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스에 장명부라는 투수가 있었다. 무협지에 나올 만한 인물이었다. 1983년 삼미가 치른 100경기 가운데 장명부는 60번이나 등장했다. 선발 등판 44번 가운데 36번이 완투. 완투승이 무려 26번이었다. 그해 장명부는 30승을 거뒀다. 한국 프로야구사의 대기록으로 남아 있다.

ⓒ넥센히어로즈 제공
백인천의 4할 타율, 박철순의 22연승, 최동원의 한국시리즈 4승, 선동렬의 0점대 방어율, 이승엽의 56홈런…. 한국 야구사의 대기록 가운데 이종범(현 한화 코치)이 일군 만화 같은 기록이 있다. 1994년 해태 타이거즈 이종범은 타율 3할9푼3리, 안타 196개, 도루 84개를 기록한다. 그는 시즌 막판까지 4할 타율을 넘겼다. 하지만 육회를 잘못 먹고 배탈이 나는 바람에 4할 타율과 200안타를 놓치게 된다. 그래도 ‘야구계의 천재’라는 애칭은 이종범 몫이었다. 백인천 감독의 4할 타율이 단 72경기에 출전한 기록이어서, 야구계에서는 이종범의 3할9푼3리를 역대 최고 타율로 이야기하곤 한다.

그런데 결코 깨지지 않을 것 같던 이종범의 최다 안타 기록이 20년 만에 깨졌다. 서건창(25·넥센 히어로즈)에 의해서다. 서건창은 SK 와이번스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안타를 때려내 200안타를 달성했다. 우상 이종범을 넘어서 32년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시즌 200안타 고지를 밟은 선수가 됐다.

서건창은 학교를 졸업하고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연습생으로 LG에 입단한 서건창은 2008년 1군 경기에 딱 한 타석 들어섰다. 3구 삼진. 그것으로 끝이었다. 1년 만에 그는 구단에서 방출됐다. 경찰 야구단에 지원했으나 낙방. 결국 운동선수가 현역으로 군대에 가야 했다. 모두가 끝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대 후인 2011년 넥센에 입단했다. 그때도 연습생 신분이었다. 당시 서건창은 기량이 모자랐다고 한다. 그를 뽑은 박흥식 코치는 “기량은 없었는데 눈빛이 살아 있어서 뽑았다. 그런데 훈련장에서 펄펄 날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서건창의 ‘연습생 신화’를 만든 것은 절박함과 성실함이었다. 이종범의 시대는 가고, 이제는 서건창의 시대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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