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김찬호-어느 인문학자가 말하는 ‘부모’    9월17일(수)
② 이승욱-대한민국 부모, 안녕들 하십니까?    9월23일(화)
③ 서화숙-세월호가 부모들에게 남긴 숙제    9월30일(화)
④ 전성은-시골 노(老)교장이 말하는 오늘의 학교    10월7일(화)
⑤ 안상진-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공부:초등 편    10월14일(화)
⑥ 강지원-세상 어딘가엔 내가 미칠 일이 있다    10월21일(화)
⑦ 송인수-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이미 왔습니다    10월28일(화)

부모 노릇 하기 어려운 시대다. 지난봄, 바다에서 벌어진 참사 이후로는 더 그렇다. 아이들의 행복을 보장하기는커녕 안전과 생명마저 위협하는 사회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준비했다. 부모 교육 강좌인 ‘2014 등대지기학교’가 그것이다. 9월17일~10월28일 진행되는 등대지기학교의 전 강좌를 〈시사IN〉이 지상 중계한다. 강좌를 직접 현장에서 듣고 싶다면 이 단체 홈페이지(www.noworry.kr)에서 수강 신청을 하면 된다. 실시간 또는 녹화방송으로 동영상 강좌도 수강할 수 있다.


ⓒ시사IN 신선영저출산 시대라지만 많은 사람이 평생 한 번 이상 해보게 되는 역할이 바로 부모다. 부모 노릇은 죽을 때까지 끊을 수도 없다. 김찬호 박사(위)는 부모 노릇에 대해 인문학적 성찰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오늘 내게 주어진 주제가 ‘부모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인문학적 성찰을 해달라는 거다. 저출산 시대라고는 하지만 많은 사람이 평생에 한 번 이상 해보게 되는 역할이 부모다. 그런데 그 역할이 이런 강의를 들어야 할 만큼 힘들어졌다. 왜 그럴까. 그 얘기부터 시작해보자.

먼저 인간이라는 동물 자체가 다른 동물과는 다르다. 양육 기간부터가 워낙 길다. 그 이유는 인간의 뇌가 다른 동물에 비해 월등하게 커서다. 인간 뇌는 평균 1.3~1.4㎏으로, 500g인 침팬지에 비해 배 이상 무겁다. 뇌 크기로 보자면 인간의 임신 기간은 21개월은 되어야 적정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랬다가는 출산에 문제가 생길 터. 결국 인간은 10개월 만에 엄마 뱃속에서 나와 오랜 기간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이 생후 1년이다. 이 시기에 적절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외부와 소통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를 겪게 된다. 사도세자의 비극도 여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얻은 것은 서른여덟 살 때. 애지중지하던 큰아들을 잃은 지 7년 만이었다. 후궁이 사도세자를 낳자 영조는 크게 기뻐하며 생후 100일부터 아이를 생모로부터 떼어놓고 엄격한 태자 교육을 실시한다.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엄한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사도세자는 열 살 때부터 발작을 일으키는가 하면, 스무 살이 넘어서면서부터는 주변의 궁녀나 내시들을 해치기 시작한다. 자식에 대한 영조의 과잉 기대와 무관심이 결국 끔찍한 비극을 낳은 셈이다. 이는 어찌 보면 오늘날의 부모·자녀 관계와도 비슷하다. 지금 부모들 또한 자식에 대한 기대는 잔뜩 있으면서 자식의 마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지 않나. 자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힘들어하는지….

사람은 평생에 걸쳐 수많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중 대부분의 역할은 어느 순간 무(無)로 돌릴 수 있다. 부부간이나 사제지간도 끊어지면 그만이다. 반면 부모 노릇은 죽을 때까지 끊을 수가 없다. 그것이 어떤 때는 엄청난 기쁨을 주기도 하고 말 못할 고통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자문한다고 한다. ‘지금 알고 있는 아이를 그때도 알았더라면 아이를 낳았을까’라고(웃음). 이른바 ‘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뭐든 1만 시간 이상 노력하면 그 분야에서 프로가 된다는데 부모 노릇은 그런 것도 없다. 루소, 괴테, 간디, 피카소 등등 유명하다는 위인들도 자녀와의 관계에서는 쓰디쓴 실패를 겪었다.

다만 이들이 살던 시대와 달리 오늘날은 사회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일단 ‘아들 선호’가 ‘딸 선호’로 바뀌었다. 아빠들이 양육 전면에 등장하면서 ‘부성의 발견’도 이뤄지고 있다. 비혼과 저출산 현상이 만연하고,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가족 개념도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부모 되기는 더 어렵고 괴로워졌다. 과거 대가족 시절에는 부모나 삼촌이 아이 키우는 것을 보며 모든 사람이 일찍부터 육아를 경험했다. 결혼해서도 어릴 적 봤던 대로 비슷하게만 하면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선행 경험이 의미가 없어졌다. 부모 스스로도 ‘내가 살았던 세상을 아이들이 살아갈 게 아니기에 내 메시지가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의 권위가 더욱 서지 않는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는 과잉 상품화의 시대, ‘괜찮은’ 부모가 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대화할 때는 ‘무엇’보다 ‘어떻게’가 중요하다

그 속에서 ‘자녀 리스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과거 자녀 문제라면 보통은 사춘기 자녀의 문제를 가리켰다. 그런데 최근에는 “우리 애가 서른 살인데 취직도, 결혼도 안 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낸다”라고 호소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 우리보다 일찍 이런 현상을 겪은 일본의 경우,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집계되고 있기도 하다. 부모는 오직 아이만 바라보면서 아이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었는데, 정작 그 아이가 성장을 멈춘 채 무기력증에 빠지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상황에 이른 것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소통뿐인 것 같다. 따져보면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공부를 대신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건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소통은 노력하면 할 수 있다. 소통을 위해서는 일단 감정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고 할 때 몸이나 생각, 행동을 돌아보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을 살피는 일이다. 누군가 아주 상냥한 표정으로 내게 욕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반대로 누군가는 굉장히 좋은 말을 하는데 비꼬는 눈치다. 누구 말을 믿을 것인가. 대부분 전자를 믿는다. 이는 우리가 대화할 때 말이 아닌 표정, 곧 감정을 읽는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 스스로는 자신의 감정을 잘 읽을 줄 모른다. 화가 난 게 분명한데 이를 감추려 든다. ‘나 그 정도로 쪼잔한 사람 아니거든?’ 하는 식이다. 그런데 실은 쪼잔한 게 맞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니 분열이 일어나는 것이다.

감정 돌아보기 다음은 대화다. 요즘 아이와 나눈 대화를 한번 떠올려보시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오간 문장 대부분이 짧고 단순하지는 않았나? 일방적이지는 않았나? 대화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what(무엇)’보다 ‘how(어떻게)’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올바른 말이라도 그 말을 아침에 하느냐 저녁에 하느냐, 단둘이 있을 때 하느냐 여럿이 있을 때 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아이는 흔히 ‘how’에 반응한다. 부모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나를 대하는 방식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는 거다. 인격을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면 아이는 반발하게 돼 있다. 이것이 많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악순환이다.

최근에 혹시 아이가 내게 던진 질문이 있었는지도 떠올려보자. 인간관계에서 질문은 굉장히 중요하다. 부부간에도 애정이 사라지면 질문이 사라진다 하지 않나. 내가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궁금해하는지가 관계의 중요한 본질이다. 그런 만큼 아이가 부모에게 뭔가를 궁금해한다면 그건 굉장히 좋은 신호다. “엄마, 그땐 어땠어?” “아빠라면 그럴 때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이런 질문을 받아봤다면 훌륭한 부모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아이들 대부분이 ‘용돈을 얼마 줄까’ 말고는 부모에 대해 궁금해하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웃음).

ⓒ시사IN 자료아이를 함께 키우는 경험은 중요하다. 위는 서울 마포구 성미산 마을 성미산 대안학교.

대화법으로 들어갔을 때 부모와 자녀가 주고받을 수 있는 최고의 언사는 ‘축복/경탄/감사/위로/격려/칭찬’이다. 아이의 아주 사소한 행동에라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자. 스킬을 키우라는 게 아니다. 마음을 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반응이 나온다. 아이에게 감사하다는 표현도 하자. 내 경우 부모님한테 고맙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평생 잊히지 않는다. 어른들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자주 들은 아이는 아마도 절대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표현/고백/수다/공감/유머’도 부모·자녀 관계를 윤택하게 만든다. 부모부터 자기감정을 잘 읽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아빠가 요즘 걱정이 많아” 이런 표현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빠들의 경우 자기감정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껏 한다는 표현이 “나, 떨고 있니?”라는 식이다(웃음).

부모·자녀 간 최악의 언사는 ‘비난/냉소/경멸/비아냥/모욕/무시/저주’다. 미국에서 공부하다 포기하고 들어온 제자가 있다. 그러자 제자의 엄마가 보인 반응이 “네가 하는 일이 늘 그렇지 뭐”였다고 한다. 제자는 이 말에 너무도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러면서 생긴 관계의 틈을 메우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런 언사는 단 한 번만으로 평생 생채기를 남길 수 있다.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아이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고 높여주는 질문들

마지막으로 마음을 돌보기 위해 부모·자녀 간에 던져보면 좋을 듯한 질문들을 추려보았다. 일단 ‘우리 엄마(아빠)는 ________다’라는 빈칸을 아이 스스로 채워보게 하시라. 그런 다음 ‘나는/아이는 무엇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시라.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 친구, 음식 등등. 대부분의 부모가 아이들의 문제점은 잔뜩 안다. 그런데 아이가 좋아하는 건 잘 모른다. 당신 같으면 내 문제점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겠나? 아닐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게 돼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이의 강점과 매력은 무엇인가?’ ‘아이의 인생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던져보시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살아간다. 어찌 보면 이를 위해 공부하고 돈 벌고 성형하고 권력을 얻으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존재 가치를 정하는 기준이 너무 편협하고 획일적이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르지 않는 게 두 가지 있다고 한다. 남편 월급과 아이 성적.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사실상 이 두 가지만 갖고 상대를 평가하려 들지 않나.

이런 외적 지표 말고 아이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고 높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일이 부모 노릇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서 성적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해서 키워줄 수 있어야 한다.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보며 일상을 함께해온 부모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학교 교사는 한계가 있다. 고등과정으로 올라갈수록 학교는 아이의 실존이 아닌 성적에 집중할 뿐이다. 그런 만큼 “너의 매력은 이런 거야”라고 아이가 모르는 스스로의 강점을, 부모는 조금씩 부풀려서라도 계속 얘기해줄 필요가 있다. 나도 중학교 때 공부를 못해 의기소침해 있던 아이를 따로 불러내 “넌 참 달리기를 잘해” “친구들을 대하는 게 훌륭하던걸?” 하고 칭찬했던 일이 있다. 그랬더니 아이가 나중에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날 붙잡고 그러더라. “아빠, 내 장점 다시 한번 요약해줘”라고(웃음).

결국 부모 노릇을 잘하려면 의식을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존재 자체, 삶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바뀌려면 관계가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에 대한 나의 감정과 경험을 편안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부모가 주변에 셋 이상은 있어야 한다. ‘엄친아’ 얘기하면서 아이 성적 갖고 비교나 하는 자리가 아니라, 더 큰 비전을 공유하면서 자기 아이를 대승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자리에서 다른 부모들을 만나고 서로 배우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이것이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정리·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

기자명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문화인류학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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