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립오페라합창단을 해체하려 할 때 이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으러 간 일행에게 “불쌍한 사람들 돕고 싶으면 아프리카나 가서 도와줘요” “세상이 그런 게 아니야. 이 계집애들이 말이야. 한밤중에 찾아와서…”라며 박대한 사실도 있다.

한마디로 정 감독은 ‘미운털’이 박힌 지휘자다. 게다가 정 감독은 ‘프레스 프렌들리’한 음악가도 아니어서 기자들과의 관계도 매끈하지 않다. 서울시의회와의 사이 또한 좋지 않다. 예술감독으로 재직하는 동안 시의회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서면으로만 답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울시민인권헌장을 무산시킨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반감이 정명훈 감독 쪽으로 옮아간 측면도 있다.

ⓒ연합뉴스서울시향 대표의 막말 파문 불똥이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에게 옮아 붙었다. 12월10일 정 감독이 단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맥락의 비호감 정서가 형성된 상황에서 정 감독에 대한 부정적 정보가 유포되자 그에 대한 비난이 거세졌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 대부분이 음악 외적인 요소다.

취임 이후 유료 티켓 판매율 2배 이상 증가

프로야구 감독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평가할 때 제1의 기준은 바로 성적이다. 이 기준으로 정 감독을 평가하면 서울시향은 정명훈 이전과 이후로 확실하게 갈린다. 그가 예술감독으로 취임하기 전해의 서울시향 유료 티켓 판매율은 38.9%였다. 그가 취임한 후에는 92.8%까지 증가했다.

해외에서의 평가도 달라졌다. 2011년 에든버러 페스티벌 초청 공연에서 호평받은 것을 비롯해 올해는 오케스트라의 월드컵이라 할 수 있는 ‘BBC 프롬스’에 진출해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세계적인 클래식 전문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음반을 출시해 플래티넘 음반 2장과 골드 음반 1장을 기록했다. 서울시향 초대를 결정한 조너선 밀러 에든버러 페스티벌 예술감독은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오케스트라임이 분명하다. 오직 음악적인 이유로 이들을 초청했다”라고 밝혔다. 한 바이올린 연주자는 “서울시향에 들어오려는 외국 연주자들도 많아졌다. 이탈리아로 음악 캠프를 갔을 때 유럽 연주자들로부터 서울시향 유럽 오디션을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라고 말했다. 정명훈 이전과 이후의 서울시향을 음악평론가 탁계석씨는 이렇게 구분했다. “10년 전 서울시향은 한마디로 난파선이었다. 정명훈 선장이 이 배를 수습해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리더십에 대한 비유를 할 때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실제로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012년에는 KBS 교향악단 상임지휘자 함신익씨가, 2013년에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지휘자 구자범씨가 단원들과의 갈등 때문에 물러났다. 아시아 최고의 지휘자로 꼽히는 오자와 세이지도 뉴욕 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활동하다 NHK 교향악단 지휘자로 임명되었지만 단원들과의 갈등 때문에 사퇴했다.

정명훈 감독도 취임 초기 단원들과 적잖은 갈등을 겪었다. 매년 오디션을 실시해 탈락자들을 해촉했기 때문이다. 정 감독이 취임하기 전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이었던 서울시향 단원들은 현재 모두 계약직이다. 단원들과의 가장 큰 갈등 요소였던 오디션 제도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하다. 서울시향의 한 선임 단원은 “낮은 평가를 받은 단원이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준다.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낙오하는 것이 우리가 택한 길이다. 안주할 수 없기 때문에 괴롭지만 감당하고 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정 감독이 서울시향 단원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한 측근은 이렇게 설명했다. “정 감독은 관계 맺는 방식이 이중적이다. 함께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는 친절하지만 음악 밖의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단원들에게는 애틋하다. 유럽 공연 때는 공연이 끝난 후에 음식점이 문을 닫아 단원들이 저녁을 먹을 수 없게 되자 미리 공간을 빌려두었다가 직접 파스타를 만들어 먹이기도 했다. 단원이나 직원이 결혼할 때 직접 반주를 해주기도 했다.”

ⓒ서울시 제공2005년 서울시향에 취임한 정명훈 감독(왼쪽)은 2011년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과도 재계약을 맺었다.

조너선 밀러가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서울시향을 초대했던 것도 지휘자와 단원들 간의 유대 관계를 높이 평가해서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훌륭한 오케스트라인지 아닌지 규정하는 기준은 지휘자와 단원들의 호흡이 얼마나 잘 맞느냐에 있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 사이먼 래틀과 버밍엄시티 심포니가 그랬듯, 지난해 한국에서 서울시향의 연주를 들었을 때 나는 서울시향과 정명훈 사이의 특별하고도 강한 유대 관계를 느꼈고 초청을 결심했다”라고 초청 이유를 밝혔다.

이처럼 음악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취를 거둬서인지, 정 감독에 대한 비판은 음악 외적인 쪽에 집중된다. 그러나 이 대목 역시 조목조목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단 고액 연봉 문제.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받는 연봉과 정명훈 개인이 받는 대우를 감안해보면 정 감독이 서울시향에서 특별히 더 받는 건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정명훈과 동급의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받는 연봉은 15억~25억원이다. 정명훈은 평균 15억원의 연봉을 받았고 박원순 시장과 연장 계약 후에는 12억원 정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시향은 서울시민이 낸 세금으로 연간 100억원 이상 운영비를 지원받는 오케스트라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정 감독이 티켓 판매에 기여하는 부분도 감안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다음은 개인 활동 부분이다.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인데 해외 활동이나 개인 활동이 너무 많다는 비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계약 관행을 살피면 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정 감독은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서울시향에만 전념한다는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1년에 일정 기간 상주하고 정해진 연주 횟수를 채우는 식으로 계약을 했다고 한다. 이는 대부분의 정상급 지휘자들이 계약을 맺는 방식이기도 하다.

서울시향의 미래, 정명훈 감독의 역할은?

연봉이나 개인 활동 부분은 서울시와 재계약을 하는 시점에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 감독과의 계약은, 초기 ‘서울시향의 모든 예술 활동을 주관할 수 있도록 한다’는 위임 계약 형태에서 구체적 계약 형태로 바뀌고 있다. ‘글로벌 시향’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 활동을 막을 필요는 없고 의무를 좀 더 명확히 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정 감독과 관련해 오히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서울시향의 미래와 관련해 그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이다. 정명훈 합류 후 서울시향은 곡 수행 능력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주 레퍼토리도 다양해졌다. 그러나 ‘용병 의존도’가 높은 것은 단점으로 꼽힌다. 외국 연주자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박현정 대표는 공연 기획의 조언을 맡은 마이클 파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걸 문제 삼기도 했다.

정 감독이 사퇴 의사를 밝히자 클래식계는 서울시향의 연주 실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그사이 기본 연주력은 갖췄지만, 아직 개성 있는 소리는 완성되지 않았고 이를 위한 정명훈의 역할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잡음은 없애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의 숙명,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과제가 정명훈 감독과 서울시향 앞에 놓여 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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