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회 곳곳에서 톨레랑스의 상실이 나타나고 있다. 공공 미술작품이 극우파에게 공격당하고, 나치에 동조했던 비시 정권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책이 불티나게 팔리며, 기자가 기자를 미행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10월18일, 파리 방돔 광장에 설치된 조형물이 일부 시민으로부터 공격받는 일이 발생했다. 미국인 예술가 폴 매카시의 이 작품은 ‘트리’라는 제목의 24m 초록색 조형물로, 국제 현대예술박람회(FIAC) 행사의 일환으로 전시됐다. 이 ‘트리’는 설치 전부터 논란이 일었다. 작품의 모양이 크리스마스트리인지 성인용품인지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트리가 설치되고 난 뒤 일부 시민은 이 작품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특히 지난해 동성애 결혼 합법화를 반대하며 시위를 조직했던 극우파 가톨릭 단체 ‘프랑스의 봄’은 이 작품을 섹스토이(성인용 장난감)로 규정하면서 “방돔 광장은 손상되었고 파리는 모욕당했다”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논란은 인터넷에서 그치지 않고 작가와 작품이 공격당하기에 이르렀다. 일부 시민이 작품 개막을 위해 참여한 폴 매카시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또 트리를 설치한 지 48시간도 되지 않아 한밤중에 작품을 지탱하는 가이드 와이어가 누군가에 의해 절단돼버렸다. 충격을 받은 폴 매카시는 이 작품의 복구를 포기하고 말았다.

ⓒRUETERS국제 현대예술박람회 행사의 일환으로 전시된 폴 매카시의 작품 ‘트리’(위).
ⓒAP Photo성인용품 논란이 일었던 이 작품은 10월18일 누군가에 의해 파손됐다.
예술작품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다. 19세기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이 출품되었을 때 작품의 외설성 때문에 말이 많았다. 하지만 200년 전에도 이번처럼 작품에 대한 물리적인 공격이라는 극단의 행위는 발생하지 않았다. ‘트리’의 훼손에 프랑스 정치·문화계 인사들은 큰 우려를 표시했다. 플뢰르 펠르랭 문화장관은 트위터에 “일부 사람들이 나치가 표현주의를 ‘퇴폐 미술’로 규정했던 시대로 회귀하는 걸 지지하는 것 같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국제 현대예술박람회 대표는 “현대 예술은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라는 발언으로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프랑스 사회의 문제를 간접으로 지적했다.

프랑스에서 나타나는 반동의 징후는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발간되어 화제를 일으킨 책에서도 나타난다. 인종차별주의자, 동성애 혐오자, 여성 혐오자로 유명한 우파 언론인 에리크 제무르(〈르 피가로〉 기자)가 쓴 〈프랑스의 자살(Le Suicide Francais)〉이라는 책이 그것이다. 제무르는 영화·노래·축구를 인용하며 “오늘날 프랑스는 스스로 파괴되어가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가 내세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실패한 68혁명 이후 1970년대 프랑스가 전통 사회를 파괴하면서 가족과 같은 사회적 규범이 거부당했고, 여성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져 사회가 여성화되었기 때문이다. 또 흑인과 아랍 출신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프랑스 서민 계층의 빈곤화가 강화되었다.”

에리크 제무르는 또한 프랑스 정치 역사상 나치와 공모한 정권으로 비판받는 비시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프랑스의 많은 유대인이 비시 정권 때문에 보호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평가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역사에 대한 날조’라며 비판한다. 비시 정권이 나치와 손잡고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 현장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에리크 제무르가 쓴 <프랑스의 자살>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럼에도 제무르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어떻게 끌 수 있는지 꿴 그가 ‘노이즈 마케팅’을 충실히 이용한 덕에 책 판매 부수는 50만 부를 넘어섰다. 〈프랑스의 자살〉은 대통령의 사생활을 폭로한 전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의 회고록 〈이제는 감사해요〉의 인기를 앞지르면서 빠르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제무르 책의 성공은 단순히 프랑스 대중의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책은 프랑스인의 심층에 깔린 두려움, 즉 타인·외국인·무슬림에 대한 두려움, 나아가 프랑스의 가치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동성애 합법화 반대 시위를 계기로 뭉친 우파

프랑스의 ‘톨레랑스 상실’ 징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언론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다. 전직 대통령 사르코지는 대통령 재임 시절 내무장관과 연루된 부정 의혹으로 현재 검찰 조사를 받았다. 대선 기간의 불법자금 수수 혐의 등 사르코지의 위법 행위에 대한 검찰 조사는 〈르 몽드〉 〈메디아파르트〉 등 기자들의 폭로 기사가 도화선이 되었다. 이에 대해 사르코지는 자신에 대한 모함이라며 기자들과 자신을 기소한 검사를 공개 비난했다. 또 스스로를 언론의 희생양인 것처럼 포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사르코지가 정계 복귀를 선언하면서 그를 지지하는 언론사가 사르코지의 부정을 파헤친 기자들을 감시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졌다. 사르코지의 2017년 대선 출마를 지지하는 주간지 〈발뢰르 악튀엘〉은 10월15일 ‘사르코지의 복귀’라는 기사를 통해 〈르 몽드〉 기자들이 어떻게 정보를 얻었는지 상세히 밝혔다. 〈발뢰르 악튀엘〉 기자들이 〈르 몽드〉 기자들의 취재 과정을 뒷조사한 것이다. 프랑스 법에 따르면 판사나 변호사는 계류 중인 사건에 대한 정보를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많은 정보가 이들 경로를 통해 기자들에게 전달되었다. 〈발뢰르 악튀엘〉은 이런 관행을 꼬집으면서 판사나 변호사가 규정을 어기고 기자들에게 정보를 흘려 사르코지의 부정에 대한 심층 보도를 돕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문제는 〈르 몽드〉 기자들의 취재 과정을 비판한 〈발뢰르 악튀엘〉 역시 언론의 도덕성을 훼손했다는 점이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의 취재원을 뒷조사해 저널리스트의 취재원 보호 원칙을 손상시켰다.

이에 〈르 피가로〉 등 14개 언론사 편집국은 〈발뢰르 악튀엘〉의 취재 방식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르 몽드〉를 지지하면서 “취재원이 보호되지 않는다면 알권리를 상실하게 될 것이며 언론의 기능은 침해받을 것이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라며 염려했다.

프랑스 사회의 이런 다양한 ‘반동’ 징후들은 지난해 동성애 합법화 반대 시위로 우파와 극우파 진영이 뭉치면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반면 이에 대응해야 할 좌파 진영은 오히려 올랑드 정부와 결별하면서 분열하고 있다. 현 정부가 우파와 다를 바 없는 정책을 펴는 데다 올랑드 대통령의 사생활 스캔들까지 겹치면서 환경운동가나 극좌파들이 이탈해 좌파 진영은 위기를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 속 좌파 지식인은 사라지고 제무르 같은 우파 논객들의 목소리만 부각된다. 이들은 과거 프랑스의 화려했던 역사를 떠올리며 대중을 자극한다. 오늘날 정치 경제적 위기로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노스탤지어가 필요해진 것이다. 프랑스 인터넷 언론인 〈뤼(Rue) 89〉는 요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늙은 세상이 세계가 변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기자명 파리·최현아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