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2007년 11월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미군기지 이전 부지에서 미군기지 이전 기공식이 열렸다.

총공사비 10조원짜리 국책사업 평택 주한 미군기지 이전 사업이 표류 중이다. 한국 측이 한·미 간의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까지 공사 발주 방식을 변경하기로 결정하면서 사단이 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군기지 공사 지연으로 이어져 외교 마찰이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 4월11일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이하 이전사업단) 단장으로 박병희 소장(55·육사 31기)이 취임하면서부터 기지 이전 사업은 오히려 뒷걸음치는 모양새다. 박 단장은 취임과 동시에 파슬(Parcel)2와 관련한 사업의 추진을 모두 중단했다. 미 2사단이 재배치되는 파슬2는 평택 미군기지에서 가장 큰 규모(687만㎡)의 사업 부지로 부지조성 공사에만 8000억원 이상이 소요된다.

한 이전사업단 관계자는 “박 단장은 취임 일성으로 ‘지금 다 감옥 갈 짓을 한다. 발주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라고 말했다. 취임 일주일 만인 4월18일 박 단장은 미군기지 이전사업의 핵심인 ‘파슬(Parcel)2’ 부지조성 공사 발주 방식을 ‘설계·시공을 일괄한 턴키 방식’에서 ‘설계·시공 분리 방식’으로 변경했다. 이렇다 할 의견 수렴이나 회의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뉴시스기공식에 참석한 버시바우 미국 대사와 김장수 국방장관.
새 정부 들어 한·미 합의 백지화

이는 2007년 10월 한·미 간 파슬2 부지조성 공사를 턴키로 추진하자고 합의했던 것을 완전히 뒤엎는 결정이었다. 우리 정부는 2007년 12월 파슬2 턴키 입찰 방식을 국방부 장관 명의로 공고했고, 올 1월에는 국방부 이전사업단과 공동 사업시행사로 주택공사를 고시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박 단장은 일련의 과정을 무시하고 지난 5월13일 미국 측에 합의 파기를 통보했다. 현재 평택 미군기지 파슬2와 관련한 일정은 모두 중단된 상태다. 사업단 차원의 공론화조차 없다고 한다.

박 단장은 설계와 시공을 분리하는 방식이 국가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박 단장은 “설계·시공 분리 방식으로 갈 경우 턴키보다 최대 낙찰률 30%에 약 1800억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고 판단해 지난 9일 협상을 파기하고 발주 방식 변경을 결심했다. 한·미 양국 간 마찰은 시간을 두고 대화로 풀어갈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분리 방식은 경제 실익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시사IN〉이 입수한 국방부 문건에 의하면 “설계·시공 분리 방식이 잦은 설계 변경으로 인해 비용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업기간 차질 등으로 부실공사 발생 위험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공동시행사인 주택공사와 입찰을 준비 중이던 건설업체도 졸속 결정이라며 반발했다. 한 건설회계 관계자는 “분리 방식은 설계 변경 가능성이 높아 실질 공사비 지출 규모는 턴키 방식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 일정이 빠듯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리 방식이 경제적으로 별 이득이 없다”라고 말했다. 다른 건설업체 관계자는 “가격경쟁은 품질 저하로 이어지고, 설계 변경은 공기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공사 기간 3년 늦어질 듯

박병희 단장은 “2012년 11월 완공 예정인데 공사 기간이 고작 2∼5개월 늦춰질 뿐이다”라고 줄곧 주장해왔다. 그러나 미군기지 완공 시점은 최소 2~3년 이상 늦어질 것이라는 평가다. 주한미군 이전 사업 PMC(종합사업관리업체)에서 지난해 12월 말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완공 시점은 2015년. 아무리 빨라도 2013년 4분기에 사업이 완료된다고 평가했다(41쪽 사진 참조). 이전사업단은 보고서 작성을 위해 예산 수억원을 투입했지만 결과가 마땅치 않아 쉬쉬하는 실정이다.

더구나 갑작스러운 수주 방식 변경으로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이 1년 이상 더 걸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올해 3월 말 파슬2 부지조성 공사 발주 공고를 낸 뒤 8월에 시공사를 선정하고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박 단장이 사업 중단을 지시해 사업은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공사 지연은 불가피해 보인다. 황의돈 전 이전사업단 단장(현 국방정보본부장)은 “파슬2 부지조성 공사가 (발주 방식 변경으로) 수개월 늦춰진다면 다른 공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걱정했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는 장점이 있는 턴키 방식을 철회하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공사가 1년 늦어질 경우 이자만 500억원, 공사 비용을 모두 합하면 3000억원 이상의 돈이 더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상태라면 예정보다 1조원 이상 공사 금액이 늘어날 것 같다. 용산민족공원을 사용하지 못하는 비용은 물론 따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안희태2005년 7월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경찰의 과잉 진압에 항의해 집회를 갖고 있다.

미군 측, 한국에 항의 서한 보내와

비용과 더불어 수주 방식 변경은 참여정부 시절 한·미 간에 어렵게 합의를 이끌어냈던 사안을 뒤엎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박 단장은 지난 5월13일 주한 미8군 특별분과위원장인 러셀 대령과 미국 극동공병단(FED) 마크 케인 대령을 불러 약속된 턴키 입찰 방식 대신 ‘설계·시공 분리’ 방식으로 변경해 공사 발주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이 과정에서 한·미 간 사전 협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사업단 측은 미국과의 마찰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시사IN〉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전사업단 측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4월17일 SOFA 특별분과위 시설계획 미국 측 책임자 M 대령은 한국 측 장교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 심각한 우려를 전했다. 친분 관계를 고려한 M 대령의 표현은 점잖았지만 내용은 단호했다.

“이전사업단에서 패스트 트랙(Fast Track) 턴키 방식을 중지시킨 것을 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 측은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미군 측에서 제안한 방법은 명확했고 우리 제안대로라면 금년 8월 착공은 무난했을 것이다.” “솔직히 지금 문제들을 한국이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할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 어떻게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솔직해야 한다.”

한국 측 사업이 표류하면서 미군의 입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당초 한국이 맡기로 한 파슬2 공사에 대해 미국이 지분 45%를 요구할 가능성이 커졌다. 세계일보는 “한 주한 미군 관계자가 한국 측이 합의사항을 깨뜨린 만큼 주한 미군 측에서 자금을 대기로 한 파슬2 부지조성 공사의 공사 물량 45%는 주한 미군 측이 직접 업체를 지정, 공사를 추진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국방부에 전달했다”라고 보도했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최근 이틀간 열린 한·미 간 워크숍에서 미군 측은 한국 측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어 모든 발주권을 미군에서 행사하겠다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내비쳤다”라고 말했다. 미군 측은 공사 기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미군, 한국군 갈등에 실속 챙기기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한 고위 인사는 “용산과 지방에 흩어진 미군은 공사가 지연되는 것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공기가 연장되는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고스란히 한국 측이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 우선 공사 기간을 못 지키면 그만큼 더 돈을 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발주 방식을 변경한 것은 미군기지 이전 사업의 본질이 아니다. 실익도 거의 없다. 오히려 예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불필요한 분란만 야기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박 단장은 분리 방식 입찰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20일 박 단장은 “그동안 ‘턴키 방식’ 입찰은 공기를 단축하려는 것이었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어 공기 단축은 무의미해졌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박 단장은 분리 방식을 주장할까? 박 단장 결정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박 단장의 분리 방식이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시사IN 백승기지난해 말 종합사업관리업체가 작성한 보고서(왼쪽). 오른쪽은 4월17일 SOFA 특별분과위 시설계획 미국 측 책임자가 한국 측에 보낸 항의 서한.

우선 노무현 정부의 결정에 대한 근거없는 뒤집기라는 것이다. 한·미 간 국책 사업을 취임 1주일 만에 뒤집는 것은 박 단장 혼자의 생각만으로는 불가능했으리라는 분석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청와대와 이상희 국방부 장관의 교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국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사업까지 되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말 미군과의 협상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킨 대령 세 명이 징계를 당했는데, 이들이 이명박 정부에 정권의 희생양인 것처럼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 사업단 내 공병과 비공병 간의 뿌리깊은 갈등설이 자리한다. 공병 출신 박 단장과 핵심 인사들이 건설공사의 특수성만 내세워 미군과의 관계를 간과한다는 주장이다. 이전사업단은 공병과 비공병 간의 반목이 인신공격으로까지 이어져 분란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참여정부 시절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군기지 이전사업과 관련해 공병과 비공병 간의 싸움은 뿌리 깊었다. 내부 갈등을 봉합해서 억지로 끌고 가는 게 미군과의 합의보다 더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세 번째로는 박 단장이 퇴임 뒤 기지 이전 사업 권리를 가지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전사업단 주변에서는 토취장과 관련해 이권을 노리는 세력에 의해 분리 발주가 기획되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이번 분리 방식 채택으로 과거 건설회사에서 대접받지 못했던 공병 전역자가 대기업에 대거 채용되는 기회를 얻게 될 수 있다. 설계 변경이 잦을수록 발주자의 입김이 세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합의 파기의 배경에 대해 이전사업단 관계자는 “예산이 낭비되는 일을 막으려는 것일 뿐이다. 대형 사업에 뒤따르는 의혹과 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미군기지 사업단에서 싸움을 벌이자 시민사회의 염려도 다시 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미군은 틈만 있으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끊임없이 자기 몫을 따내려 할 것이다. 한국 측의 번복과 뒤이은 갈등은 미군에는 좋은 먹잇감이다”라고 말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범국민 대책위원회 공동상임대표 문정현 신부는 “미군기지 사업이 연기되고 있다는데 하지 말아야 할 미친 짓을 정부가 한다. 얻은 것까지 잃어버리는 바보 같은 정부 때문에 국민이 더 고생하게 생겼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