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부모의 역할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된 ‘2014 등대지기 학교’ 강좌가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다섯 번째 강사는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이다. 수학 교사 출신으로 안정된 교직을 마다하고 교육운동에 뛰어든 그가 이 땅의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10월14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강의실에서 진행된 강좌를 지상 중계한다. 남은 강좌를 직접 듣고 싶은 이는 이 단체 홈페이지(noworry.kr)에서 수강 신청을 하면 된다.

나는 교사 출신이다. 사립 고등학교에서 8년간 수학을 가르쳤다. 그중 3년은 고3 담임을 했는데, 이것이 교직을 그만두는 계기가 되었다. 담임을 맡고 보니 이명박 정부의 대입 자율화 정책에 따라 대학 입시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져 있었다. 혼란스러워하다 ‘좋은교사운동’이라는 교육단체에서 정책위원을 하게 되었다. 학교 안에서는 도저히 이 문제를 풀 수 없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교직과 외부 활동을 병행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잠을 서너 시간으로 줄여도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선택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교사는 인기 있는 직업이다. 교사 한 명 뽑으려면 100명 이상이 지원한다. 그런데 교육단체 같은 경우는 교사 출신 상근자가 있는 곳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는데, 문득 내가 평소 학생들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그래놓고 정작 나는 뭘 하고 있지?’ 싶어진 것이다. 그렇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합류한 지 1년6개월이 지났다.
 

ⓒ시사IN 신선영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은 8년간의 교직 생활을 접고 교육운동에 뛰어들었다.
오늘은 우리 교육을 개선하기 위한 4대 과제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실타래처럼 얽힌 교육 문제를 4대 과제 정도로 해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다. 맞는 말씀이다. 그렇지만 교육 문제를 단숨에 풀 수 있는 해법은 없다. 차근차근 접근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 과제는, 아이들 줄 세우기를 그만하자는 것이다. 아이들을 줄 세우는 핵심에 수능이 있다. 내가 가르쳤던 한 학생이 받은 수능 성적표를 보여드리겠다. 언어 3등급, 수리 1등급, 그리고 탐구영역이 각각 1·1·5등급이다. 이쯤이면 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다. 이 학생이 어느 대학에 갔을까. 놀라지 마시라. 이 학생이 지원한 대학만 무려 38곳이었다. 이 중 합격한 데는 9곳이었다. 전형 와중에 아이가 말하기를 “내가 어디 어디 지원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더라. 대입 수시지원을 6회로 제한한 것이 불과 2013년부터다. 그 전까지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수능 성적표에는 원점수, 표준점수, 백분율이 함께 표기돼 있다. 대학은 이를 혼합해서 전형에 반영한다. 이를테면 언어·수리·외국어 영역에서는 표준점수를 반영하고, 탐구 영역에서는 백분율을 반영하는 식이다. 왜 이렇게 복잡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이 어떻게든 성적 좋은 아이들을 뽑으려 하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대학은 철저하게 서열화되어 있다. 맨 위에 있는 대학부터 순서대로 성적 좋은 학생들을 뽑아간다. 2011학년도 수능 응시생이 66만명. 그런데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모집 정원은 1만1271명에 불과하다. 전체 응시자의 1.6% 수준이다. 일반 학부모들이 마지노선으로 생각하는 인(in)서울 대학의 경우 모집 정원을 다 합하면 6만6645명이다(전체 응시자의 9.9%). 이를테면 고3 학생이 350명인 학교에서 전교 석차 30등, 반 석차 3등 안에는 들어야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얘기다. 결코 쉽지 않다.

문제는 나머지 60만명이다. 전체의 90%인 이들 모두가 실패자일까?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너무 쉽게 이들을 낙오한 인생으로 몰아간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를 실패했다고 점찍는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병들어간다. 비교와 경쟁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기보다 낮은 학생을 짓밟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같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끼리조차도 수시충·지균충(수시나 지역균형 선발로 입학한 학생 등을 조롱해 일컫는 말) 따위로 서로를 위계화한다.

땅 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학생 선발하는 대학

나는 우리 사회 전반을 병들게 만드는 이 같은 줄 세우기를 막기 위해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능 영어에 절대평가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조처라고 본다. 앞으로는 국어·수학·탐구영역에까지 절대평가가 확대돼야 할 것이다. 지금의 상대평가 제도에서는 ‘내가 잘하는 것’보다 ‘쟤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절대평가를 도입하게 되면 변별력이 낮아져 학생 선발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 염려하는 분들도 있던데, 나는 묻고 싶다. 왜 우리가 서열화된 대학의 요구에 맞춰 아이들을 촘촘히 줄을 세워야 하나? 초·중·고교에서 일정한 기준까지 아이들을 가르쳐놓으면 나머지는 대학이 알아서 할 몫이다. 그런데도 그간 대학들은 땅 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학생들을 선발해왔다.
 

두 번째 과제로 제시하고 싶은 것은 대학 서열화보다 심각한 고교 서열화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다. 서열화와 관련해 문제가 되는 것이 자사고(자율형 사립고)와 외고·과학고·국제고 등 특목고인데, 영재학교까지 포함하면 이들 학교 비율이 전체 고교의 10%에 이른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일반고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올해 서울대 입학생 분포를 보면 일반고 출신이 46.7%, 자사고와 특목고 출신이 44.1%다(42쪽 〈표〉 참조). 지난해와 비교해 일반고 비율은 6.0% 떨어졌고, 자사고와 특목고 비율은 각각 3.4%, 2.4% 높아졌다. 이른바 명문대라 불리는 곳은 대부분 비슷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보다 고입 전형 자체가 불공정하다. 중3이 되면 봄에 영재학교에서 먼저 학생들을 선발하고, 가을이 되면 전기학교·자사고·특성화고·마이스터고, 전국 단위 자율학교, 예·체능고, 과학중점고 순서로 학생들을 뽑아간다. 여기서 남는 아이들이 맨 마지막으로 가게 되는 곳이 일반고인 것이다. 도대체 이 학교들이 뭐기에 학생을 먼저 뽑을 권리를 주나.

선발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이들 학교는 성적을 반영하거나 면접을 보는 식으로, 원하는 대로 학생을 뽑을 수 있다. 그뿐 아니다. 특목고나 자사고는 일반고에 비해 훨씬 자유롭게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되자 교육부는 지난해 일반고의 교육과정 편성 권한을 특목고·자사고 수준으로 확대했다. 대신 국·영·수 시수는 전체 교과 이수 단위(180시간)의 50%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교육과정이 파행을 빚을 것을 우려해서였다. 문제는 국·영·수 시수 제한을 일반고에만 적용했다는 사실이다. 자사고에는 ‘권고’만 하기로 했다. 권고를 어길 경우 평가지표에 반영해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 교육부 발표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최근의 자사고 재지정 취소 논란을 보면 결코 그럴 것 같지 않다.

고교 서열화 문제는 일단 고교 체제를 단순화하는 것에서부터 풀어야 한다고 본다. 외고·자사고는 일반고로 전환하고, 과학고는 대폭 축소한 뒤 영재학교로 통합하는 방법 등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체제를 단순화한 뒤 모든 고교가 동시에 학생을 선발하게끔 해야 한다. 물론 다양성은 존중돼야 한다고 본다. 과학고나 영재학교도 일정하게는 필요할 것이다. 단, 적성과 소질이 아닌 성적이 이들 학교의 선발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세 번째로는 교육과정과 학교 교육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최근 교육부가 이른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안을 발표했다(〈시사IN〉 제370호 ‘실험실 쥐 세대의 탄생’ 참조). 이번 교육과정 개정은 지난해 8월 교육부가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이란 걸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대입 전형 방식이 무려 3000여 가지에 이르는 등 사회문제가 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대입 전형을 간소화하겠다는 공약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대입 전형을 간소화하겠다면서 난데없이 수능을 문·이과 통합형으로 바꾸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것이다. 이에 대해 ‘수능을 바꾸려면 교육과정부터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교육부는 다시 궤도를 수정했다. 이번에는 교육과정을 개정하는 쪽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2007년에서 2018년까지 적용될 교육과정을 정리해보니, 교육과정이 바뀌지 않는 해가 2008년 딱 한 해뿐이더라. 이게 말이 되나. 더 큰 문제는, 수능 때문에 교육과정을 바꾸겠다면서 정작 수능 체제를 어떻게 가져갈지는 2017년에 발표하겠다고 교육부가 슬쩍 발을 뺐다는 사실이다. 이건 전형적인 폭탄 돌리기다. 두고 보시라. 2017년까지 교육 현장에서는 난리가 날 것이다. 서로 자기 과목을 수능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과 이기주의가 판을 칠 것이다. 사교육 업자들은 “수능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일단은 모든 과목을 준비해두시라”고 학부모를 유혹할 것이다. 그 속에서 결국 죽어나는 것은 아이들이다.

초·중·고생에게 왜 국가경쟁력을 강요하나

마지막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사교육 문제다. 2009년을 기점으로 사교육비가 줄고 있다지만 2013년 현재 사교육비는 18조6000억원에 이른다. 공식 통계로만 이 정도다. 2014년 서울시 예산이 24조원이니 얼마나 큰 액수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교육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점도 우려스럽다. 지난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조사해보니 초등학교 입학 이전 단계에서 국·영·수 사교육을 시작했다는 학생 비율이 67.2~74.2% 수준이었다. 이른바 영어 유치원의 하루 이용 시간이 4세 아동은 6시간15분, 5세 아동은 6시간3분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영어는 ‘조기교육’이 아니라 ‘적기교육’이 필요하다”라는 것이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의 지적이다.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씨는 “영어 유치원 열 곳이 생기면 소아정신과 한 곳이 생겨난다”라고도 말한다. 유아를 상대로 한 과도한 영어 사교육은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립초등학교 1~2학년 과정에서 영어 몰입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것 또한 규제해야 할 것이다.

수학도 상황이 심각하다. 학원에서 중학교 1학년짜리한테 대학생 수준의 정수론을 가르치는 등 선행학습이 판을 치는데, 정작 학생들의 수학 실력은 늘지 않고 수포자(수학 포기자)만 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수학을 ‘죽음의 과목’ ‘지옥의 학문’ ‘글로 고문하는 방법을 적은 매뉴얼’이라고도 표현하더라(웃음). 전직 수학 교사로서 선행학습은 아이들의 진짜 실력을 망가뜨린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공교육 또한 황폐화한다. 그런 만큼 선행학습을 막으려면 하루빨리 공교육정상화법(일명 선행학습금지법)을 보완해 사교육의 선행교육 상품도 규제 대상에 넣어야 한다고 본다. 근본적으로는 대입 전형 방식을 손봐서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도 대학에 갈 수 있게끔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교육운동을 하면서 씁쓸할 때가 많다. 한 예로 수학 내용이 좀 쉬워져야 한다고 말하면 언론에서 난리가 난다. 학력 저하 내지 국가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왜 초·중·고교 수준의 아이들한테 국가경쟁력을 강요하나?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우리가 아이들을 여전히 산업 역군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기성세대는 자신이 겪었던 것보다 훨씬 아프고 힘든 교육제도를 아이들에게 물려주었다. 그래놓고는 현실에 무감각해진 채 여전히 아이들을 줄 세워야만 직성이 풀린다. 이건 아니다. 기성세대의 통렬한 자기반성을 촉구한다.

정리·김은남 기자

기자명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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