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

‘NHK에 의하면…’ ‘교도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3명이 무장 세력에게 납치되었을 때, 한국 언론은 대부분 외신 기사에 의존해 보도했다. 그때처럼 한국 미디어가 일본 NHK를 열심히 봤을 때는 없었다는 말까지 전해진다. 일본과 달리 한국 기자는 단 한 명도 아프가니스탄 현지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것은 한국 미디어의 책임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비자를 발급하지 않도록 시켰기 때문이다. 사건 직후 한국 정부는 여권법을 개정해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한 나라에 한국인이 입국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2007년 7월24일 발효, 8월1일 여행 금지국 지정). 이것을 법적 근거로 지금까지 한국 기자의 아프가니스탄 입국을 막는다. 온 세상이 주목한 한국인 납치 사건에 대해 한국 미디어는 주체적으로 보도를 하지 못했고, 국민은 알 권리를 빼앗겼다. 이것은 한국 헌법이 보장하는 거주의 자유(16조)와 언론의 자유(21조)를 거스르는 조처다.

현재 한국 정부가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한 나라는 아프가니스탄·이라크·소말리아다. 이 3개국을 모두 취재한 프리랜서 프로듀서 김영미씨는 “여권법 개정은 정부가 언론 자유의 가치를 모른다는 뜻이다. 언제 여행 금지국 지정이 해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에서 무얼 하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여행 금지하는 민주주의 국가는 한국뿐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인도 이라크에서 납치를 당해 국민이 크게 걱정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법으로 특정 국가 입국을 막는 일이 없다. 일본 외무성은 나라별로 위험도를 정한다. 최고 등급인 ‘위험도4’는 ‘철수 권고’에 해당하지만, 벌칙 규정이나 강제력은 없다. 2004년 이라크 일본인 납치 사건 때 고이즈미 당시 총리는 여행 금지 조처를 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국민이 어디에 살고 어디로 가는지는 헌법에 보장된 자유다. 이라크 입국을 막거나  강제 철수 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독재국가 가운데 자국민의 해외 여행을 막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민주주의 국가 중에 여행을 금지하는 사례는 없다.

일본 기자가 한국 기자보다 낫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일본 유력 언론사는 일본인 납치 사건 이후 정부가 현지 취재진에게 철수를 명령하자 대부분 스스로 돌아왔다. 일본 미디어도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현지 취재에 나선 것은 프리랜서 기자였다. 많은 일본인 프리랜서 기자가 목숨을 걸고 위험 지역에서 활약한다. 주류 언론은 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지난해 버마 정부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 나가이 겐지 기자가 대표 사례다.

일본 언론도 한계가 많다. 현재 이라크에는 항공자위대가 주둔했지만, 일본 미디어는 현지 취재를 자세히 하지 못한다. 자위대 쪽에서는 기자의 취재 요구를 받으려 했지만, 외무성이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본 미디어는 자국 부대가 이라크에서 무엇을 하는지 충분히 검증하지 못했다. 한국 미디어가 자이툰 부대를 제대로 검증할 수 없었던 것과 같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한국과 일본 군대가 현지에서 활동 중이다. 그러나 그것을 검증하는 한국·일본의 기자는 없다. 양국 언론이 크게 반성해야 할 점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언론사 스스로가 판단해 취재를 포기했다. 한국 기자에게는 그 선택의 자유도 없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이라크에서도 한국은 군대를 파견한 당사국이자 납치 사건의 당사국이다. 그런데 현장에 기자를 보낼 수 없다. 전쟁 지역에서 언론 보도는 일종의 감시자 구실을 한다. 현지에 기자가 있으면 군대가 무리한 행동을 못한다는 뜻이다. 한국 미디어는 이라크 전쟁에서 감시자 노릇을 하지 못한다.

기자명 스나미 캐스케 (프리랜서 기자·일본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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