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와 ‘부성(父性)’. 2013년 문화 트렌드를 나타낼 수 있는 키워드이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와 조용필의 19집 앨범 〈헬로〉가 지난 시절 추억을 자극했고, 영화 〈7번방의 선물〉과 MBC 〈일밤-아빠 어디가〉는 권위 있는 ‘아버지’ 대신 친밀함으로 무장한 ‘아빠’를 호출했다. 그렇다면 2014년 연말, 한 해를 정리할 때 두드러지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이미 예고된 문화계 소식들을 통해 2014년의 문화 트렌드를 전망해봤다.

‘복고’를 넘어 ‘역사’ 속으로

올해 한국 영화계는 그 어느 때보다 과거를 자주 불러온다. 배우 현빈이 암살 위협에 처한 정조를 연기하는 〈역린〉(상반기 개봉)과 배 12척으로 330척의 왜군을 막아낸 이순신의 명량해전을 재구성한 〈명량-회오리바다〉(여름 개봉)가 대표적이다. 〈역린〉은 드라마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등으로 이름을 알린 이재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명량-회오리바다〉는 〈최종병기 활〉로 한 차례 액션 사극의 모범을 보였던 김한민 감독의 작품이다.

군도.
군도.

이병헌·전도연이 출연하는 〈협녀: 칼의 기억〉(박흥식 감독, 하반기 개봉)과 하정우·강동원이 출연하는 〈군도: 민란의 시대〉(윤종빈 감독, 7월 개봉)는 각각 고려와 조선 시대의 민란 속에서 활약한 무사들의 모습을 그렸다. 김남길·손예진 주연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석훈 감독, 여름 개봉)과 하지원 주연의 〈조선 미녀 삼총사〉(박제현 감독, 1월29일 개봉), 한석규·고수의 〈상의원〉(이원석 감독, 하반기 개봉)도 사극 영화다. 이들 영화 모두 역사의 한 토막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코믹·액션·무협·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를 활용해 이야기들이 종횡무진 자유롭다.

사극 열풍은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이어진다. 지난 1월4일 첫 방송부터 시청률 11.4%를 기록한 KBS 1TV 〈정도전〉(강병택·이재훈 연출)이 그 신호탄이다. ‘조선의 설계자’ 혹은 ‘반역자’라는 정반대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인물 정도전은 MBC 드라마 〈파천황〉에서도 이방원과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조선 미녀 삼총사.

〈뿌리 깊은 나무〉(SBS, 2011)의 김영현·박상연 작가와 〈선덕여왕〉(MBC, 2009)의 박홍균 PD가 의기투합해 기대를 모은 〈파천황〉은 오는 4월 예정이던 방영 시점이 무기한 연기됐다. 〈대장금 2〉 때문이다. MBC는 드라마 한류의 원조가 된 2004년 〈대장금〉의 후속편을 올가을부터 제작하겠다고 밝혔다. 김영현 작가가 〈파천황〉과 〈대장금 2〉를 동시에 진행하기 힘들고 방영 시점도 겹치기 십상이라 두 작품을 한꺼번에 만나기는 힘들 전망이다.

〈뿌리 깊은 나무〉로 2011년 사극 열풍을 주도했던 SBS는 올해 하반기 〈비밀의 문〉(김형식 연출) 방영을 준비하고 있다. 사도 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지 않고 수국(水國)을 세우려 했다는 이야기를 담은 팩션 사극 〈이순신 외전〉(진혁 연출)도 방영 계획을 잡고 있다. 만약 방영된다면 드라마 〈이순신 외전〉은 영화 〈명량-회오리바다〉 〈해적:바다로 간 산적〉과 함께 전례 없는 ‘해양 액션 사극’ 열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정도전.

‘가족’ 부르는 예능, ‘별’ 돌아오는 가요계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과 그의 가족을 불러 그들의 육아·여행 등을 관찰하는 ‘가족 리얼리티 예능’이 지난해에 이어 2014년에도 당분간 대세를 이룰 전망이다. MBC는 지난해 최고의 인기를 누린 〈아빠 어디가〉 시즌 2를 기획했고, SBS에서는 〈요절복통 육아 소동기, 오! 마이 베이비〉를 통해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처럼 연예인들의 육아 일상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을 내보낼 계획이다. 토크쇼 형식으로 선보인 KBS 2TV 〈맘마미아〉도 연예인이 그의 부모와 보내는 24시간을 보여주는 ‘관찰 예능’으로 틀을 바꾸어 방영하면서 시청률이 대폭 상승했다.

ⓒ연합뉴스돌아오는 가요계의 별. 서태지(위 왼쪽)와 비.
‘관찰 예능’은 가요계에도 접목돼, 4년 만에 새 앨범을 낸 가수 비는 아예 자신의 일상을 찍어 내보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레인 이펙트〉(Mnet)를 통해 신곡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비를 포함해 올해 가요계에 돌아오는 ‘별’들의 목록은 어느 때보다 화려하다. 데뷔 10주년을 맞은 동방신기가 7집 앨범 〈텐스(Tense)〉로 활동을 재개하고, 9인조 걸그룹 소녀시대도 올해 초 컴백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와 JYP엔터테인먼트가 각각 8년, 6년 만에 선보이는 남성 그룹 ‘위너(Winner)’와 ‘갓세븐(Got7)’이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가 성공시킨 엑소(EXO)의 뒤를 이을 수 있을지도 관심을 모은다. 하지만 가장 기대를 끄는 사건은 올해 새 앨범 발매 계획을 알린 가수 서태지의 귀환이다. 서태지가 올해 새 앨범을 내놓는다면 2009년 7월 발표한 8집 〈아토모스〉 이후 5년 만이다.

‘문학의 귀환’ 누가 이어갈까

ⓒ시사IN 윤무영신작을 펴낼 작가 황석영씨(위 왼쪽)와 성석제씨.
조정래의 〈정글만리〉(해냄)와 정유정의 〈28〉(은행나무) 등이 이끈 지난해 출판계 ‘문학의 귀환’ 트렌드는 2014년에도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황석영·성석제·박범신·은희경·신경숙 등 중견 스타 작가들의 신작 발간이 올해 줄줄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박민규·김중혁·천명관 등 젊은 작가들의 장편소설과 소설집도 올해 안에 출간이 예정돼 있다.

출판계 비문학 분야에서는 한병철의 〈투명사회〉(문학과지성사, 3월), 엄기호의 〈단속사회〉(창비, 3월), 전상진의 〈음모사회〉(문학과지성사, 5월), 김찬호의 〈모멸감〉(문학과지성사, 2월) 등 하나의 키워드로 현대 사회의 모순과 불안을 분석한 인문사회과학서들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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