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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섬길 것인가, 정의를 섬길 것인가

어떤 사건도 우연히 일어나는 법은 없다. 한 사회에 누적된 역사적 원인이 종합적으로 얽히고설켜 발생한다. 한 사회의 도덕은 소속된 개인의 도덕을 지배한다. 정의는 사회를 사회답게 하는 유일한 도덕이다.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전 교육혁신위원장) webmaster@sisain.co.kr 2014년 05월 15일 목요일 제3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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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비극을 계기로 정의를 생각해본다. 한 국가 또는 사회가 건강한 국가, 사람이 살 만한 사회가 되게 해주는 것을 도덕이라고 한다. 그 도덕의 핵은 정의다.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는 그 어떤 덕목도 무용지물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의는 사회를 사회답게 하는 유일한 도덕이라고 할 수 있다.

개개인의 도덕이 모여 한 사회의 도덕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회의 도덕이 소속된 개인들의 도덕을 지배한다. 다시 말하면, 한 사회에 고르게 널리 퍼져 있는 문화와 가치가 개개인의 삶에 크나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한 개인의 도덕은 그 사회에 편만한 문화, 즉 가치 앞에 무기력하다.

예수는 “하나님과 돈을 똑같이 섬길 수 없다”(마태복음 6장24절)라고 했다. 이 말을 사회에 적용하면, ‘정의와 돈’은 함께 추구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한 사회가 정의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돈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의의 실현에서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성장만이 참된 성장이다. 성장을 제일 가치로 알고 정의를 희생해가면서 얻어진 성장은 그 사회를 파멸로 몰고 간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경제성장을 국가의 최고 가치로 정착시켰다. 성장이 우리 사회의 ‘신’이 되었다. 국가도, 교회도, 학교도 돈벌이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회가 되었다. 국가는 국민소득으로, 교회는 헌금 규모로, 학교는 일류 대학에 몇 명이나 입학시켰는가로 그 가치가 매겨진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안산 화랑유원지에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일반인들의 조문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시사IN 신선영
안산 화랑유원지에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일반인들의 조문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400여 년 전, 우리 민족은 임진왜란이라는 혹독한 전란을 겪으면서 정신의 시험대에 올랐다. 당시의 조선왕조는 충효와 절개라는 유교적 덕목으로 국가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애휼·애민의 정신과 균분(均分)에 입각한 사회적 정의가 필요했음을 깨닫지 못했다.

한 사회를 떠받치는 두 기둥, 종교와 교육

지금의 한국 사회 또한 일제 35년의 강압통치를 겪고도 한 사회를 떠받치는 힘이 ‘정의’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주축이 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로 나라가 남과 북으로 쪼개지는 통한의 비운을 맞고도, 6·25라는 값비싼 비극을 시대의 회초리로 깨닫지 못했다. 그리하여 북한은 북한대로 김일성 왕조 구축을 위해, 남한은 남한대로 이승만의 영구집권과 자유당 일당독재를 구축하는 데 국가의 모든 정력을 쏟아 부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권력 집단은 한 사회의 도덕을 결정하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불행에 책임져야 한다.  
ⓒ연합뉴스
권력 집단은 한 사회의 도덕을 결정하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불행에 책임져야 한다.
그렇게 여러 번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정의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어른들은 깨닫지 못했다. 결국 청계천의 걸인들과 어린 학생들이 들고일어나 자유당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경찰의 총구를 향해 돌진했다. 희생 끝에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는 4·19라는 결실을 일궈냈다.

이후 등장한 군사정권이 내건 것이 경제성장이었다. 경제성장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으로 삼았다. 역사적 사명이란 곧 한 사회가 우선해서 추구해야 하는 절대 가치, ‘신’의 다른 이름이다. 고대국가 시대에서부터 근현대 일본, 히틀러의 나치 독일, 무솔리니의 파쇼 이탈리아 군국주의 제국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내건 슬로건이 바로 ‘민족중흥’이었다. 갖가지 식전 행사는 물론이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직전까지 민족중흥을 암송하며 살아야 했던 어두운 시절에 해직과 투옥, 심지어 죽음으로 맞선 것은 젊은이와 어린 학생들이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어린 박종철군의 피였다. 우리 금쪽같은 새끼들의 피로 얻은 시민정권을 ‘사이비 시민정권’ 이명박과 박근혜에게 넘겨준 세대는 과연 어린 세대인가, 어른 세대인가?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사고, 용산 참사 등에서 비롯된 메시지를 허투루 넘겨버린 어른 세대의 잘못으로 들이닥친 사건이 바로 어린 유아원생들의 컨테이너 화재와 대학 신입생들의 강당 천장 붕괴 참사였다. 어린 생명들의 희생이 주는 메시지를 신이 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민족은 망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2년 1월14일 오후 서울 갈월동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인권보호센터)에서 열린 고 박종철 열사 25주기 추도식에서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유가협 회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2년 1월14일 오후 서울 갈월동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인권보호센터)에서 열린 고 박종철 열사 25주기 추도식에서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유가협 회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돈과 정의의 관계는 반비례한다. 돈을 추구하면 정의는 설 자리를 잃는다. 한 사회가 얼마만큼 돈을 최고 가치로 삼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정의의 폭이 결정된다. 돈이 전부가 되면 정의는 전무(全無)가 된다.

정치의 목적은 정의의 실현에 있다. 경제의 목적은 평등(부의 공정한 분배)의 실현에 있다. 문화의 목적은 자유의 실현에 있다. 종교와 교육은 한 사회를 떠받치는 두 기둥이다. 종교의 임무는 정의가 무엇인지, 참 평등이 무엇인지, 참 자유가 무엇인지를 선언하는 것이다. 특히 정치가 그러한 정의와 평등과 자유를 위해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는지를 감시하고 경고하고 질타해야 한다. 교육의 임무는 아이들이 뒷날 선거권을 가진 성인이 되었을 때 정당이나 정치가가 발표하는 정책이 누구에게 유리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추도록 힘쓰는 일이다.

종교와 교육이 정치와 야합하거나 시녀 노릇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종교와 교육이 타락하면 불의를 정의라고 믿고 정의를 불의라고 믿는, 그리하여 찍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찍어 제 발등을 자기가 찍는 눈뜬장님이 되고 만다. 종교 안에서의 민주화, 교육정책의 올곧음이 지금 이 시대에 더욱 요구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한 사회의 신이 돈이 되느냐, 정의가 되느냐는 누가 결정하는가? 바로 엘리트들이다. 정치·경제·언론의 학문 엘리트이다. 종교계의 학문 엘리트이다. 그들이 한 사회의 도덕을 결정하는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힘없는 백성들이 아니다. 권력을 장악한 엘리트 집단이 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행한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사건도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법은 없다. 한 사회에 누적된 역사적 원인이 종합적으로 얽히고설켜 발생한다. 세월호의 비극은 목사도 승려도 정치가도 기업가도 학자도 교육자도 모조리 돈을 섬기는 장사꾼이 되어버린 정의가 부재한 사회가 빚어낸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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