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이병완 광주광역시 서구 의원. 4년 전 그의 기초의원 출마는 많은 이를 감동시켰다. 지난 정부의 핵심 요직에 앉았던 인물이 풀뿌리 정치의 가장 낮은 곳으로 갔다는 점에서 그랬다. 올해 초 그가 광주시장으로 출마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번에는 비판도 나왔다. 그의 ‘하방’이 결국 광역단체장 출마를 위한 ‘포석’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4월2일 그가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선에 참여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광주시장에 도전한다고 선언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아성인 광주에서 무소속 출마는 사실상 ‘당선 포기’나 다름없다.

4월9일 이병완 전 비서실장을 광주에서 만났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의 등장으로 광주가 1990년 3당 합당 때보다 더한 독점 구조가 됐다”라며 작심한 듯 말을 토해냈다.


구의원으로 4년 동안 일해보니 어땠나?
로망이 깨졌다. 한마디로 말해 ‘현대판 사또 시대’더라. 지역에서는 정치인에 대한 견제가 없다. 광주는 더 그렇다. 시장이고 구청장이고 과거 민주당 세력이 절대다수니까. 내가 청와대 생활 10여 년 해봤지만 대통령에게도 그런 권력은 없을 것이다.
 

ⓒ시사IN 신선영이병완 후보(위)는 보도자료 작성부터 SNS 관리까지 직접 한다.

그래서 광주를 ‘1당 독점 구조’라고 표현했나?
광주가 민주와 평화의 도시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한 세력이 20년 이상 지배하면서 정치적 역동성이 쇠락했다. 과거 민주노동당도 있고 국민참여당도 있었지만 결국 잘 안 됐다. 왜? 기득권 세력이 너무 절대적이니까. 모든 자원이 거기 몰려 있다. 대구나 광주나 똑같다. 말하자면 ‘월급쟁이 정치인’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1당 독점 깨자, 기득권 깨자. 이런 말 하는 정치인이 없다. 지금 광주에서는 내가 돌연변이다.

기득권 구조에 파열을 내려면 유의미한 득표를 해야 할 텐데, 무소속으로 가능할까?
2012년 대선 때부터 변화를 감지했다. 당시 안풍의 진원지가 광주·전남이었다.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되기 직전까지도 안철수 후보의 인기가 대단했다. 그해 총선에서도 내가 있는 광주 서구을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현 청와대 홍보수석)가 40%를 득표했다. 그걸 보고 엄청난 변화를 느꼈다. 지금처럼 당내 경선만 통과하면 당선되는 선거는 광주시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대구의 새누리당과 다를 게 없다. 나는 무소속으로 독자 출마해서 경쟁을 통해 시민들에게 선택권을 돌려주려 한다.

기초의원으로서 두드러지는 활동이 없었다는 평가도 있다.
구조가 문제다. 이를테면 최근에 대통령이 규제 개혁 문제를 꺼내니까 안전행정부에서 전국 244개 자치단체에 추진위원회를 꾸리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5~6급 사무관을 한 명씩 증원해줬다. 전국적으로 244명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것 필요 없다. 광주의 경우 다섯 개 기초단체가 있지만 지역마다 현안이 다르지 않다. 그냥 광주시에서 태스크포스 꾸려서 규제 개혁 관련 안을 만들면 된다. 그런데 위에서 이런 식으로 떨어뜨리니까 행정적 낭비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지방자치가 잘 되려면 중앙정치로부터 독립해야 하고, 정당공천제 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초 무공천이 옳았다고 보는가.
원칙적으로는 옳다. 대선 때 유력 후보들이 모두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이제 정말 되나 보다 했다. 그러나 한쪽(새누리당)에선 쇼를 하고 표만 가져갔다. 이런 상황에서는 현실적으로 무공천을 강행해서는 안 된다.

 

 

ⓒ연합뉴스이병완 후보(왼쪽)가 이사장이던 지난해 12월15일 노무현재단 송년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광주만 놓고 보면,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과 통합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나섰으면 의미 있는 정치적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보나.
그렇다. 그동안 민주당이 안긴 절망이 열망으로 바뀐 게 안철수 현상이었다. 실제로 안철수 신당으로 엄청난 사람이 몰렸다. 예를 들면 광주시청의 국장급 사무관들이 안철수 신당 쪽으로 갔다. 그쯤 되는 공무원들이 자기 자리를 버리고 (민주당이 아닌) 다른 정당으로 가는 일은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한다. 그런 변화 속에서 광주시장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광주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은가?
구체적 정책 대신 어젠다 싸움을 하려 한다. 일자리 몇만 개 만든다는 공약은 내놔봤자 실현될 리도 없고, 믿을 사람도 없다. 지금 광주는 ‘지도자 불임 도시’다. 장관 여러 명 나오면 뭐 하나? 기득권 구조에 안착하다 보니 인물을 키우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4년 단임만 하면서 기존 정치 세력에 흡수되지 않은 도전적인 정치인에게 길을 터주려 한다.

연립정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새정치민주연합이 생기면서 지금 광주는 1990년 3당 합당 때보다 더 큰 독점 구조가 되었다. 이런 지역주의 틀 속에 있는 한 광주는 영원히 피해자다. 광주가 그걸 깨야 한다. 내가 당선되면 법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정무직·별정직 고위직이 5개가 된다. 그 자리를 다른 정당에게 주려 한다. 노동·인권 쪽은 진보 정당에 주고, 새누리당에게는 특히 프리미엄을 주겠다. 아예 청와대에다 광주 지역 정책을 논의할 수 있는 행정관을 하나 보내달라고 요청할 생각이다.

참여정부 시절 나왔던 대연정 제안과 같은 맥락으로 들린다.
그렇다. 사실 참여정부 비서실장을 지낼 때 내 첫 임무가 지역주의 구조를 깨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대통령께 제안한 게 바로 한나라당과의 연정이었다.

당시 보수·진보 양쪽으로부터 비판받았다.
시대적으로 빨랐을 뿐이다. 어느 정당이든 그런 의제를 던졌어야 한다고 본다. 새정치에 대한 열망이 가장 강한 광주에서야말로 이런 연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조직이 없다. 선거운동을 벌이기 쉽지 않을 텐데.
기존 선거운동 방식은 따르지 않겠다. 학교 동문 모임, 사람 많이 모이는 행사에 가서 격려사 하고 악수하는 식은 안 한다. 언론과 SNS를 통해 지역과 시대의 어젠다를 계속 알려나갈 것이다. 또 아파트 밀집 지역에 기대를 걸고 있다. 광주는 아파트 주거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도시다. 아파트는 공간으로 보면 폐쇄적이지만, 생각은 오히려 주체적인 곳이다. 지역 토호의 여론몰이로부터 영향을 덜 받는 곳이라는 이야기다. 이곳 주민들과 어떻게 대화할지 궁리 중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계속 뒤처졌다가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몰표를 얻어 1위로 구의원에 당선했다.


이병완 전 비서실장은 인터뷰 도중 ‘객토(땅을 갈아엎음)’라는 말을 꺼냈다. 민주화의 성지였다가 정치적으로 쇠락해버린 광주를 한번 크게 갈아엎고 싶다는 뜻이다. 정치적 자존심이 강한 광주 시민들이 과연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는 4월11일 구의원직 사퇴서를 내고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캠프 운동원이라고 해봐야 젊은 자원봉사자 대여섯 명이 전부다. 보도자료 작성부터 페이스북 관리까지 본인이 직접 다 한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작은 자동차 한 대 빌려서 광주 곳곳을 돌아다닐 작정이다. 어쩌면 그의 무모한 ‘쟁기질’이 이제 막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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