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시농업 현장을 둘러보는 ‘텃밭투어’(여성환경연대 주최)가 있던 10월25일, 고창록씨(62)를 따라 서울 하계동 한신아파트 옥상에 올라서는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옥상 가득 푸른 텃밭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빽빽한 아파트 숲 한복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4년 전만 해도 고씨는 이웃에 누가 사는지 관심 없는, 평범한 도시민 중 한 사람이었다. 입주자회는 이권 다툼이나 벌이는 데라 여겼다. 그런데 어찌어찌 고씨가 입주자 대표를 맡게 되었다. ‘기왕 맡은 일, 아파트가 사람 냄새 나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 싶었던 그가 떠올린 것이 텃밭 농사였다. 지상에는 공터가 없지만 옥상을 활용해 농사를 지으면 안전한 먹을거리도 생기고 이웃끼리 친해질 것도 같았다. 문제는 일부 주민의 반발이었다. 옥상에 균열이 생기거나 누수가 발생하면 어떡하느냐는 것. 이때부터 고씨는 가벼우면서도 배수가 잘되는 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상토, 피스모스 등 영양토를 최적의 비율로 배합해 옥상 농사에 적합한 흙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올 한 해 텃밭 농사에 참여한 이웃은 30여 가구. 여름에는 수박·참외, 가을에는 배추와 무를 주로 심었다. “매주 함께 땀 흘리다 보니 다들 형제처럼 친해졌다. 옥상의 풍부한 일조량 덕인지 농사도 예상보다 잘됐다”라고 고씨는 자평했다. 고씨와 이웃들은 조만간 옥상텃밭 이름을 딴 협동조합 ‘한신에코팜’도 출범시킬 계획이다.

ⓒ시사IN 신선영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