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출퇴근길, 스마트폰으로 ‘정주행’
  • 변진경 기자
  • 호수 323
  • 승인 2013.11.2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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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이 길어지는 추세다. 그 시간 동안 뭐 하나. 몇 년 전만 해도 무조건 잔다’는 응답이 많았다. 요즘은? 단연코 ‘스마트폰’이다. 대중교통 출근길, 10명 중 6명이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다.
통근길은 애증의 길이다. 아침이면 밥벌이를 하러 꾸역꾸역 밀려가는 길이지만 저녁이면 피곤한 몸을 누일 수 있는 집으로 향하는 길이 된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버티고 나면 “통근으로 버리는 시간이 정말 아깝다”라는 불평이 나오지만, 사실 그 시간이 없어지면 하루 중 마음 편하게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거나 페이스북을 하거나 스마트폰 화면을 이리저리 넘겨라도 보는 ‘잉여’ 시간이 단 한 톨도 남지 않는 것이 보통 직장인들의 삶이다.

그 애증의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2010년 통계청이 조사한 전국 통근·통학 평균 소요시간은 32.9분. 1995년 29분에 비해 4분 가까이 늘었다. 서울은 1995년 35.9분에서 2010년 41.2분으로 증가폭이 더 크다. 특히 하루 중 1시간 이상을 출퇴근에 쓰는 직장인들은 10년(2000~2010년) 사이 서울·인천·경기도를 중심으로 35%(88만명) 늘어, 수도권 전체 통근자 4명 중 1명이 ‘장거리 출퇴근족’인 셈이 됐다. 한국교통연구원은 통근시간 1시간의 행복 상실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월 94만원에 이른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통근 소요시간을 웰빙의 측정 지표의 하나로 발표하는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이 ‘행복 상실’의 시간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길다(아래 <표> 참조).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11월13일 아침 공항철도를 이용해 출근하는 이들 가운데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았다(위).

그 긴 시간, 직장인들은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까? 지금에야 출퇴근길 어딜 보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인 2005년 한 헤드헌팅 회사가 직장인들을 상대로 출퇴근 시간을 견디는 노하우를 물었더니 “무조건 잔다”(27%)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음악을 듣는다”나 “신문이나 책을 본다”라는 답이 뒤를 이었다. 무가지가 출퇴근길을 점령한 시기도 있었다. 2004년 출퇴근길 지하철 이용자의 77%가 1개 이상의 무가지를 본다고 답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2013년 대한민국의 출퇴근길 동반자는 뭐니 뭐니 해도 ‘스마트폰’이다. 지난 8월 한 취업 포털 사이트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직장인 10명 중 6명꼴로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며 출퇴근 시간을 보낸다”라고 답했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심지어 길에서도 모두들 귀에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숙인 채 작은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그러나 그 이유는 제각각이다. 출퇴근길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23.8%는 뉴스를 읽고, 12.6%는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하며, 11.2%는 공부를, 5.1%는 독서를, 4.2%는 채팅을 한다고 한다.

피곤한 출퇴근길, 읽는 책에서 ‘듣는 책’으로

특히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새로 출현한 팟캐스트는 장거리 통근족의 출퇴근길 ‘절친’이 되어가고 있다. 시사 만화가인 상명대 고경일 교수는 1년 전부터 서울 개봉동에서 충남 천안까지 매일 편도 2시간씩 통근하면서부터 팟캐스트의 애청자가 됐다. 고 교수는 “몇 가지 주제에 한정돼 있던 팟캐스트가 최근 메뉴가 굉장히 다양해져서 골라 듣는 재미가 크다”라고 말했다. ‘노종면의 뉴스바’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등을 즐겨 듣는다는 고 교수는 “출퇴근길 시사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종종 시사만화 아이디어를 얻어 스케치북에 스케치를 그려놓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서울 홍대 인근까지 편도 1시간30분을 출퇴근에 쏟아 붓는 북디자이너 김정희씨(44)도 팟캐스트를 즐겨 듣기 시작했다. 출근길에는 ‘디자인 말하기’ ‘새벽을 달리는 디자인’ 등을, 퇴근길에는 ‘그것은 알기 싫다’ ‘벙커 특강’ 등을 청취한다는 김씨는 “출판사에서 일하다 보니 출퇴근길에 늘 책 한 권씩은 갖고 다니면서 펼치긴 하는데,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고 페이스북을 열어 보는 등 딴짓을 하다 보면 막상 책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런 스마트폰의 ‘독서 방해’는 거꾸로 새로운 독서 방식을 생산해내기도 한다. ‘읽는 책’을 ‘듣는 책’으로 바꾼 책 관련 팟캐스트가 바로 그것이다. 위즈덤하우스의 ‘빨간 책방’, 창비의 ‘라디오 책다방’, 문학동네의 ‘문학 이야기, 안녕하세요 신형철입니다’ 등 출판사들이 만드는 팟캐스트를 비롯해 소설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북카페 주인이 운영하는 ‘꿈타장의 유혹하는 책읽기’ 등이 인기를 끈다. ‘빨간 책방’을 담당하는 위즈덤하우스 왕인정 팀장은 “종이책 외에 전자책이라는 새 독서 매체도 등장했지만 근본적으로 ‘읽는’ 행위는 에너지와 집중력이 많이 요구되는 능동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독서 욕구는 있지만 피곤한 직장인들이 출퇴근길에 비교적 수동적인 ‘듣는’ 책을 많이 선택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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