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1일 발표한 박근혜 정부 첫 부동산 정책의 명칭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이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수직 증축 리모델링 허용 등 침체된 부동산 경기를 띄우기 위한 정책들이 주요 내용이었지만 명칭에서나마 정부는 ‘서민 주거 안정’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하지만 이런 체면치레는 오래가지 않았다. 전세난이 극심해진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정부가 두 차례에 걸쳐 내놓은 임대시장 정책의 명칭은 각각 ‘서민·중산층 주거 안정을 위한 전·월세 대책(지난해 8월28일)’과 ‘서민·중산층 주거 안정을 위한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지난 2월26일)’. 명칭에 ‘중산층’이 들어갔다. 전·월세 대책임이 무색하게 주택 구입 시 취득세 인하, 민간 임대사업자 세제 지원 등 무주택자보다는 유주택자를 위한 ‘당근’이 쏟아졌다.

올해 하반기 들어 정부는 더 다급해졌다. 지난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한 후 정부는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 방향(7월24일)’을 발표하며 ‘부동산 규제 완화’를 내세웠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풀고 분양가 상한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며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에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기조에 따라 수립된 구체적인 방안이 9월1일 발표된 ‘규제 합리화를 통한 주택시장 활력 회복 및 서민 주거 안정 강화 방안’이다. ‘서민 주거 안정’은 ‘규제 합리화’와 ‘주택시장 활력 회복’에 자리를 내주고 뒤로 밀려났다.

ⓒ연합뉴스재건축 예정 사업지가 몰려 있는 강남권에는 온기가 돌았다. 위는 서울 반포 주공아파트 단지 전경.

이번 9·1 대책의 골자는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이다. 갖은 수를 다 써봐도 가라앉은 부동산 시장에 쉽게 불이 붙지 않자 급기야 투기 수요가 가장 빈번한 재건축 시장에까지 규제의 빗장을 푼 것이다. 정부는 재건축 시기를 앞당길 수 있도록 재건축 연한을 최장 30년으로 줄이고, 서울시 등에서 의무화하고 있는 재정비 사업 공공관리제를 선택제로 바꾸며, 임대주택 의무건설 비율도 5%포인트 내리고, 학교·공원 용지 등을 기부 채납할 의무도 일정 부분 완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런 규제들이 “과거 시장 과열기에 도입된 것이니만큼 주택시장이 침체된 지금은 도리어 국민과 민간 부문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되고 있다”라며 완화 필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활황 여부와 상관없이 주택시장의 비리를 근절하고 무주택자의 주거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도입된 정책들도 이번 철폐 대상 규제에 여럿 포함돼 있다.

“사실상 건설사 민원 해소용이다”

대표적인 것이 2009년 오세훈 시장 시절 서울시에서 최초로 도입한 재건축·재개발 공공관리제다. 공공관리제는 정비구역 지정부터 시공자 선정 단계까지 구청장 등 공공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관련 비용도 지원하는 제도로, 정비사업의 투명성을 높여 비리를 근절하고 조합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으로 평가돼왔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2년 4월 시공사를 선정할 때 ‘공공관리 정비사업 공사표준계약서’를 적용한 동대문구 답십리동 대농·신안 재건축조합의 경우 공공관리제를 적용하지 않은 다른 조합에 비해 조합원당 평균 2100만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번 9·1 대책은 바로 이런 공공관리제를 신속한 재정비 사업을 저해하는 요소로 보고, 조합원 과반수가 원할 경우 사업시행 인가 전에도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도록 사실상 공공관리제를 ‘의무’에서 ‘선택’으로 바꾸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공공관리제의 골자는 시공사가 선정되기 전부터 재정비 사업 추진비용을 공공에서 지원해 조합이 시공사 측에 종속되는 것을 막는 제도다. 그런데 이로 인해 건설사들은 자신들이 조합을 장악하는 게 여의치 않자 서울시에 지속적으로 제도 완화를 요청해왔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정부에 직접 호소해온 것이다. 이번 정책은 사실상 건설사 민원 해소용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9·1 대책에서 ‘주택 공급과잉 유발자’로 찍혀 폐지 대상에 포함된 택지개발촉진법 역시 ‘도시 지역의 시급한 주택난을 해소하고 국민 주거생활의 안정과 복지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지난 1980년에 제정된 이후 일산·분당·광교·동탄 등 서울 근교 주요 신도시를 탄생시킨, 전통이 유구한 법령이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무주택자에게 가산점을 주던 기존 주택청약제도도 완전히 개편하기로 했다. 유주택자의 무주택자에 대한 ‘사다리 걷어차기’와 같은 이번 9·1 부동산 대책에 대해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사실상 무주택자 정책을 포기했다”라고 비판했다.

재건축 규제 완화를 중심으로 한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이후 재건축 예정 사업지가 몰려 있는 강남권 아파트 시장은 확실히 온기가 돌았다. 지난해 말 대비 서울 지역 아파트 값이 0.8% 상승하는 동안 강남·서초·송파구는 각각 2.2%, 2.2%, 1.3%씩 올랐다. 정부 대책이 결국 ‘강남 특혜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도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이번 9·1 대책과 관련한 질의·응답 자료에 “정책 수혜 대상이 될 서울의 아파트 24만8000가구 중 강남 3구는 3만7000가구(14.9%)에 불과해 강남 특혜라고 보기 어려움”이라고 설명해놓았다.

하지만 실제 누가 돈을 벌게 될지는 뻔하다. 재개발행정개혁포럼 전문수 사무국장은 “현재 재개발·재건축 시장에서 사업성이 있는 곳은 강남 지역 정도밖에 없어 강북의 많은 사업지에서는 시공사도 손을 떼려고 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정말로 전체 부동산 시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확신에서 이런 정책들을 내놓은 것인지 진정성이 의심스럽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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