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철 1호선 동인천역의 출구는 네 개다. 이 중 어느 출구를 택해도 후회 없는 인천 여행이 가능하다. 옛날 달동네를 재현해놓은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으로 곧장 가고 싶다면 1번 출구를, 연안부두에서 싸고 맛좋은 회를 즐기고 싶다면 2번 출구를 택하면 된다. 3번 출구로 나오면 월미도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월미도는 놀이공원과 야경이 유명한 인천의 관광 명소다.

인천 배다리마을로 가려면 4번 출구로 나와 동대문 중앙시장 한복거리를 지나면 된다. 중앙시장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천 사람들이 혼수와 예단을 준비할 때 꼭 들르는 곳이었다. 하지만 인천의 중심 상권이 동인천에서 신개발지로 이전해가면서 시장의 활기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2007년 인천시가 내놓은 ‘동인천 주변 재정비 촉진 계획’은 때마침 불어닥친 미국발 경제위기와 인천시의 재정 악화로 추진되지 못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때문에 중앙시장은 사라질 위기를 면했다. 
 

ⓒ시사IN 허은선 ‘나비날다’ 책방

 

ⓒ시사IN 허은선 마을사진관 ‘다행’


중앙시장 한복거리를 지나면 ‘배다리 전통공예거리’라는 간판이 붙은 지하도가 나온다. 지하도 내 작업실에 인천 출신, 혹은 인천에 거주하는 공예 작가들이 입주해 있다. 지하도를 지나면서 도자기, 민화, 자수 등 전통 공예품과 함께 작가들이 작업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지하도를 빠져나오면 ‘나비날다’ 책방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배다리마을 답사가 시작된다. ‘나비날다’를 왼쪽에 두고 골목에 들어서면 헌책방 거리가 펼쳐진다. 한국전쟁 직후 궁핍했던 시절, 배움에 목말랐던 당시 학생들이 헌 참고서와 교과서를 구하러 몰려들었던 곳이다. 한때 헌책방이 30~40개까지 들어섰지만, 1980년대 이후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서 하나둘 문을 닫아야 했다. 현재는 아벨서점, 한미서점 등 대여섯 곳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헌책방 거리

헌책방 골목 곳곳엔 ‘배다리, 우리가 지켜야 할 인천의 역사입니다’라고 쓰인 파란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런데 배다리는 정확히 어디를 일컫는 말일까. 배다리는 정식 행정지명이 아니다. 배다리라는 지명이 인천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인천의 배다리는 1883년 제물포 개항 당시 일본인들에 밀려난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인천역에서 동인천역 방향으로 향하는 철로의 오른편에 자리 잡은 지역으로, 오늘날 행정상으로는 인천 동구 금창동에 속한다. 

개항 이후 배다리에서는 조선인을 대상으로 서구의 감리교 포교와 근대 교육이 활발해졌다. 인천 최초의 서구식 학교인 영화학교와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인 창영초등학교가 배다리 지역에 설립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최초의 여대생 김애리시, 최초의 여성학 박사 김활란 등이 영화학교 출신이다. 미국 교회가 세운 영화학교와는 별도로 애국 계몽운동가들의 학교 설립 시도도 있었다. 취헌 김병훈 선생이 현재의 창영초등학교 본관 자리에 의성사숙이라는 서당을 설립해 조선인 학생들을 교육했고, 1907년에는 인천공립보통학교가 세워졌다. 현 창영초등학교의 모태가 되는 학교로, 인천 최초의 조선인 학생을 위한 공립학교였다. 

 

 

 

ⓒ시사IN 허은선 사진 갤러리 ‘시가 있는 작은책 길’

 


두 학교는 헌책방 골목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다시 헌책방 골목 원점으로 돌아와보자. 서점들을 지나면 사진공간 ‘배다리’가 나온다. 2012년 5월 개관한 인천 최초의 사진 전문 갤러리다. 사진공간 배다리 옆에는 ‘시가 있는 작은책 길’이라는 현판이 붙은 전시관이 있다. 아벨서점 곽현숙 대표가 운영하는 아벨전시관이다. 이곳에서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2시에 배다리 시낭송회가 열린다. 

아벨전시관 옆 인천 유도의 산실 대한상덕관을 지나면 삼거리가 펼쳐진다. 책방삼거리다. 오른쪽 길을 택해 걷다 보면 우직하게 서 있는 양철로봇과 만나게 된다.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 로봇이 서 있는 곳은 옛 양조장 자리다. 이곳에서는 1927년부터 인천을 대표하는 향토 막걸리인 소성주가 생산됐지만 지금은 대안미술 활동공간인 스페이스 빔(www.spacebeam.net,cafe.naver.com/spacebeam)이 들어와 있다. 1층에서 전시를 둘러보고 2층에 올라가 목을 축이는 재미가 쏠쏠하다. 500원을 내면 봉지 차와 봉지 커피를 타 마실 수 있는 ‘셀프 카페’가 2층에 마련돼 있다.

원래 스페이스 빔은 2002년 1월 인천 구월동에 개관했다. 그런데 2007년 1월 배다리 마을의 옛 인천양조장 건물로 옮겨왔다. 배다리를 관통하는 산업도로가 생기는 것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인천시는 송도지구와 청라지구를 잇는 직선도로를 건설하려 했다. 관통도로 주변에는 주상복합단지 등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시 구월동에 있던 스페이스 빔과 인천작가회의는 인천시의 개발정책이 무분별하다고 판단했다. 도로 건설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배다리 주민들의 의사가 충분히 수렴되지 않았을뿐더러, 배다리 일대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고려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민대책위를 비롯해 인천 지역 예술가 및 활동가들이 모여 만든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이 가열차게 싸워 공사는 ‘일단’ 중단됐다. 산업도로를 지하화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2013년 현재까지도 인천시의 재정 악화로 관련 논의는 더디기만 하다. 그러는 사이 문제의 도로 공사 예정지에서는 코스모스 꽃밭이 예쁘게 조성됐다. 바로 스페이스 빔 건너 배다리 생태공원이다.

 

 

 

 

ⓒ시사IN 허은선 배다리마을의 풍경들

 


생태공원을 지나면 아기자기한 벽화들이 눈에 들어온다. ‘퍼포먼스 반지하’가 2007년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이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배다리 마을 곳곳을 그림으로 채웠다.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 삶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벽화들이다. 이제 앞서 살펴봤던 창영초등학교가 나오고, 조금 더 걷다 보면 고종의 어의이자 선교사였던 알렌의 별장이 나온다. 

배다리마을 체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왔던 길을 되돌아오다가 살짝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두손빌딩이 나온다. 겉보기엔 입시학원과 당구장 등이 들어선 평범한 고층 빌딩이다. 하지만 이곳은 사실 성냥공장이었던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있던 터로, 인천 노동운동의 기원이 되는 곳이다. 인천에 성냥공장이 들어선 때는 1886년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1918년 8월 인천 송림동 옛 피카디리 극장 터에 세워진 조선인촌주식회사부터다. 조선인촌주식회사는 ‘패동’ ‘우록표’ ‘쌍원표’ 등의 성냥을 생산했다. 

 

 

 

 

ⓒ시사IN 허은선 배다리마을의 풍경들

 


당시 성냥공장에서는 어린 여공들의 노동력 착취가 극심했다. 하루 13시간을 꼬박 서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일제 식민지하에서 일본인 작업감독에게 수시로 인격 모독을 당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1920년대에는 임금 인상뿐만 아니라 일본인 감독 배척을 요구 조건으로 내건 파업이 수시로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향토사 연구가들은 ‘인천 운동사는 물론 여성 권리의식의 뿌리를 찾는 측면에서 성냥공장의 파업을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두손빌딩까지 둘러보면 인천 배다리마을 여행의 전반부를 마친 셈이다. 여행 후반부는 두손빌딩의 도로 건너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으로 이어진다. 벽화를 감상하며 비탈길을 오르면 어느새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www.icdonggu.go.kr/museum)이 나타난다. 

 

 

 

 

ⓒ시사IN 허은선 배다리마을의 풍경들

 


수도국산은 일제강점기 당시 산꼭대기에 있던 수도국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소나무가 많아 송림산 혹은 만수산으로도 불렸던 이곳은 개항기부터 서서히 달동네로 바뀌었다. 개항기에는 일본인들이 중구 전동에 살기 시작하면서 그곳에 살던 조선인들이 수도국산으로 어쩔 수 없이 옮겨오게 됐다. 한국전쟁 때는 피란민들로, 1960~1970년대 산업화 시기에는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붐볐다. 

수도국산 박물관의 알찬 체험 프로그램

2005년 인천 동구청은 과거 수도국산 달동네의 삶을 재현하는 박물관을 개관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모해버린 달동네 터에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이 생긴 것이다. 옛날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연탄불을 갈아볼 수 있는 등 체험 중심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주말과 방학에는 자녀를 둔 가족 단위 관람객이 붐빈다. 2013년 7월23일부터 2014년 4월30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는 ‘어머니의 손바느질’이란 전시가 열린다. 바느질을 통해 과거 어머니들의 삶을 유추해보고, 혼수·예단으로 유명했던 1970년대 동인천 중앙시장을 추억해볼 수 있다.
 

 

 

ⓒ시사IN 허은선 배다리마을의 풍경들

‘옛날 극장’에도 가고 싶다

스페이스 빔, 아벨서점, 나비날다 등에서 〈배다리 갈래〉라는 배다리마을 안내 책자를 구입할 수 있다. 마을 지도는 물론 답사지 각각에 담긴 역사가 상세히 설명돼 있다. 가격은 5000원. 배다리마을 답사와 관련된 문의는 인터넷 카페(cafe.naver.com/welcometobaedari)나 전화(032 -422-8630)로 하면 된다.

배다리마을 근처에는 애관극장도 있다. 겉보기엔 평범한 멀티플렉스 극장이지만 사실 인천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극장이다. 1895년 창고 건물을 개조해 국내 첫 사설 공연장으로 문을 열었다가 1920년대 중반 ‘애관’으로 개명됐다. 배다리마을에서 가까운 공원으로는 화도진공원, 자유공원, 수봉공원 등이 있다.

배다리마을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려면 이모네주먹밥(032-772-1522)에 들르면 된다. 1972년 문을 연 용화반점(032-773-5970)도 주민들이 추천하는 곳이다. 배다리마을에서 택시로 기본요금 거리인 벽란식당은 밴댕이 회무침 전문점으로 유명하다(인천 동구 화수1동 285-6, 032-772-7023).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 골목도 유명하다. 배다리마을에서 택시요금 3000원 거리에 있는 백령면옥 제물포점(인천 남구 도화2동 90-9, 032-881-8489)은 이북식 백령도 냉면이 맛있기로 소문난 집이다. 송현동 순대골목과 닭강정이 맛있기로 유명한 신포시장도 들러볼 만하다.

기자명 허은선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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