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 퍼렇던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이었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반대 운동이 거세지자, 중앙정보부는 간첩단 사건을 조작한다. 1974년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빨갱이들이 국가를 전복시키고 공산정권 수립을 추진했다.’ 그러자 언론은 일제히 “민청학련 학생들이 공산계 불법 단체인 인민혁명당 조직과 재일 조총련의 조종을 받는 일본 공산당원 및 국내 좌파 혁신계 등의 사주를 받았다”라고 보도했다. 박정희 정권은 1024명을 연행해 수백명을 고문했다. 203명을 구속했고, 합계 1800여 년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여정남 등 8명은 판결이 난 지 20시간도 되기 전에 사형이 집행됐다. 이날은 국제 사법사상 치욕의 날로 기록됐다. 이후 민청학련 관련자들에게는 모두 무죄가 선고된다. 물론 북한과의 관련성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민청학련 사건을 계기로 ‘구속자가족협의회’가 만들어졌다. 구속된 학생들의 어머니가 주축이었다. 당시에는 ‘민주주의’를 외치기만 해도 잡아가고, 고문했다. 인권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었다. 남민전 사건, 재일교포간첩단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미 문화원 사건, 민정당 연수원 점거농성 사건 등 민주화를 외치는 자리에는 늘 학생들의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들은 1985년 12월12일 민주화 운동 가족들을 아우르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를 만들게 된다. 그 첫걸음을 떼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사무실에 책상 하나 놓고 현판을 달려고 하는데 경찰이 막았다. 결국 어머니 20여 명이 서울 중부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시사IN 조남진10월9일 서울 종로구 명륜3가 민가협 사무실에 모인 민가협 회원들. 왼쪽부터 조순덕, 김정숙, 이영, 정순녀, 유민호, 이정임씨.

민가협은 거리의 어머니였다. 거리에서, 법정에서, 감옥 앞에서 데모에 앞장선 아들딸과 함께했다. 아들보다 한 발짝 앞에 서기도 했다. 1987년 박종철군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뒤, 이한열군이 연세대 앞에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뒤에도 추모 행렬의 맨 앞에 선 이는 삼베 수건을 쓴 어머니들이었다. 시청 문을 부수고 들어가 전두환 고문 정권에 항의한 것도 어머니들이었다. “빨갱이 자식을 말리다가 빨갱이 엄마가 되었다. 아들 대신 나를 잡아가라고 거리에 나섰다.” 김정숙 어머니(임종석 전 전대협 의장의 어머니)는 말했다.

민가협은 개념조차 생소했던 양심수 석방을 외치고,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공론화했다. 1995년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씨의 석방을 이끌어냈고, 2000년에는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북한으로 송환시켰다. 구속된 아들딸을 면회하러 다니면서 문제를 발견하고 공부하고 공론화한 것이었다. 이 땅에서 고문을 몰아낸 것도 어머니들의 공이 컸다. 1989년에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국민이 직접 검거하자며 현상 수배했다. 10년이 넘는 어머니들의 끈질긴 추적은 1999년 이씨의 자수로 이어졌다.

은행원이 된 아들, 공무원이 된 딸, 국회의원이 된 아들…. 자식들은 생업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여전히 거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인권과 대체복무제 도입, 보안관찰법 폐지, 성적 소수자 인권 향상 등 할 일이 너무도 많아서라고 했다. 수배된 경원대 총학생회장 아들을 찾아 50대 때 거리에 나오기 시작한 조순덕 어머니는 어느새 78세가 되었다. “내 아들은 감옥에서 나왔지만 다른 아이들이 지금도 잡혀 있다. 잊을 수가 없다. 남의 아들도 다 우리 아들 아니냐? 백골단 애들에게 맞아서 몸이 아파 죽겠는데 나도 모르게 거리로 나가게 된다. 엄마 마음이 그렇다.”

지금도 어머니들을 쉴 수 없게 만든 말은 다름 아닌 ‘빨갱이’다. 끝난 줄로만 알았던 ‘빨갱이 시대’가 다시 도래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서울대에 다니던 딸이 이근안에게 고문당해 ‘빨갱이’가 되었다는 정순녀 어머니의 말이다. “1970~80년대에는 청년도 학생도 노동자도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 붙였어. 그러다 DJ가 대통령이 되자 빨갱이 소리가 쏙 들어갔지. 이명박 정부 들어 빨갱이 소리가 다시 들리더니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우리더러 빨갱이라며 북한으로 가라고 욕한다. 다시 아무나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시대가 됐어.”

ⓒ민중의 소리2012년 8월23일 민가협 어머니들의 900회째 목요집회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 정부에서 민가협 전성시대 맞을까 씁쓸하다”

민가협 상임의장을 맡은 조순덕 어머니는 “시대가 달라졌는데 국가보안법 한 줄 고치지 못했고 양심수는 그대로 있다. 전두환·노태우 시대는 매섭게 탄압하다가 물러서기도 하는 여유가 있었고, 심지어 박정희도 직접 학생들과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아예 무시하고 밀어붙이기만 한다”라고 말했다. 조순덕 어머니는 “박근혜 정부에서 민가협의 전성시대가 오는 것이 씁쓸하기만 하다”라고 덧붙였다.

유민호 어머니(1996년 연세대 ‘한총련 사태’로 구속된 연대 총학생회장 홍상욱씨의 어머니)는 “독재정권에서도 시대가 이렇게 암울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죽어서 시대가 이렇게 어둡다. 젊은이들이 살아나야 나라가 산다”라고 말했다. 아들이 민정당사에 사제 폭탄을 던졌다가 구속된 이영 어머니는 “세월호 유족들이 빨갱이라고 욕먹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 우리는 지금껏 당해와서 그 마음을 잘 안다. 우리는 자식들이 살아 있기라도 한데…”라며 울먹였다.

민가협 어머니들은 1993년 9월 문민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양심수 문제가 풀리지 않자,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목요집회’를 열고 있다. 고난 속 희망을 상징하는 보랏빛 수건을 두른 채. 10월16일은 그 1000번째 목요집회 날이다. 세월은 흘러가도 구호는 바뀌지 않았다. 국가보안법 철폐! 양심수 전원 석방!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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