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의 광주를 떠올리는 것은 이념의 좌표를 떠나 누구나 조심스럽다. ‘광주사태’에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폭도’에서 ‘유공자’로 형식적 복권은 이뤄냈지만 여전히 현실에 그림자를 드리운 그날의 광주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심지어 방관자까지도 모두가 잊고 싶어하는 사회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선의와 용기로 앞에 섰던 사람들은 희생되었고 권력이나 행운이 따랐던 사람, 무감각했던 이들은 지금, 여기에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광주에서 태어나 가족들과 지인들의 고통을 목도한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 싸우던 열다섯 살 소년 동호,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핍진한 삶을 되새기며 우리가 ‘붙들어야 할’ 역사적 기억을 환기시킨다. “그날 도청에 남은 어린 친구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총을 메고 창 아래 웅크려 앉아 배가 고프다고 말하던 아이들, 소회의실에 앉아 카스텔라와 환타를 얼른 가져와 먹어도 되느냐고 묻던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뭘 알고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

ⓒ5·18기념재단 제공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사회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평론가 신형철은 이번 소설을 ‘시적 초혼과 산문적 증언을 동시에 감행하는, 파울 첼란과 프리모 레비가 함께 쓴 것 같은 문장’이라 평했는데, 마침 프리모 레비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쓴 마지막 에세이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도 출간되었다. 야만의 상징,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후 평생을 ‘시대의 증언자’로 살았던 레비는 홀로코스트의 가르침이 역사의 ‘잔혹한 사건들 중 하나’로 점점 잊혀갈 것이라 확신하며 절망을 느낀다. “이상(理想)이 없는 것이 아니라 확실성이 없는 회의적인 세대, 심지어 드러난 거대 진실들을 믿지 않는 세대가 성인의 나이로 접어들고 있다. (…) 젊은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우리는 그것을 의무로, 또한 위험으로 인식한다. 우리가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위험,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위험 말이다.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 경험을 넘어 집단적, 근본적으로 중요하고 예기치 못한 사건의 증인이었다.”

트라우마는 그것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트라우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하기 싫은 것을 선별적으로 지워낸다. 또 누군가는 그 트라우마가 공동의 기억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고 싶어하기도 한다. “기억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기억이 기록된 뒤 그로부터 해방되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34년이 흘렀고 세상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는 불의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가라앉은 자들을 대신해 증언하고 기록해야 한다. 그것이 운 좋게 구조된 자의 책무다.

기자명 박정남 (교보문고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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