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는 싱겁게 갈렸다. 맛 전문가 3명은 만장일치로 국산쌀의 손을 들어줬다.

〈시사IN〉은 ‘삶과 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와 공동으로 국산쌀과 수입쌀의 맛을 비교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수입쌀이 이미 광범위하게 시중에 유통되고 있지만 일반인은 그 사실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오직 맛으로 국산쌀과 수입쌀을 구별할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실험은 지난 7월3일 오후 5~7시, 서울 서교동 ‘수운잡방’에서 블라인드 테스트(은폐 실험)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실험에 쓰인 쌀은 네 가지. 100% 국산쌀(강원도 홍천산)과 100% 수입쌀(미국 캘리포니아산), 그리고 ‘중국쌀 90%+국산찹쌀 10%’와 ‘미국쌀 50%+중국쌀 50%’로 섞인 두 종류의 혼합쌀이었다. 이들 혼합쌀은 식당가에서 선호하는 조합으로 알려져 있다. 실험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이들 쌀은 2012년 수확하고 2013년 도정한 쌀로 통일했다. 다만 국산쌀은 2012년 수확한 쌀을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워 2013년 수확해서 도정한 쌀로 대체했다.
 

ⓒ시사IN 조남진박상현·황교익·김경애씨(왼쪽부터)가 국산쌀과 수입쌀, 혼합쌀의 밥맛을 비교해보고 있다.


끼니 조합장인 황교익 음식평론가를 비롯해 김경애(요리사), 박상현씨(맛 칼럼니스트)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실험은 ①에서 ④까지 번호만 붙은 이들 쌀을 눈으로 관찰하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국산쌀과 수입쌀의 맛을 비교할 것이라는 것 외에 다른 정보를 일절 제공받지 못한 이들은 수입쌀과 혼합쌀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양새가 균일하지 못하고 쌀알에 크랙(균열)이 많이 보인다고 했다. “이건 특히 엉망이네요. 건조와 보관 과정에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④번 쌀 앞에서 황교익씨가 말했다. 기자만 알고 있던 그 쌀은 100% 미국쌀이었다.

그 사이 밥 짓기도 진행됐다. 가장 맛있게 밥을 지을 수 있다는 매뉴얼에 따라 모든 쌀은 깨끗한 물에 씻은 뒤 체에 밭쳐 40분간 불렸다. 밥 짓는 냄비에서 김이 피어오르자 3인은 주의 깊게 그 냄새를 맡았다. “이 밥이 냄새가 특히 구수한데요?” ②번 냄비 앞에서 김경애씨가 말했다. 중국쌀 90%에 국산찹쌀 10%가 섞인 혼합쌀이었다.

밥 짓기가 완료되고 테스트가 본격 시작되자 반전이 일어났다. 도자기 그릇에 담긴 밥을 눈으로 보고, 냄새 맡고, 입안에 넣어 굴려보며 꼼꼼하게 밥맛을 체크하던 3인은 고개를 갸우뚱하는가 하면 “어허” “참” 같은 감탄사를 뱉어냈다. “이건 밥 지을 때 냄새는 좋았는데 지금은 영 아니네요.” ②번 혼합쌀(중국쌀 90%+국산찹쌀 10%)에 대한 김경애씨의 지적에 두 사람이 맞장구쳤다. “뉘내(벼 알갱이 냄새)가 나요. 단맛도 없고 퍼석해요.”(황교익) ③번으로 표기된 또 다른 혼합쌀(미국쌀 50%+중국쌀 50%)도 단맛이나 탄력이 없다는 이유로 혹평을 받았다. “②번과 ③번은 씹을 때 침이 나오질 않아요. 침샘을 전혀 자극하지 못한다는 얘기죠.”(박상현)

그러면서 이들은 ①번 쌀, 곧 100% 국산쌀이 가장 낫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윤기와 찰기, 탄력이 뛰어나고 단맛도 제일 낫다는 것이다.

다만 3인의 관심이 더 집중된 것은 ④번 쌀(100% 미국쌀)이었다. ‘볼수록 묘한 쌀’이라고 황교익씨는 평했다. “쌀은 형편없었는데, 밥을 하고 나니 오히려 색깔이나 형태가 살아나네요.” 약간 딱딱한 식감이 있기는 하지만 취향에 따라서는 이런 쪽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다는 품평도 곁들여졌다.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저자이기도 한 박상현씨는 “질감이 굉장히 독특하네요. 이 정도면 초밥용 쌀로도 잘 어울리겠어요”라고 평했다.

 

 

 

 


네 가지 쌀의 정체가 밝혀지자 3인은 박장대소했다. “④번 쌀 밀었다간 큰일 날 뻔했어요.” “미제가 대단하긴 하네요.” 농담 속에 우려도 오갔다. “만약 2013년산 미국쌀이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몰라요.” “저 정도 품질에 가격이 훨씬 싸다면 국산쌀에 상당한 위협이 되겠어요.” 현재 20㎏ 한 포대를 기준으로 미국쌀 가격은 국산쌀에 비해 6000~7000원가량 싸다.

이날 실험에서는 최악의 평가를 받았지만, 이들은 혼합쌀이 시중에서는 충분히 통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오늘 우리가 오감을 총동원해 집중했으니 그렇지, 별 생각 없이 식당 밥으로 먹었다면 아마 모르고 넘어갔을 거다”라고 3인은 말했다. “식초와 식용유 한 방울씩 떨어뜨리면 뉘내도 사라지고 밥에 윤기가 돌아요.”(김경애) “흑미만 섞어도 감쪽같다죠.”(박상현) 실제로 쌀 유통업자나 식당 주인들은 “국산쌀과 수입쌀을 아무도 구분하지 못한다”라며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치곤 한다.

밥상의 들러리가 된 밥으로는 경쟁 어렵다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혼합쌀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스스로 잃어버린 밥맛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이들은 말했다. “식당에서 밥맛이 형편없다고 항의하는 사람이 있나? 없다. 반찬이 짜거나 차갑게 식은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게 밥맛인데….”(황교익)

박상현씨는 ‘밥이 밥상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것’을 우리 음식 문화의 특징으로 꼽기도 했다. 밥 자체가 주인공인 일본 음식과 달리 한국에서는 밥이 들러리가 된 지 오래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최고의 쌀’을 키워내려는 동기 부여도 이뤄지지 않는다. “지역에 따라 최상의 쌀맛을 낼 수 있는 품종을 찾아내고, 수확·건조·보관·도정하는 공정도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만 수입쌀의 거센 도전 속에서도 우리 쌀이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황교익씨는 말했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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