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은 없다. 자리는 하나인데 후보는 여럿이다. 남은 전략은 후보 단일화. 가능한 한 모든 자원을 쏟아 붓는다. 정책과 이념의 차이는 그 과정에서 소소해진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속담은 정언명령이 된다. 선거 승리라는 대의 앞에 미봉된 문제는 ‘그 후’에 불거지기 마련이지만, 당장은 오지 않은 일일 뿐이다.

2010년 지방선거는 야권 연대의 거대한 실험장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경기도 고양시 사례는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기초단체장부터 기초의원까지 야 5당이 단일화에 합의하고, 어느 한 당도 빠지지 않고 단일 후보를 냈다. 전국에서 유일한 사례였다. 표로 확인된 성적표 역시 눈부셨다. 야권 단일 후보가 기초단체장을 거머쥐었고, 광역의원 8석 모두를 휩쓸었다. 30명이 정원인 시의회 역시 야권 단일 후보 17명이 입성하며 성공적인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고양무지개연대 제공2010년 5월18일 고양 무지개연대와 범야권 연합 후보들이 무지개정책 협약식을 가졌다.
달랐다. 무엇보다 단일화를 개별 정당에게만 맡겨두지 않았다. 지역 시민사회는 선거연합 기구인 ‘고양 무지개연대’를 꾸려 적극적으로 결합했다. 이들은 ‘10대 의제, 100대 정책’을 뽑아내고, 후보 단일화 전에 정책 단일화를 먼저 성사시켰다. 단일화 테이블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 중 누가 당선되든 지켜야 할 약속이었다. 그중에서도 선거 이후 공동정부를 구성한다는 약속은 가장 중요한 공약이었다. 다른 지역이 후보 단일화에 목맬 때, 고양시는 선거 이후 ‘권력 공유’에 좀 더 방점을 찍었다. 전면적 선거 연합이었던 고양시의 단일화 실험은 ‘한국형 연정의 씨앗’(〈시사IN〉 제144호 커버스토리 참조)을 품은 가능성이었다.

지난 4년은 싹을 틔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달랐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권력 분점이 제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정공동운영위원회(위원회)’라는 형식은 힘이 없었다. 단체장의 의지 하나에 매달려야 했고, 구상했던 협치 모델을 무력화할 수 있는 법과 제도는 강고했다.

“우리? 허깨비지(웃음).” 고양시 야권 단일화의 주역, 무지개연대 집행위원장이었던 이춘열씨의 말이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합의는 반드시 지키겠다’는 허무한 말만 돌아왔다. 조금씩 달랐다. 정치적 전망에 대한 분석이 그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입지에 따라 저마다 견해가 갈렸다. 이들을 하나로 모았던 ‘반MB’ 깃발은 그 효과만큼이나 후과도 컸다.

먼저 돌이켜볼 것은 시민단체의 역량이다. 정당과 후보자를 단일화의 장에 끌어올 수 있을 만큼 결집력은 뛰어났다. 반면 일반 시민 1만명을 무지개연대에 참여시켜 연대의 사회적 정당성을 높일 계획이었던 ‘1만

ⓒ연합뉴스야권 상황은 2010년 6·2 지방선거(위) 때보다 열악하다.
인 위원회’ 구성에는 실패했다. 고양 무지개연대에 참여했던 한 활동가는 이렇게 평했다. “‘1만인 위원회’ 구성의 실패가 결과적으로 선거에 이긴 사람들의 발걸음을 좀 더 가볍게 만든 거 아닌가 싶다.”

믿을 것은 단체장의 의지였다. 최성 시장은 선거연대의 한 축인 동시에, 100만 고양시민의 시장이었다. 두 위치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첫 관문부터 만만치 않았다. 2010년 7월1일 취임 이후 시정공동운영위원회 구성부터 난항이었다. 위상과 역할, 구성, 위원장 선출 문제 등을 놓고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갈등의 본질은 따로 있었다. 시민사회는 위원회를 공동정부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에 즉각 구성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를 이행할 수 있는 권력을 쥔 시장의 생각은 달랐다. 속도 조절. 여기에는 공동정부 합의에 대한 ‘수정’도 포함됐다. 예산편성권, 인사권, 도시계획권, 인허가권 등을 주민에게 나눠주는 것. 즉 주민들에게 웬만한 결정권을 부여하거나 결정 과정에 주민을 참여시키는 ‘이상’에 접근하기에는 무지개연대도, 시장도 현실 정치의 자장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춘열 전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초창기 ‘위원회가 시장 발목 잡는다’는 평이 있었는데, 발목을 잡으려야 잡을 수가 없었다(웃음). 의사를 전달할 통로가 마땅치 않으니 제안이나 요구도 거의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최 시장이 공동정부 운영에 뜻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고, 나름의 노력도 기울였던 것으로 안다.”

시의원 30명 중 야권 단일 후보가 17명(민주당 13명, 야 4당 각 1명씩)이나 들어간 시의회 역시 ‘관행’대로 움직였다. 민주당 시의원 13명은 두 파로 갈라졌다. 불행히도 다수파가 야권 연대에 비우호적인 의원들이었다. 임기 첫해 의장단 선거에서 민주당 다수파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 연합했다. 이들은 위원회를 시의회 권한을 침해하는 ‘초법적’ 기구로 여겼다. 임기 첫해가 그렇게 흘러갔다. 조례 제정도 지지부진했다.

주민자치·공동정부 등에 익숙하지 않은 관료의 경직성도 문제였다. “고양시는 민선 5기 이전까지 개혁 성향의 시 정부가 들어선 적이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신도시 및 대단위 택지 개발 광풍에 1999년 러브호텔 건립저지 운동, 2000년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신축에 관한 주민투표 등을 이끌며 시민사회는 성장했지만, 행정 전문가인 관료들의 보수성은 뿌리 깊다.” 고양시 지역 선거를 치러본 한 인사의 말이다.

관료들의 보수성도 공동정부에 걸림돌

이춘열 전 집행위원장은 관료들의 보수성을 잘 드러낸 사례로 뉴타운 문제를 꼽았다. 고양시에는 뉴타운 정비구역이 약 20곳 있다. 신도시에 도농복합지역인 고양시 역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뉴타운은 큰 숙제였다. “시장의 약속이 뉴타운 해제라고 해도, 공무원 반대에 부딪히면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 ‘조합에서 시에 소송 걸면 진다, 재정 부담은 어쩔 거냐’고 말하면 시장으로서는 공약을 추진하지 않을 명분을 손에 쥐게 된다.” 고양시가 최근 ‘시민참여형 뉴타운 출구전략’을 내놓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출구전략은 뉴타운 해제보다는 활성화를 지원하는 게 특징이다.

공동정부의 상징이었던 ‘시정공동운영위원회’는 진통 속에 2012년 1월 자문·협의 기구인 ‘시정주민참여위원회’로 간판을 고쳐 달았다. 공동 운영이 주민 참여로 바뀐 것이다. 이 전 집행위원장으로서는 아쉬움이 더 많다. “예상했던 한계를 극복하면서 일할 만큼 모두가 성숙하지 못했다. 전략과 대책이 늦어지면서 시기를 놓치는 일이 거듭됐다.” 그러나 최성 시장의 한 측근은 다른 평가를 내놓았다. “시민 처지에서는 연대를 했든, 안 했든, 민주당이든 다른 당이든 중요하지 않다. 복지·교육 등 시정 운영의 성과(일자리 창출 1위 같은)로 평가받을 뿐이다.”

이 전 위원장은 공동정부의 ‘사실상’ 실패가 선거연대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평했다. “이거 하나만은 자랑할 수 있다. 관변단체를 포괄하는 주민자치 아카데미를 개설한 것. 공부하고 모이는 걸 제도화한 거다. 시민들이 자치를 경험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정치는, 그리고 권력은 변한다. 그래서 야권 연대니, 공동정부 따위는 깨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주민의 시정 참여 제도가 구축된다면 그것도 성과라고 생각했다.”

선거연대 모범사례로 거론되던 고양시의 연정 실험은 실패에 더 가까워 보인다. 지방선거를 고작 4개월여 앞둔 지금, 야권이 놓인 상황은 4년 전에 비해 더 열악하다. 고려해야 할 변수는 훨씬 많아졌다. 민주당 개혁은 지지부진하다. 안철수 신당이 가시화되고, 선거연대의 한 축이던 진보 정당은 사분오열 몰락했다. 이를 중재하고 판을 짜던 시민사회의 세력도 예전 같지 않다. ‘반새누리당 정서’로 선거를 치르기에는 정부와 집권 여당에 대한 지지가 여전히 강고하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선거연대를 이뤄내며 야권 전체에 힘을 실었던 고양시가 또 다른 돌파구를 보여줄 수 있을까.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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