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기 놀라니까 조심하세요.” 이승숙씨(50·지산농원 대표) 요청에 사진기자가 멈칫한다. 이씨는 자칭 계모(鷄母)다. 닭으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제265호)로 지정된 연산오계 1000여 마리를 키운다. 일본 오골계와 달리 볏부터 발톱까지 온통 새카만 토종 검은닭이다.

지난 10월1~6일 열린 남양주 슬로푸드국제대회에서 연산오계는 단연 스타였다. 국제슬로푸드생명다양성재단이 선정하는 ‘맛의 방주’에 이름이 오른 덕이다. 맛의 방주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동식물 종이나 전통음식을 보존하기 위해 만든 목록이다. 현재 77개국 1225종이 목록에 올라 있다. 한국에서는 올해 처음 연산오계를 비롯한 7종이 방주에 등재됐다.

ⓒ시사IN 조남진

이씨에게 닭은 한때 ‘웬수’였다. 아버지는 6대째 가보로 이어받은 오계를 애지중지했다. 자식들 등록금을 못 대는 한이 있더라도 사료는 꼬박꼬박 사 먹였다. 이씨는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1998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말고 병든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농장을 이어받기까지 늘 그랬다. 그로부터 15년. 이씨는 아버지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절감한다. 가족이나 이웃들의 냉대에 상처받을 때마다 그는 닭을 껴안고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조류독감 파동으로 살처분 위기에 처한 닭들을 구하기 위해 피난길에 올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힘든 세월 그를 지킨 것은 자부심. 이씨는 말한다. “맛의 방주에 등재된 뒤 나보고 장사 잘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장사치가 아닌 우리 종자 지킴이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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