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뜨요?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죠.”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불과 스무 걸음 남짓한 거리. 동네빵네협동조합 조합원이 운영하는 ‘마실ing’(서울 서대문구 홍은2동)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과 이웃한 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최근 대한제과협회와 파리바게뜨가 맞붙은 사건이 있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안에 파리바게뜨가 새로 문을 열었는데, 이것이 동반성장위원회가 권고한 ‘출점 거리 제한’을 어긴 것이라며 대한제과협회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해부터 기존 동네 빵집으로부터 500m 이내에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을 낼 수 없도록 출점 제한 조치를 취한 바 있다. 파리바게뜨가 이를 어긴 채 골목상권을 침해했다는 것이 제과협회의 주장이다.

ⓒ시사IN 윤무영신흥중 이사장(왼쪽)이 동네빵네협동조합이 설립한 공장에서 직원과 함께 반죽을 손질하고 있다.

또다시 불거진 갈등을 지켜보는 동네 빵집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동네빵네협동조합(동네빵네)에 속한 ‘빵집 사장님’ 11명도 마찬가지다. “동반위 권고 자체가 너무 늦었다. 이미 우리 가게 주변에 들어선 대기업 빵집만 6곳이다. 그런데 대기업들이 늦게 나온 권고마저 지키지 않으려 드니 답답할 뿐이다”라고 신흥중 동네빵네 이사장(62·깜빠뉴베이커리 운영)은 말했다. 그래도 ‘한 치 앞이 안 보였던’ 과거처럼 낙담하지는 않는다. 지난해 동네빵네협동조합을 만들면서 생긴 변화다.

신흥중 이사장에 따르면 동네 빵집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빵 굽는 기술만 있으면 처자식 먹여살리고 내 집 장만도 거뜬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을 전후해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물밀듯 밀려들면서 호시절은 끝났다. 서울 은평구와 서대문구 빵집 주인들이 속한 대한제과협회 서부지회의 경우 한창 때 회원 수가 300명 남짓까지 됐으나 지금은 50명이 될까 말까 한 수준이다. “지금껏 살아남은 동네 빵집 주인들은 정말 독한 사람들, 실력 있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신 이사장은 말했다. 그러나 이들조차 갈수록 궁지로 내몰리고 있었다. 새로운 빵 트렌드를 알음알음 배우러 다니고, 매장 인테리어를 돈 들여 바꿔봐야 늘 몇 발짝씩 앞서가는 대기업의 자본력과 마케팅 공세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협동조합이었다. 소상공인이 5명 이상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면 시설 지원을 해주겠다고 중소기업청이 나선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정부의 ‘눈먼 돈’을 먹겠다고 달려든 것만은 아니었다. 배이성 노블베이커리 사장(51·은평구 수색동)에 따르면, 공동시설은 이들의 숙원이었다. 협회 활동 등을 통해 오랜 기간 친목을 다져온 빵집 주인들은 ‘우리도 제대로 된 공장만 있으면 대기업과 맞붙어볼 만할 텐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지금처럼 가내수공업 식으로 각자 자기네 오븐에서 빵을 구워내는 구조로는 다양한 빵 또는 숙성 시간이 오래 걸리는 빵은 생산하기가 어려웠다.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도 한계가 뚜렷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시사IN 조남진천연 발효 반죽을 이용한 독특한 빵들이 인기를 끌면서 이들 매장의 매출도 크게 늘었다.

그렇다면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래, 우리도 협동조합 한번 해보자’며 11명이 뭉쳤다. 짧게는 8년, 길게는 40년 넘게 서울 서대문구·은평구에서 빵집을 해온 이들이다. 나이도 3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하다. 협동조합을 설립하면서 이들은 저마다 2000만~30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출자했다. 중소기업청 지원(2억2000만원)을 받기 위해서는 지원금의 20~30%에 해당하는 금액을 조합원 스스로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동네빵네협동조합이다. 동네빵네는 지난 1월 마침내 공장을 설립하는 데 성공했다. 장소는 서울 은평구 신사동. 조합원들이 속한 빵집과 가까워 언제든 신선한 빵과 반죽을 배달할 수 있는 위치다.

공장을 안내하던 신흥중 이사장은 천연효모 발효기며 대형 반죽기, 숙성고 등을 차례로 설명했다. 개인 사업자일 때는 사들일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고가 장비들이다. “시중에서 파는 빵 중에는 제빵개량제를 써서 반죽을 강제로 발효시키는 빵이 많다. 그래야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개인 빵집도 사정이 비슷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공장이 생기면서 천연효모 발효기 등을 이용해 2~3회에 걸쳐 반죽을 천천히 발효·숙성시키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로써 더 맛있은 빵, 건강에 좋은 빵이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로 또 같이,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동네빵네 조합원 가게에서는 이런 천연 발효빵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빵들을 만날 수 있다. 일주일간 세 번 발효시킨 빵에 붉은 쌀과 사과·건포도 등이 박혀 새콤달콤한 ‘일주일을 꿈꾼 빵’, 노아의 방주처럼 둥글게 생긴 빵 가운데 고소한 크림치즈를 얹은 ‘노아갈릭’, 빵 속에 든 무화과가 톡톡 씹히는 ‘무화과 꽃이 피었습니다’ 등이 그것이다. 이들 빵은 협동조합 설립 이후 각자 매장에서 잘나가던 대표 주자들을 개량해 공동 브랜드화한 것이다. “공장에서 새 빵을 개발할 때마다 조합원들이 모여 품평회를 하고, 이를 제품화할지 말지를 결정한다”라고 신 이사장은 말했다.

‘선수’들의 매서운 품평을 거친 이들 빵은 이미 상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지난 4월, 현대백화점 신촌점에서 일주일간 특별 입점 행사를 벌였는데, 이 기간에 빵 5000만원어치를 뚝딱 팔았다. 백화점 담당자도 입을 떡 벌릴 만큼 인상적인 기록이었다. 이런 입소문을 바탕으로 4월 말부터는 ‘SK 초콜릿’ 사이트에서 ‘동네빵네 건강빵 세트’ 판매도 이뤄지고 있다(인터넷 판매는 여름철에 일시 중단했다가 9월 중순 재개한다). ‘동네빵네’를 공동 브랜드로 내걸고 새롭게 출발한 조합원들의 가게 매출도 크게 늘었다. “한동안 빵보다 커피를 파는 데 치중하다 협동조합을 시작하고부터 다시 빵 비중을 크게 늘렸다. 신선하고 다양한 빵이 많아지니까 손님들 반응도 훨씬 좋아졌다”라고 최기권 마실ing 사장(52)은 말했다. 협동조합에 따르면 이들 조합원 가게의 매출은 이전보다 20~40%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시사IN 조남진조합원들은 ‘동네빵네’라는 공동 브랜드를 사용하되 매장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해피엔딩을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조합은 요즘 근심이 짙다. 조합원들의 매장이 선전하는 데 반해 공장은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기에 예상했던 것보다 투자금이 훨씬 많이 들어가면서 조합원들의 부담이 커졌다”라고 신 이사장은 말했다. 냉각팬, POS 기기 따위 추가 설비뿐 아니라 공장 운영에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었다. 수요·공급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데 따른 손해도 발생했다. 그러다 보니 1000만원에서 시작한 조합원들의 출자금 규모 또한 계속 늘어났다. 금융 빚을 얻느니 주머닛돈을 갹출해 적자 폭을 줄여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 조합원은 “매장에서 돈을 좀 만지게 되면 뭐하나. 공장 빚 메우느라 써야 하는데…”라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배이성 사장은 “처음에 공장을 너무 크게 시작했던 것 같다. 차근차근 규모를 키워갔어야 하는데 서로가 경험이 없다 보니 욕심이 앞섰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잘못된 지원 정책이 사태를 더 악화시킨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신규 설비 중심으로 지원을 하다 보니 골목상인들이 제대로 협동조합을 공부하거나 미래를 설계할 시간 없이 설비 투자에 매달리게 됐다”라는 것이다. 신흥중 이사장 또한 “지난 1년을 돌이켜보니 공장을 세우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경영적 안목과 노하우, 그리고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더라”라고 말했다.

‘우리 집(공장)’ 살리기 대를 이어갑니다

“협동조합을 선택한 이상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 집(공장)이 잘돼야 내 집(개인 매장)도 잘된다. 우리 집이 잘못되면 내 집도 미래가 없다”라는 신 이사장은 요즘 조합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우리 집’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방책을 궁리 중이다. 조합원 이외 가게들에도 빵 반죽을 제공하는 등 공장 거래처를 늘리고, 학교들을 상대로 빵 만들기 체험학습을 유치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마실ing의 안주인 안미진씨(47)는 “언젠가부터 파리바게뜨가 빵집의 대명사가 돼버렸다. 우리조차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협동조합을 하면서 그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 오랜 기간, 더 가까운 곳에서 이웃들의 건강과 추억을 챙겨온 것은 우리들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녀는 “혼자서는 어렵겠지만 여럿이 힘을 합치면 동네 빵집이 다시 빵집의 중심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이 집 장남 최지윤씨(25)가 지난해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것 또한 이런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일 터이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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