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도 아파트 가격이 올랐다고 썼어요. 거짓말은 아니죠. 정말 올랐거든요. 3만원.” 어느 방송사의 부동산 담당 후배 기자가 토로했다. 가격상승률이 0.03%로 1억원짜리 아파트가 3만원 올랐다는 식이다. 후배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는 두건장이 노인의 표정이었다.

2014년 설날을 기점으로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기사들이 일간지 경제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내용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가격변동률은 소수점 두 자리대였다. 침소봉대였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1년째에 부동산 활성화 정책에 목매다시피 했다. 부동산 부양 정책이 경제민주화 정책을 대체했다. 권력은 언제나 땅에서 나온다. 부동산을 살려야 지지율이 오른다. 그러나 정작 시장이 꿈쩍도 안 했다.

결국 언론이 동원됐다. 시장은 심리다. 동네방네에서 언론이 오른다고 떠들면 정말 오르는 것도 같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때나마 70%에 육박했던 여러 이유 중 하나다. 2·26 주택임대차 선진화 방안이라는 자충수만 두지 않았으면 이런 착시 효과는 더 갔을 것이다. 어쨌든, 착시 효과든 침소봉대든 이런 식으로 지지율을 부양하는 데 성공했다. 통했다. 통한다. 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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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였다. 서울 동북4구라 불리는 성북구와 강북구와 도봉구와 노원구가 행복4구 플랜이란 걸 발표했다. 행복4구 플랜의 핵심은 창동차량기지 재개발이다. 창동차량기지는 2019년까지 경기 남양주시로 이전한다. 동북4구는 창동차량기지를 제2의 코엑스로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일자리가 8만 개나 창출된다는 설명이다. 물론 동네 집값과 땅값도 강남만큼 오른단다.

행복4구 플랜도 지방선거를 의식한 전형적인 토건 공약이다. 선거판에서는 또 먹힐 공산이 크다. 가계부채는 1000조원이 넘어섰다. 주택담보대출이 절반이다. 토건 공약이라도 있어야 땅이 스스로 몸값을 불려서 빚을 탕감할 수 있다. 유권자들이 토건의 주체이자 볼모다. 이러니 6·4 지방선거도 땅따먹기다.

동북4구는 도시개발계획을 확정하기 위해 학계에 조언을 구했다. 요식행위였다. 뜻밖에도 일부 도시 전문가들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도시 전문가들은 창동차량기지를 ‘그냥 내버려두자’고 주장했다. ‘렛잇고(Let it go)’를 외쳤다. 도시 전문가들의 논리는 이랬다. “개발하지 않는 것도 개발이다. 우리 세대에서 서울의 모든 땅덩어리를 다 소진해버리면 다음 세대가 숨 쉴 공간이 사라지고 만다.” ‘레츠고(Let’s go)’를 외치려고 벼르고 별렀던 동북4구는 버럭했다. 바보야, 문제는 부동산이야.

하이라인을 꽃과 나무와 벤치로 꾸민 뉴욕의 선택

미국 뉴욕 맨해튼 웨스트사이드에 있는 하이라인은 20년 동안 방치된 화물 전용 고가철도였다. 창동차량기지처럼 다 때려부수고 제2의 세계무역센터 같은 걸 지을 수도 있었다. 뉴욕 시는 좀 다른 선택을 했다. 하이라인에 꽃과 나무와 벤치를 꾸렸다. 21세기의 센트럴파크로 탈바꿈시켰다. 원래 뉴욕 시는 야구장을 세울 작정이었다. 뉴욕 시민들이 나섰다. ‘하이라인 친구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시 당국을 설득했다. 〈뉴욕 타임스〉가 하이라인 친구들 편을 들자 여론도 돌아섰다. 하이라인은 뉴욕이 토건 도시냐 생태 도시냐를 결정하는 시금석이 되었다.

동북4구에서도 하이라인을 꿈꾸는 목소리가 들렸다. 정치인과 유권자가 합심해서 눈과 귀를 닫고 있었을 뿐이다. 언론도 무심했다. 그렇게 제2 코엑스가 이겼다. 매번 이랬다.

오늘도 기자들은 호시탐탐 부동산 회복세 기사를 쓸 기회만 노린다. 언론은 독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를 해서 돈을 번다. 정치인은 유권자가 원하는 걸 해줘서 표를 얻는다. 정작 유권자는 무엇을 듣고 싶은지도,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악순환이다. 이러면 렛잇고는 없다. 레츠고다.

기자명 신기주 (〈에스콰이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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