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체육관이 있다. 사고 초기부터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체육관의 1층은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해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고, 정홍원 총리가 물병 세례를 받았고,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라면을 들이마신 곳이 체육관 1층이다.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체육관 2층은 들어 갈 수 있었다.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보니 빈자리가 많았다. 시신이 수습된 가족들이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가족들은 칸막이도 없는 바닥에서 뜬눈으로 2주일째 지내고 있었다. 그런 가족들을 위에서 내려다보자니 정말로 미안했다. 그곳에 머물면서 취재해야 하는 기자들의 심정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초기에는 경쟁적으로 취재를 하는 바람에 가족들의 신상이 그대로 노출되는 등 물의를 빚었지만 이제는 기자들도 같이 지쳐가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도 팽목항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을 할 때도 가급적 조심스럽게, 그리고 조용하게 했다. 사람들은 행동도 조심스럽게 하는 것 같았다. 마치 무성(無聲)영화를 슬로비디오로 보는 기분이랄까. 팽목항은 무거운 슬픔이 감도는, 비탄에 빠진 곳이었다. 비탄은 좌절로, 그리고 좌절은 분노로 바뀌어가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자원봉사 단체들이 기울이는 정성의 10분의 1이라도 들여서 안전관리에 신경을 썼더라면 이런 사고는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양쪽에 쳐놓은 천막 속에 앉아 있었고, 그 사이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자들이었다. 안면이 있는 한 기자가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해왔다. 나는 “여기서 웃으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정색을 하고 나무랐다. 지나서 생각해보니 단순히 반가움을 표시하는 기자에게 지나치게 냉정하게 군 게 아닌가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만큼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미안하게 느껴지는 곳이 팽목항이었다.
천막 시설이 이어져 있는 한복판에 바다를 내다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 가족들이 간절히 기도를 드리는 바로 그곳이다. 한 스님이 목탁을 치면서 남은 자의 생환과 떠난 자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그 옆에는 대형 스크린을 단 차량과 상황판이 있었다. 상황판에는 그날 바다에서 수습한 시신의 인상착의가 적혀 있었다. 처음 가 보았을 때에는 194번에서 198번까지 게시되어 있었다. 모두 세월호 5층 로비에서 발견된 남녀 학생들이었다. 신장이 얼마이고 머리칼이 어떠며, 옷과 양말은 어떤 상표라는 내용이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 다시 상황판에 가서 보니 204번까지 게시되어 있었다. 역시 대부분 5층 로비에서 발견된 학생들이었다. 상황판에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가족들에게 아픔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기자들은 인상착의 내용을 취재노트에 옮겨 적었고, 어떤 기자는 휴대전화로 슬쩍 찍기도 했다. 옆에 있던 어떤 이가 “저 아이가 맞는 것 같다”라고 했다. 그 사람은 아이의 삼촌뻘 되는 친척일 것이다. 부모들은 차마 상황판을 볼 용기가 없다고 한다. 옆에 있던 다른 이는 “도무지 어디에 그렇게 꼭꼭 숨었지” 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 역시 아이의 부모가 아닌 친척일 것이다. 이렇게 해서 4월29일은 저녁까지 총 12구가 수습되었다.
시신을 내린 P-69호는 다시 사고 해역으로 향했고, P-73호가 항구로 들어왔다. 하얀 광목이 다시 펼쳐지고 얼마 후 부모의 절규가 또 들렸다. 그리고 구급차 한 대가 항구를 빠져나갔다. 멀리서 방송사는 이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CNN 취재진도 이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한 기자는 처음에는 취재진이 지나치게 보도했지만 이제는 보도에 제약이 많다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지난주에는 기자들이 돈을 모아 배를 빌려 타고 사고 해역까지 나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현장 접근이 아예 차단돼 있다고 한다.
언론은 사고 현장에서 해경이 취한 조치에 의구심을 갖고 추적하고 있다. 해경과 민간 잠수부, 해경과 해군, 그리고 해경과 언딘이라는 해난구조 업체와의 관계가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그런 분위기를 알았는지 팽목항에는 사복 경찰관이 많이 나와 있었다.
초기 대응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해경은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과연 해경을 그렇게 비난만 할 수 있을까. 시신을 운반하느라 팽목항을 들락날락하는 경비정만 해도 무척 낡아 보였다. 해경에게 충분한 인력과 장비, 그리고 예산이 주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해경의 지휘부는 함정을 지휘해본 적이 없는 고시 출신이고, 현장 인력은 훈련과 사기가 수준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해경이 초기 구조에 실패한 이유는 이런 구조적 문제도 있을 것이다. 미국 해안경비대는 육·해·공군·해병대에 이은 제5군(軍)이라고 불리고, 자체적으로 사관학교를 갖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생선회를 제외하곤 바다와 인연이 없는 사람을 해수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함정을 지휘해보지 않은 사람을 해경청장으로 임명하지 않는가.
이 와중에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미국은 9·11 후 국민들이 단합했다는 헛소리를 했다. 9·11 테러 때에는 인명을 구조하러 빌딩 속에 들어간 소방대원 수백명이 사망했다. FBI 요원으로 오사마 빈라덴을 추적하다가 세계무역센터 보안책임자가 된 존 오닐도 구조대원을 이끌고 불타는 빌딩을 올라가다 사망했다. 해경은 제대로 구조를 하지 못했고, 선장과 선원들은 자기들만 살자고 빠져나온 세월호 침몰 참사를 어떻게 9·11에 비유할 수 있겠는가. 여권의 무개념 발언 행진은 끝이 없어 보인다.
팽목항에 가기 전인 4월26일 안산시 올림픽 기념관에 차려놓은 분향소를 제자들과 함께 찾았었다. 저녁 8시가 넘었음에도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서야 분향을 할 수 있었다. 운동장을 메운 인파의 대부분은 젊은이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고, 나와 함께 간 젊은 변호사들도 그랬다.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보금자리로 성장해온 안산이라는 도시가 탐욕스러운 자본과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때문에 직격탄을 맞은 양상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추악한 그림자가 총동원해서 만들어낸 비극이다. 사악한 기업, 그런 기업을 눈감아준 정부, 업계와 유착한 규제기관,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 최소한의 직업윤리도 없는 선장과 선원들이 만들어낸 ‘퍼펙트 스톰’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피해가 주로 젊은 계층과 노동자 및 서민층에 국한돼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한 학생은 안산 분향소에 붙어 있는 메모지에 이런 말을 남겼다. “돈만 아는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죽었다.” 누가 사과하고 참회해야 하며, 누가 치유에 앞장서야 하는지가 너무나도 분명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