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아무개씨에게 7월5일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이다. 2년이 지났지만 그날의 악몽은 여전히 생생하다.

2012년 7월5일 저녁 8시, 경기도 평택시 신장동 미군기지 앞에서 악기점을 운영하던 양씨는 평소처럼 악기점에서 동생과 배달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주한 미군 7공군 소속 헌병 로드니게스와 베츠가 악기점 앞에 주차한 차를 옮기라고 지시했다. 주한 미군은 기지 밖에서 차량 이동을 지시할 권한이 없었다. 그래도 양씨는 저녁을 먹고 차를 옮겼다. 저녁 8시33분 문을 닫으려 하자, 미군 7명이 몰려와 차를 늦게 이동시켰다며 양씨를 바닥에 눕히고 양손을 꺾어 수갑을 채웠다. 시민들이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미군들에게 수갑을 풀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미군 7명은 항의하는 시민 신 아무개씨도 바닥에 쓰러뜨리고 양팔을 꺾어 수갑을 채웠다. 한국 경찰이 보는 앞에서 양씨와 신씨를 미군 기지 앞까지 끌고 갔다. 형이 끌려가자 항의하는 동생 양 아무개씨에게도 미군들은 수갑을 채웠다.

양 아무개씨는 바로 그 평택 수갑 사건의 피해자다. 그는 “2년이 지났지만 미군 당국이나 한국 정부로부터 사과 한번 받은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양씨는 지난 2년간 명예회복을 위해 싸우고 있다. 1차 가해자는 주한 미군이지만, 2차 가해자는 한국 검찰과 법무부였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YTN 화면 갈무리〈/font〉〈/div〉2012년 7월5일 미군 헌병대가 양진원씨 등 민간인 3명에게 수갑을 채운 채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YTN 화면 갈무리 2012년 7월5일 미군 헌병대가 양 아무개씨 등 민간인 3명에게 수갑을 채운 채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뒤 경찰이 조사에 들어갔다. 2012년 8월20일 경찰은 불법체포 혐의로 주한 미군 7명 전원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를 미적댔다. 늑장 수사에 대한 비난이 일자, 검찰은 “피의자들이 특수한 상황의 미군이고 인원도 적지 않아서 소환 시기 조율이 필요해 시간이 걸린다”라는 해명만 되풀이했다. 사건은 단순했고 증거도 충분했다. 폭행 피해자와 목격자 진술이 구체적이었고, 현장을 담은 CCTV와 시민들이 직접 찍은 현장 영상도 있었다.

4개월 뒤인 2012년 12월 피의자들이 모두 출국했다. 검찰은 필요하면 출석에 응하겠다는 확인서와 보증서만 미군으로부터 받은 뒤 출국에 동의했다. ‘봐주기 출국’ 논란에 검찰은 “강도나 강간 같은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아 출국 정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사건이 일어난 지 350여 일 만인 지난해 6월21일 검찰은 주한 미군 7명 전원에 대해 불법체포 혐의로 기소할 방침이라고 미군에 통보했다. 주한 미군은 ‘면책 카드’를 내밀었다. 검찰에 공무집행증명서를 제출했다. 공무 중에 발생한 사건이니 1차 재판권이 미군에 있다는 ‘방패막이’였다. 늑장 수사와 봐주기 출국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검찰은 공무집행증명서에 대해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그동안 검찰은 미군이 공무집행증명서를 제출하면, 미군에 1차 재판권을 인정해주곤 했다.

검찰이 이의를 제기하자, 한·미행정협정(주둔군지휘협정·SOFA) 규정에 따라 평택지청과 미국 7공군, 법무부와 미군 법무감실이 한·미 합동위원회를 열어 공무 중이었는지 아닌지를 협의했다. 한·미행정협정이나 합의 의사록에 따르면, ‘공무’는 공무 집행 중의 모든 행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근무 시간 중에도 ‘공무가 아닌 이탈 행위를 한 경우’ 공무로 보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비공무 중인 사건은 한국이 재판권을 가진다.

 

공무집행증명서에 대한 이의 제기 이후부터 검찰과 법무부의 엇박자가 시작되었다. 2013년 12월11일 한·미 양측은 공무집행증명서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한국은 재판권이 우리에게 있는 비공무 사건으로 보았고, 미군은 자신들에게 재판권이 있는 공무 중인 사건으로 보았다. 그러자 검찰은 이틀 뒤인 12월13일 7명에 대한 불기소 결정을 내려버렸다. 검찰은 보도자료를 통해 “한·미행정협정에 따르면 공무집행증명서가 공무 여부를 판단하는 충분하고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에 불기소 처분한다”라고 밝혔다.

지난 6월20일 김재연 의원(통합진보당)이 대정부 질문을 통해 불기소 처분 사유를 묻자, 황교안 법무부 장관도 “미국 측에서 공무집행증명서를 발부하면서 SOFA 규정에 따라 우리가 기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라고 해명했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미군 의견을 따른다?

그런데 〈시사IN〉이 입수한 사건 번호 ‘2012년 형제13651’이 붙은, 검사가 직접 작성한 공식 문서에는 불기소 처분 사유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재판권 불행사를 결정했다’라고 되어 있었다. 재판권 불행사는 ‘재판권이 우리에게 있지만 행사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미군의 재판권을 인정해 불기소 처분했다는 보도자료나 황 장관의 국회 해명과는 180° 다른 대목이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소속으로, 양씨 사건을 대리하는 김유정 변호사는 “재판권이 있는데 포기한 것인지, 미군 재판권을 인정해준 것인지 검찰 공식 문서에서 불명확하다. 정보공개 청구를 했는데 법무부가 기각했다. 조만간 정보공개를 위한 정식 소송을 내겠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검사가 작성한 문서에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위)이 재판권 불행사를 결정했다’라고 쓰여 있었다.
ⓒ시사IN 조남진 검사가 작성한 문서에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위)이 재판권 불행사를 결정했다’라고 쓰여 있었다.
결과적으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공무집행증명서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앞으로도 미군 측 견해를 따르는 전례가 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일·미 SOFA와 합의의사록에는, 공무 중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최종 주체가 미군이 아닌 일본 법원으로 되어 있다. 한국 법원도 공무집행증명서에 대한 ‘해석’을 내놓은 적이 있다. 포름알데히드 방류 사건으로 유명한 맥팔랜드 사건 당시 1심 재판부는 “공무집행증명서가 발급된 경우 1차적으로 재판권이 미군에 있지만, 반증에 의해 번복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때도 주한 미군은 공무집행증명서를 발급해 재판권을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 수사자료 등 여러 반증을 확인한 후 비공무 중인 사건으로 판단해 징역 6월을 선고한 바 있다(항소심에서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평택 수갑 사건을 수사하며 CCTV 영상 등 여러 반증 자료를 확보한 검찰은 기존의 법원 해석조차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

지난해 12월16일 피해자 양 아무개씨는 검찰로부터 ‘법무부 장관이 재판권 불행사’로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는 통보를 받았다. 피해자 처지에서는 불기소 처분 사유가 중요하다. 한·미행정협정에 따르면, 공무 중인 사건으로 미군에 재판권이 있을 경우 손해배상 청구 대상은 미군 당국과 한국 정부다. 반면 비공무 중 불법 사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대상은 주한 미군 개인을 상대로 해야 한다.

양씨와 변호인들은 검찰이 통보한 대로 비공무 중인 사건이지만 한국 정부가 ‘재판권을 불행사’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손해배상 청구 대상을 주한 미군 7명으로 보았다. 이들은 검찰의 동의를 받고 모두 출국했다. 이들을 상대로 소송 자체를 할 수가 없어서, 양씨는 지난 4월11일 수원지검 지구배상심의회에 손해배상을 신청했다. 양씨는 “나와 동생, 시민 신씨 등 세 명이 300만원씩 손해배상 신청을 했다. 이 돈은 없어도 된다. 명예회복 차원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