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크로스오버(crossover)다. 장르를 넘나든다. 그 중심에 신원호 PD가 있다. 그는 〈응답하라 1997〉(‘응칠’)과 〈응답하라 1994〉(‘응사’)를 통해 ‘과감한 시도로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일찍이 〈남자의 자격〉 ‘하모니’ 편에서 감동적인 휴먼 다큐멘터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예능과 드라마를 넘나드는 그는 ‘새로운 길은 즐거운 놀이터’라고 여기는 ‘예능 PD’다. ‘응칠’과 ‘응사’가 나가고 제일 기분 좋았던 반응은 무엇인가? ‘신선하다’ 그리고 ‘못 보던 드라마였다’는 반응이 제일 좋았다. 시작할 때부터 잘 만드는 것보다 다르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아, 이건 예능쟁이들이 만든 드라마라서 확실히 못 보던 이야기다, 못 보던 그림이다’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제일 기분 좋았다. 예를 들면 어떤 장면이 그런가? ‘응사’를 만들 때 그런 컷이 있었다. 삼천포가 화장실에서 정전이 되어 혼자 갇혀 있는데 보통 드라마에선 어슴푸레하게 창문 통해서 달빛 조명을 주고 실루엣 처리하는 식으로 촬영한다. 나는 어둡게 가고 적외선 카메라를 쓰자고 했다. 예능에서 멤버들이 밤에 자는 모습을 찍을 때 적외선 모드로 돌려놓고 자는 경우가 다반사다. ‘드라마에서 이렇게 만드는 거 처음 봤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익숙하지만 시청자들은 신선하게 생각했다.

예능에서 활용하던 디테일한 장치도 많이 눈에 띄더라. 예능은 타이트함을 미학으로 여기는 장르다. 1분 1초도 지루하면 안 된다. ‘응사’에서도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흘러가게 하면서, 삐삐나 갖가지 액세서리 그리고 당시 인기 스타들의 화보 같은 정보들을 계속 집어넣어 준다. 음악도 ‘아, 저 노래 있었는데…’ 하면 그 순간 그 음악 깔아주고, 염소 소리 같은 효과음도 ‘여기가 재밌는 포인트입니다’를 알려주는 장치였다. 다 예능 하는 이들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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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예능과 드라마는 이야기 전개 방식이 다르지 않나? 예능은 사후에 수습하는 장르다. 물론 예능도 캐릭터가 있고 스토리가 있다. 근데 그거는 우리가 사전에 틀을 만들어 부비트랩을 설치하고 판을 깔아놓은 다음 ‘자 노세요’ 한다. 그리고 편집으로 만들어가는 사후 수습의 장르다. 그에 비해 드라마는 사전에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걸 해본 적이 없다 보니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제일 컸다.

〈불후의 명곡〉 〈남자의 자격〉 등 예능에서 탁월한 성과를 올렸다. 그런데도 드라마라는 새로운 길을 택한 이유는? 새로운 예능 버라이어티를 기획하는데 너무 막막하더라. 오디션도 한물갔고 그렇다고 리얼이 아닌 걸로 가는 건 패러다임에 맞지도 않다. 생화를 본 시청자들이 조화는 안 보려고 한다. 이 와중에 뭘 해야 하나 싶은 고민이 많았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고, 그래서 장르를 바꾸는 것도 신선하겠다 싶었다. ‘응사’나 ‘응칠’ 모두 1990년대 이야기인데 그 시대를 다룬 특별한 이유가 있나? 회의할 때 온갖 이야기를 다 한다. 대부분이 농담 따먹기고 음담패설이다. 그러면서 아이디어가 나온다. 누군가 꺼낸 ‘빠순이’ 이야기가 참 재미있더라. 작가 중에 H.O.T. 열혈 팬이던 친구가 있기에 ‘너 팬질했던 이야기 좀 해봐라’ 했더니 정말 재미있었다. 그 친구뿐 아니라 이쪽 친구는 신화, 저쪽은 젝스키스, 다 그런 경험들이 있더라. 여자들은 공감하고 남자들은 못 듣던 이야기들…, 이른바 ‘흑역사’로 다 가려져 자기들끼리만 공유하던 이야기니까 모르는 사람은 신선하고 아는 사람은 공감하겠다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거다. 그러니까 소재가 먼저 정해지고 시대는 뒤따라온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tvN 제공〈/font〉〈/div〉〈응답하라 1994〉 촬영장의 신원호 PD(가운데 뒤). 신 PD는 예능에서 활용하던 장치를 드라마에 접목시키며 ‘응답하라’ 시리즈를 화제작으로 만들었다.
ⓒtvN 제공 〈응답하라 1994〉 촬영장의 신원호 PD(가운데 뒤). 신 PD는 예능에서 활용하던 장치를 드라마에 접목시키며 ‘응답하라’ 시리즈를 화제작으로 만들었다.
나이트클럽 가서 자신감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빠순이’ 이야기는 H.O.T.와 젝스키스가 맞붙었던 초기 아이돌 시대가 제일 재미있었다. 그런데 1997년 그 시절을 정확히 기억하는 세대는 재밌다고 볼 텐데 1990년대를 모르는 요즘 10대와 20대 초반도 재미있어할까 궁금했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 많이 가는 술집 ‘밤과 음악 사이’에 작가들하고 가봤다. 손님 대부분이 20대 초반 대학생들인데 1990년대 노래만 나왔고, 이 학생들이 그걸 다 따라 부르고 있더라. 그래서 확신을 얻었다. 1990년대 문화가 이들한테도 먹히는구나. 요즘 방송은 장르를 넘나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예능 PD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예능에는 모든 게 들어 있다. 음악·쇼부터 퀴즈 프로그램,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에다 〈사랑과 전쟁〉 같은 드라마도 있다. 그렇다 보니 예능 PD들은 직접 제작하지 않더라도 각 장르의 감수성을 조금씩은 맛보고 자란다. 그래서 이종교배,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변종들이 예능에서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요즘은 장르라는 게 별 의미가 없다. ‘여기가 내 땅이니까 내 땅에서만 있을래’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냥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일 뿐이다.

예능이 너무 과하다는 말도 있다. 풍자는 사라지고 사회를 너무 희화화한다는 지적이다. 예능이 많아진 것은 효율성 때문일 것이다. 투입되는 제작비에 비해 효율이 매우 높다. 그렇지만 포털 사이트 뉴스난을 보면 60~70% 이상이 연예인 뉴스 아니면 스포츠 뉴스다. 세상이 너무 가벼워지는 데 내가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은 가끔 든다. 어떻게 보면 딴따라들이 이용당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분명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분노해야 될 일이 많은데, 그것보다 연예인이 누구랑 사귀고 어떤 프로에서 누가 했다는 말 한마디, 이런 게 더 중요한 뉴스로 다뤄지는 것이 다반사다. 개인이 조절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우리 사회의 큰 흐름에 관한 문제인 것 같다. 그것이 고민거리다.

어릴 때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다고 들었다. 장래희망 난에 영화감독 말고는 써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 영화잡지를 보고 어려운 용어 다 외우고 친구들한테 잘난 척하고 그랬다. 2학년 때 우연히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비디오를 봤다.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정말 1분도 이해할 수 없는 영화를 내리 세 번을 봤다. ‘영화 소년’을 자처했는데, 모르겠더라.

드라마로도 성공했는데 영화감독 할 생각은 없나? 〈역린〉을 만든 이재규 감독도 드라마 PD 출신이다. 그동안 뛰어난 PD들이 영화판으로 제법 갔는데 대부분 잘 안 됐다. 흥행에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이가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을 만든 김석윤 감독이다. 예능 PD 출신이다. 다음 달부터 〈조선명탐정 2〉를 크랭크인하는데 그 형이 만든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이 470만 관객을 넘었다. 분명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이미 100만이 보던 시대가 지났다. 상업영화는 무조건 관객 1000만을 지향하고 가야 하는데 그건 결국 〈해피선데이〉 만드는 원리랑 똑같다. 1000만명이 보려면 초등학교 졸업생부터 박사까지 다 봐야 하고 아이부터 7080 노인까지 다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국 예능 PD가 경쟁력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신 PD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프로그램은 〈남자의 자격〉이다. 그중 박칼린이 지휘한 ‘하모니’ 편(7부작)은 감동적인 휴먼 다큐멘터리였다. 드라마에 진출하기 전에 다큐에서 이미 성과를 높였던 셈이다.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 당시 우리 멤버는 이경규씨 등 아저씨 7명이었다. 그 7명이 늘 주인공이었는데 이들이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되는 미션을 하나 하고 싶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이루어내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작가가 〈하모니〉라는 영화를 보고 와서 ‘합창으로 해볼까요?’ 하더라. 영화 〈하모니〉? 교도소의 여자 죄수들이 만든 합창단 이야기 말인가? 좋은데 고민이 많이 되더라. 우리 멤버들이 너무 안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끝에 뭐가 있을까? 합창은 잘 되더라도 엔딩에 특별한 뭐가 있을까? 인터뷰를 해보니 합창단 공연을 마치고 다들 그렇게 운다더라. 공연을 하고 나면 오케스트라 단원도 그렇게 북받친다고 하더라. 그거다 싶었다. 공연 마친 후의 울음에 끌렸다? 잘은 몰라도 그림은 신선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공연을 마쳤는데 갑자기 확 밀려왔다, 그 감동이. 눈물이 계속 펑펑 나더라. 끝나고 나서 그날 이우정 작가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원래 우리는 닭살스러운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다. 워낙 친하니까. 우정이가 나한테 문자를 보냈는데 ‘야, 우리 방송하면서 이런 날이 다시 올까?’였다.  〈남자의 자격〉 ‘하모니’ 편은 예능 프로그램에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스토리가 있어야 웃음도 커지고 감동도 커진다는. 시청자들 취향이 고급스러워졌다. 뿅망치 한 대 때려서 빵 터지는 그런 파편적인 웃음보다 캐릭터들이 스토리를 타면서 만들어가는 진짜 웃음을 좋아한다. ‘하모니’ 편의 감동도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마지막에 얻어진 그런 효과였던 거 같다. 다큐멘터리도 예능도 이제는 정말 스토리가 중요하다. ‘응사’ 후속도 드라마다. 어떤 드라마인가? ‘응답하라’ 3편이 될지 아니면 아예 새로운 드라마가 될지 계속 열어놓고 회의를 하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지금 석 달째 회의가 계속 뱅뱅 돌고 있다. 만약 ‘응사’ 3편으로 가게 되면 그것도 1990년대가 배경인가? 아직 그 판단이 안 선다. 시대 배경보다 무슨 이야기를 할 거냐가 더 중요하다. ‘응칠’은 이른바 ‘빠순이’와 1세대 아이돌 이야기가 중심이고, ‘응사’는 서울에 상경한 촌놈들 이야기가 기둥이었다.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이 크다. 그걸 잡는 데 오래 걸린다. 회의를 계속하는데 농담 따먹기만 하고 있다.

기자명 황용호 (KBS 프로듀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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