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선선한 계절. 도시형 장터는 나들이 장소로도 제격이다. 요즘은 구청 앞마당 등에서 주기적으로 장터를 여는 지자체도 여러 곳이다. 서울시는 지난봄부터 광화문·서울광장 등에서 도농 직거래 시장과 벼룩시장 등이 뒤섞인 주말 장터를 선보이고 있다.

마르쉐처럼 민간이 기획한 도시형 장터는 이보다 좀 더 강렬한 개성을 뽐낸다. 가장 오래된 민간 주도형 직거래 장터는 누가 뭐래도 홍대 앞 프리마켓이다. 매주 토요일 서울 홍익대 정문 건너편 놀이터에서 젊은 작가들이 만든 미술품과 수공예품을 만날 수 있다. 지방의 경우 대전 아트 프리마켓(매달 1·3주 토요일)과 부산 지구인마켓(매달 2·4주 토요일)이 꾸준히 열린다.

ⓒ시사IN 신선영서울 영등포 달시장에서 동네 예술가와 주민들이 만나고 있다.

최근 등장한 장터 중에서는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이태원 계단장’이 눈길을 끈다. 서울 한남동 이슬람사원 뒤쪽 가파른 계단을 좌판 삼아 벌어지는 직거래 장터로, 한 달에 한 번(매달 마지막 토요일) 열린다. 계단장은 이태원 우사단마을에 사는 주민과 예술가들이 낙후된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기획한 장터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태원의 이국적인 풍광과 자유분방한 장터 분위기가 맞물려 소문이 나면서 최근에는 서울 전역에서 구경꾼이 몰리고 있다. 계단장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마르쉐마냥 장터가 열리지 않을 때도 SNS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소통한다.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사는 서울 문래동에서도 지난 5월부터 한 달에 한 번(매달 셋째 주 토요일) 장터가 열린다. 이름은 ‘아트페스타 헬로우문래’다. 문래창작촌에 입주한 작가를 비롯해 국내외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장터다. 작가들의 작업실을 직접 돌아보며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문래동 골목 투어, 미니 경매 프로그램 등도 진행된다.

ⓒ시사IN 이명익‘365일 열리는 장터’를 표방한 서울 마포의 늘장.

2011년부터 시작된 ‘영등포 달시장’(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은 지역 내 사회적 기업을 알리는 도시형 장터로 자리를 잡았다. ‘협동’ ‘소비’처럼 매달 주제어를 제시하고, 이와 관련된 사회적 기업의 제품 또는 서비스를 판매하고 홍보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건강’을 주제로 한 8월 달시장에는 지역 의료생협 등이 참가해 지역 주민을 상대로 혈당·스트레스 체크, 건강 상담을 진행했다. 장터 한쪽에서는 ‘팔찌 만들기’처럼 지역 예술가들이 진행하는 다양한 워크숍도 벌어진다. 하자센터가 진행하는 놀이 워크숍은 어린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공간 살리고, 경제적 이익도 얻는 일석이조

최근에는 이렇게 간헐적으로 열리는 장터 말고 상설 장터를 표방한 도시형 장터도 등장했다. 지난 9월6일 서울 공덕역 인근(마포구 염리동)에 정식 오픈한 ‘늘장’이 그것이다. 친환경 유기농산물과 소품 등을 파는 쌈지농부, 면 생리대 등을 파는 목화송이, 커피 주문이 들어오면 자전거로 이를 배달하는 비씨커피, 경북 봉화로 귀농했다 농산물 판매로 어려움을 겪는 동네 주민들이 안타까워서 도농 직거래에 나섰다는 산골처녀 유라 등 색깔 있는 가게들이 장터 내에 부스를 차렸다. 이곳에서 액세서리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는 작가 백현씨는 “돈벌이는 크게 안 되어도 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즐겁다. 공방에서만 작업하다 장터에 나오면 숨통이 트인다”라고 말했다.

늘장은 경의선이 철거된 후 놀고 있던 폐선 터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이곳에 장터를 세우자고 마포구청에 처음 제안한 김병수 (주)이음 대표는 “도심 안에 무의미하게 버려져 있는 공간들을 시민을 위해 창의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공공 부지뿐 아니다. 노는 민간 부지를 사회적 기업·협동조합 장터 등으로 제공하면 해당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이렇게 되면 기업도 이득을 보고 청년 창업가들도 안정적인 판매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 상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주)이음은 지난 2011년부터 전주 남부시장 내에 청년몰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시장 상인과 청년 창업가들이 상생하는 새로운 도시형 장터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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