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서 발견한 프랜차이즈 매장은 묘한 안도감을 줬다. 동대구역에서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 1호선 반월당역에 내려 처음 들어간 곳은 우습게도 스타벅스였다. 익숙한 맛의 커피를 홀짝이며 약간의 체념이 먼저 덮쳐왔다. 무엇이든 일단 부수고 보는 토건 국가에 근대문화유산 따위가 남아 있을 리 없을 거라는. 지자체에서 ‘근대문화골목’이라는 번듯한 이름을 붙여놓았지만 여느 뻔한 관광지처럼 별 볼 일 있겠느냐는, 뭐 그런 냉소다. 
 

ⓒ시사IN 장일호 대구 최초의 2층 양옥 건물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구 중구는 전형적인 도심이다. 그러나 번화가의 번쩍번쩍함 뒤에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구 중구 장관동을 배경으로 한 김원일의 자전소설 〈마당 깊은 집〉의 표현을 빌리자면 “좁장하고 꼬불꼬불한 골목길”마다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고 할까. 중구는 이 같은 특성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발굴’해 관광 자원을 만들어냈다. 골목 여행을 안내하는 표지판은 필요한 정보를 담았으되 요란하지 않았고, 덕분에 한 번도 대구를 진지한 ‘여행지’로 생각한 적 없었던 나는 생각을 고쳐먹어야 했다. 

코스는 모두 다섯 개. 조선 시대 행정중심도시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경상감영 달성길’(1코스), 100년 역사쯤이야 기본으로 간직하고 있는 근대 건축물이 무심히 자리한 ‘근대문화골목’(2코스), 대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재래시장인 서문시장에서 시작하는 ‘패션한방길’(3코스), 조선 시대 향교부터 김광석 벽화 골목까지 시대를 가로지르는 ‘삼덕봉산 문화길’(4코스), 대구가 종교의 본산임을 알려주는 ‘남산 100년 향수길’(5코스)까지. 한 코스에 걸어서 1시간30분~2시간30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대구 중구 골목투어 홈페이지(gu.jung.daegu.kr/alley/main/main.html)를 이용해 해설사와 함께하는 관광을 미리 신청하거나 안내책자와 지도를 요청할 수도 있다.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도 있다. 

 

 

 

ⓒ시사IN 장일호 대구 최초의 2층 양옥 건물

 

ⓒ시사IN 장일호 대구 종로


건축물에는 지어질 당시의 문화와 기술뿐 아니라 당대 대중의 취향, 자본의 규모 등 수많은 요소가 함축되어 있기 마련이다. 5개 코스 중 “대구 지역 근대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들이 널려 있다”라고 알려진 2코스 쪽으로 발걸음을 뗐다. 

종로는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대구에도 종로가 있었다. 대구의 종로는 1905년부터 자리 잡았던 화교들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마당 깊은 집〉의 주인공 길남이 “제비처럼 날렵한 까만 고급 승용차를 처음 본” 청요릿집 ‘군방각’이 이제는 모텔이 되었지만, 물 길러 다니던 화교소학교는 그대로였다. 화교의 골목답게 영생덕 만두집, 복해반점 등은 과거 명성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시사IN 장일호 진골목

진골목 다방의 ‘양대 산맥’

그 옆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이 바로 진골목(긴 골목. ‘질다’는 ‘길다’의 경상도 방언)이다. 현재 형태가 남아 있는 건 겨우 100m 남짓이지만, 이 골목에는 대구 근대사에서 손꼽히는 부자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 골목 중간에 대구 최초의 2층 양옥 건물로 알려진 정소아과 의원이 있다. 병원은 문을 닫았지만, 아흔이 넘었다는 원장 선생님은 여전히 그 집에 살고 계신다. 그래서 아쉽게도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팁. 단출한 건물 한 동뿐인 화교소학교 옆 계단을 오르면 이 양옥집의 일부나마 훔쳐볼 수 있다. 

이 골목의 끝에는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터줏대감 미도다방이 있다. 미도다방은 시나브로 다방과 함께 진골목 다방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고. “다방계의 별다방(스타벅스)과 콩다방(커피빈)이다”라는 게 지역 주민의 전언. 문을 밀고 들어가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장님이 센베이 과자가 담긴 접시부터 내주며, “식사는 하고 오셨느냐”라고 다정히 묻는다. 경북 지역 내로라하는 정치인과 예술인이 드나들었다는 이 다방에는 옛 추억에 잠긴 백발 성성한 ‘신사’들이 여전히 드나들고 있었다. 

다음으로 발걸음을 돌린 곳은 ‘약전골목’이다. 골목이라기에는 좀 넓은 길이 펼쳐진다. 대구는 조선 시대부터 한약재 전문시장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러시아는 물론 유럽까지 한약재를 공급해온 유통 거점이었단다. 약재 도매상이 즐비한 길을 조금만 걷다 보면 약령시 한의약박물관이 나온다. 미리 예약하면 한방 족욕체험(5000원)을 할 수 있다. 예약이 번거롭다면 박물관 입구의 얼핏 분수대처럼 보이는 곳을 주목하시라. 온탕과 냉탕이 구분되어 있는 노천 족욕체험장은 무료다. 권장 체험 시간은 20분 남짓, 그곳에 앉아 두리번대다 보면 담쟁이로 둘러싸인 교회 첨탑이 삐죽 고개를 내민다. 

 

 

 

 

 

ⓒ시사IN 장일호 옛 제일교회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 ‘원조’ 제일교회다. 신도 수가 늘어 1997년 새 터(청라언덕 부근)를 매입해 교회를 지었고, 지금은 주일 예배 때만 개방을 한다. 1898년 경북 지역 최초의 교회 남성정이 제일교회의 모태다. 평일에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아쉬운 대로 뒤를 돌아 맞은편 빨간 벽돌 건물을 마저 감상하시길. 방치된 것처럼 보이는 그 건물에는 어떤 설명도 붙어 있지 않지만, 옛 YMCA 건물로 대구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이다. 어느 건물 하나 범상한 것이 없다. 

2코스를 돌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곳은 시인 이상화(1901~1943)와 국채보상운동 제안자 서상돈(1850~ 1913)의 고택이다. 너무 ‘치장’한 느낌 때문이었다. 낮은 고택 주변을 위압적으로 둘러싼 고층 건물 역시 의아했다. 그러나 개발 광풍에 철거될 위기를 몇 차례나 견딜 수 있었던 것이 시민들의 서명운동 덕분이었다는 설명을 해설사로부터 전해 듣고, 마뜩잖았던 마음을 거뒀다. 그제야 이상화 고택 한가운데 위치한 나무에 매달린 열매가 석류라는 것도 보였다. 이상화 고택 옆쪽, 2012년 개관한 근대문화 체험관 ‘계산예가’에서는 이 골목이 낳고 품은 예술가들의 면면도 확인할 수 있다. 고택 가까이에 소설가 현진건(1900~1943)과 화가 이인성(1912~ 1950) 등이 모여 살았다 하여 ‘예술가 골목’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사IN 장일호 계산성당

 


여기까지 왔으면 2코스의 3분의 2는 본 셈. 계산성당에 들어가볼 차례다. 계산성당은 서울의 명동성당, 전주의 전동성당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성당으로 꼽힌다. 대구에 천주교가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서상돈 선생의 힘이 컸다. 천주교 박해를 피해 대구로 온 서 선생은 계산성당 터의 기본이 된 땅을 내놓았다 한다. 1899년 기와를 올려 한옥식으로 지었지만, 화재로 인해 1902년 서양식으로 다시 건립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한복 입고 갓 쓴 천주교도들이 그려진 ‘우리식’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계산성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자, 고 김수환 추기경이 세례를 받은 성당이기도 하다. 

 

 

 

 

ⓒ시사IN 장일호 청라언덕

 

계산성당을 나와 맞은편으로 길을 건너 골목을 걷다 보면 ‘대구의 몽마르트르’라 불리는 아흔 개의 계단을 마주하게 된다(직접 오르내리며 다 세어봤다!). 가곡 〈동무생각〉에 등장하는 ‘청라언덕’(담쟁이 동산)으로 오르는 아름다운 길처럼 보이지만 1919년 3월8일, 대구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이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올랐던 사연 있는 계단이기도 하다. 계단 끝 청라언덕에는 1910년께 지어진 세 채의 미국 선교사 주택이 있는데 각각 선교·의료·교육 박물관으로 운영하며, 하루 2시간만 외부에 공개한다.

 

대구 음식이 맛없다고?

서울로 올라온 다음 날. 대구 출신 취재원을 만난 김에 대구 다녀온 이야기로 한참 호들갑을 떨었다. 그가 음식은 괜찮았느냐고 묻기에 “다 맛있었다”라고 답하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입맛 소박하시네.” 전국 각지 돌아다닐 일 많은 직업이라 잠자리건 음식이건 까다로울 수가 없다. 그걸 감안해도 대구에서 맛본 음식들은 꽤 별미였다. 

 

 

 

 

ⓒ시사IN 장일호 평화시장 닭똥집

 

먼저 평화시장 닭똥집(닭 모래주머니) 골목에서 맛본 이른바 ‘똥맥’. 여름엔 ‘치맥’이 진리라 여겼건만, 한 접시 가득 튀겨져 나온(볶음 아니다) 닭똥집을 먹으며 그 아삭하고 쫄깃한 식감에 반했다. 참고로 이 골목의 ‘원조집’들은 간판에 닭똥집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니 참고하시라. 닭똥집의 기본도 일단은 닭이 아니겠는가. 

동인1동 파출소 뒷골목을 중심으로 형성된 찜갈비 골목도 빼놓을 수 없다. 1972년 동인동1가 323의 3 대폿집에서 안주로 내놓았던 매운 갈비찜이 효시라고 알려져 있다.  

서문시장 1지구와 4지구 사이, 노점상 골목도 놓치지 마시길. 넓적한 면만 따로 삶아 찬물에 헹궈 그릇에 담는 칼국수 맛이 일품이다. 무엇보다 서문시장에 왔다면 미성당을 꼭 들러야 한다. 미성당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시장통에서 사람들로 포위된 노점을 찾으면, 거기가 얄팍한 만두피 속에 당면만 넣은 납작만두의 ‘원조집’이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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