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자사고 교사들이 모였다. 재지정 심사를 앞두고 자사고가 처한 현실을 솔직하게 나누기 위해서다. 교사들은 일단 조심스러워했다. 학교에 알려질까 봐 걱정되고 “자칫 앓는 소리로 비치지 않을까 두렵다”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용기를 냈다. “바깥에서는 자사고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실태를 알리고 싶다”라고 했다. 7월16일 〈시사IN〉 편집국에서 세 시간 남짓 이어진 교사들의 방담을 지상 중계한다. 이들의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내용 일부는 각색했음을 알린다.
 

ⓒ연합뉴스‘전국 자사고 학부모 연합회’ 소속 학부모들이 지난해 9월 교육부가 주최하는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 공청회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회:자사고가 생긴 지 벌써 5년째다.

A교사:처음에는 굉장했다. 우리 인근 지역에서 7개 학교 정도가 준비했던 것 같다. 결국 우리 학교만 자사고에 지정됐지만.

B교사:학교재단이나 교장은 물론 평교사들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우리 학교엔 전교조 조합원이 몇 있는데, 그분들조차 자사고 전환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C교사:우리는 몇몇 교사가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학교가 돈 있는 애들만 받으면 되겠느냐 하면서. 대세를 꺾지는 못했다.

A교사:공부 잘하는 애들 뽑아놓으면 좀 편하게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다들 기대했겠지.

B교사:어느 학교든 처음 시작할 때는 나중에 미달 사태가 생기리라고는 상상 못했을 거다. 우리 학교만 해도 재단 탄탄하지, 학교 평판 괜찮지, 자신감이 있었다.

사회:실제로 매년 정원 미달 자사고가 속출한다. 자사고는 전출률도 10% 남짓해 특목고나 일반고보다 훨씬 높다.

A교사:학교 들어올 때 품었던 기대에 못 미쳐서 그런 것 아니겠나? 실제로 전학도 많이 갔다. 한 학년에 한 반 정도가 전학을 간 일도 있다.

C교사:아이들이 끊임없이 곁눈질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내신이 잘 오르지 않고 옆에서 자꾸 전학 가는 친구들이 생기니까 동요하는 거다.

B교사:우리 학교는 강제 야간 자율학습도 하지 않고 꽤 견실하게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편이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학부모들은 견실한 학교를 바라지 않는 것 같다. 그저 강한 학교를 원하더라(웃음).

 

 

A교사:맞다. ‘24시간 학교가 책임집니다’ 하면서 강제로라도 뭔가 시키는 걸 좋아한다.

사회:말은 자율형 사립고인데, 결국 바라는 건 타율로라도 명문대 보내달라는 걸까?

B교사:결국 핵심은 명문대 진학률이다. 우리 학교는 일반고 시절에 비해 서울대 진학률이 떨어졌다. 당연하다. 최상위권 애들은 특목고에 지원하거나, 거기 떨어지면 일반고에 가니까. 그런데 서울대 진학률이 떨어지니까 당장 입학 지망자가 팍 줄더라.

A교사:전반적으로는 자사고가 일반고에 비해 서울에 있는 대학을 많이 간다. 중학교 성적 상위 50% 안에 드는 아이들이 모였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도 엄마들은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기대에 거품이 끼어 있다.

C교사:입시 앞에서는 교육과정의 자율성도 허울이다. 인근에 있는 종교계 자사고를 보니까 5월에 있던 종교주간을 여름방학 직전 이수하는 걸로 바꿨더라. 중간고사 성적이 떨어진다고 엄마들이 아우성쳐서 그랬다고 들었다.

사회:그래도 자사고 교사는 일반고에 비해 상황이 나은 편 아닌가? 월급도 자사고 교사가 더 많이 받는 걸로 알려져 있던데.

A교사:그런 말 들으면 정말 괴롭다. 자사고는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게 돼 있다. 대신 학부모가 낸 돈으로 교사 월급도 주고 학교 운영을 해야 한다. 그러니 늘 빠듯하다.

B교사:우리 학교는 사실상 정액으로 주던 초과근무 수당이나 성과급을 지난해 지급하지 못했다. 신입생 미달 사태를 겪으면서 재정 결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연봉이 300만원가량 깎였다. 미달 사태를 겪은 학교들은 사정이 거의 비슷할 거다.

A교사:자사고는 방과 후 수업이 많아서 그런 걸 뛰면 수당이 꽤 나온다. 그런데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야자에, 주말 근무에 교사들 노동강도가 정말 세다. 요즘은 교무실 의자에 등을 대자마자 코를 고는 선생님들도 있다.

사회:자사고로 바뀌면서 인력도 충원되고 시설도 좋아진 것 아닌가?

 

 

 

 

A교사:기숙사 같은 데 과감하게 시설투자를 할 수 있는 학교재단은 극소수다. 일반 자사고는 교직원 월급도 감당 못해 허덕댄다.

B교사:인력 충원 같은 건 꿈도 못 꾼다. 처음에 자사고로 바뀌면서 나이 든 교사들이 명퇴(명예퇴직)를 많이 신청했다. 그런데 빈자리를 채운 상당수가 계약직이다. 정교사들도 신분이 불안한 판에 새 사람을 어떻게 뽑겠나.

사회:결국 학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겠다.

B교사:우리 월급 주는 분들 아닌가(웃음).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 애들 전학 가면 그만큼 수입이 줄어드는 거니까 그것도 신경 쓰이고.

A교사:갑을 관계가 뒤바뀌었다고 할까? 물론 학부모가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게 된 것은 좋은 변화라고 본다. 그런데 지나칠 때가 있다. 한번은 학부모들이 교사들과 집단 면담을 하고 싶다고 해서 가봤더니, 각자 수첩에 써온 요구 수십 가지를 일방적으로 읽고 끝내더라.

C교사:학교가 백화점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가 돈 냈는데 왜 그만큼 안 해줘?’ 따지고 드는 고객을 대하는 기분이랄까.

사회:자사고 유지를 요구하는 사람도 많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건데.

A교사:가르치는 처지에서도 확실히 자사고가 편하다. 수업시간 집중도도 좋고, 아이들이 순종적이어서 말도 잘 듣는 편이니까. 그런데 교육 환경 전반이 급속도로 무너지는 판에 내가 이런 소시민적 시각에 안주해도 되나, 싶다.

 

 

 

 

B교사:나는 자사고가 교육적 성과를 얼마나 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자사고 아이들은 한 가지 주제를 파고드는 힘이 매우 약하다. 진짜 공부가 아니라 입시에 최적화된 아이들일 뿐이다.

C교사:난 자사고 아이들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아이들이 성장하려면 성공의 기억이 필요하다. “난 애들 앞에서 춤을 멋지게 춰서 박수받았어” “난 단어 500개를 혼자 힘으로 외웠어” 이런 작은 성공의 기억들이 훗날 삶의 원동력이 된다. 그런데 자사고 아이들을 지배하는 건 패배감이다. 대개는 특목고를 준비하다 한 번 좌절한 아이들 아닌가. (자사고에서) 비슷한 아이들끼리 몰려 등수 경쟁을 하다 보면 패배감이 더 짙어진다. 그러면서도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느껴지는 아이들을 보면 터무니없는 우월감에 빠져든다. 나는 이런 아이들이 어른이 된 미래를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건 살아서 보는 지옥일 것만 같다.

녹취:조은희 인턴 기자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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