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와 눈과 마음까지 호강시켜주며 현실에 윤활유를 뿌려줬던 이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목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2009년, JYJ 멤버들은 전 소속사와의 소송으로 아이돌과 소속사 간 계약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세상에 알렸다. 그들의 처우를 알게 되면서 모니터 속 ‘덕질 콘텐츠’로만 바라볼 수는 없게 됐다.

증거들이 모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가족’ ‘배은망덕’ 따위 프레임으로 상황을 재단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주위에서도 그런 유의 이야기가 들리면 울컥해 ‘일코(일반인 코스프레) 해제’가 되곤 했다. 평소 노동문제에 관심이 많던 언론이나 인사들도 미숙한 아이돌과 시끄러운 빠순이들로 간주하며 ‘가수 지망생들은 대형 제작사를 통해 스타가 되는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라’ ‘팬들은 소비자 운동을 해라’ 식의 훈계나 하고 계시니 답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속앓이를 했다 한들 당사자만 했겠는가. 우리가 자주 하는 말, “김박김 몸에서는 사리가 나올 거야(‘김박김’은 김재중·박유천·김준수의 성을 따서 부르는 JYJ의 별칭).”

계약 내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살인적인 스케줄, 반인권적 수익 분배뿐 아니라 스스로 만든 곡의 권리도 행사할 수 없었다. 3개월 만에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졌고 방해 시 2000만원 벌금을 물게 했지만, 법은 ‘보이지 않는 손’보다 힘이 약했다. 방송 활동은 어려웠지만 국가 홍보대사 활동은 많았다. 하지만 국외 인지도를 기반으로 이용만 되고 뒤통수 맞는 일이 계속됐다. 제주도 7대 경관 홍보대사 때는 해외 팬에게까지 ARS 투표를 독려했지만, 특별방송 출연은 취소되고 이전 소속사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했다. ‘출연진 결정은 PD 고유 권한’ 같은 말만 반복됐다.

ⓒ이우일 그림
싸움의 시간 동안 수니(빠순이)들은 머글(보통 사람) 세계로 나와 서명을 받았고,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이에 멈추지 않고 법원에 탄원서를, 공정위에 정식으로 신고서까지 제출했다. 제 3자로서 가능한 범위의 적극 행동은  계약기간이 7년을 넘지 못하게 하는 표준계약서가 강제화 되는 계기를 만들었고, SM과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에 JYJ의 활동을 방해하지 말라는 시정 명령을 내리게 했다. ‘덕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 짜릿한 경험이었다. 그들의 팬으로 느끼는 ‘희열 그 이상의 감동’ 혹자는 ‘연민’으로 팬들이 무조건 강하게 단합한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들을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버티기엔 긴 시간이 지났고 우리의 삶도 녹록지 않다. 멤버 개개인의 개성이 강해지면서 각자의 팬들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들에게 매료되는 것은 모든 길이 가로막혀 있는 곳에서 타협하는 게 아니라 계속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며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통 방해가 있을 때 출판물 형태의 음반을 만들었고, 곡을 받는 것조차 버거울 때 스스로 작곡 프로듀싱을 했다. 또 그룹 활동의 제약은 개성을 살린 개별 활동을 주력하게 했고 이는 각자의 내공을 다지는 시간이 되었다. 재중은 연기뿐 아니라 김바다, 윤도현, GLAY의 타쿠로 등 쟁쟁한 뮤지션과 작업하며 록 색깔의 앨범을 발표했다. 5년간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한 일본에서 여전히 스타디움급 공연장을 전석 매진시키는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유천은 최근 〈해무〉로 영화에 도전하며 평단에서 주목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그리고 준수는 솔로 앨범 이외에도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명실공히 최고의 뮤지컬 배우로 올라섰다. 이런 성과를 올리고도 방송에 나와 자기 자랑질 한번 못하니 우리 ‘어빠들’의 훌륭함을 머글들이 알 기회가 있겠는가. 혹 JYJ를 궁금해하는 머글이 생겨도 티케팅 참전을 놓친 그들에게 공연장 입성이 쉽냔 말이다.

JYJ는 대한민국 연예계가 꼭 기억해야 할 ‘아이돌-기획사 간의 계약 문제’에 의문을 제기한 당사자들이다. 데뷔 10년을 훌쩍 넘겼고 그 시간의 반은 활동 영역을 직접 기획하고 선택하며 책임져온 이들이다. 스스로 서 있는 방향을 인지하면서 자신의 언어로 발언하는 사람들의 팬이라는 것은 희열 이상의 감동이 있다.

기자명 중림동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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