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매체 신뢰도의 저울추도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올해 신뢰도 조사에서 처음으로 종합편성채널을 포함시켰는데, 언론 매체 중 가장 신뢰하는 매체를 순서대로 두 개 꼽아달라고 했더니 TV조선이 톱 10(1순위 응답 기준 9위) 안에 들어왔다. 인쇄 매체 가운데 신뢰도 1위를 굳혀왔던 한겨레의 아성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시사IN〉은 창간 첫해인 2007년 이래 2009년, 2010년, 2012년 신뢰도 조사를 진행했다. 신뢰도 1위 자리는 늘 KBS였다. 이번 2013년 조사에서도 KBS는 26.6%로 가장 신뢰받는 매체로 꼽혔다. 인쇄 매체 가운데 가장 신뢰받는 매체로 꼽혔던 한겨레(9.1%)는 오차범위 이내이기는 하지만 조선일보(10.2%)에 자리를 내주고 3위로 내려앉았다. 이어 MBC(8%), YTN(8%), 경향신문(4.7%), 네이버(4.7%), SBS(4.5%), TV조선(2.6%), 동아일보(2.6%) 순서였다.

지난해와 비교해보면, 신뢰도 9위를 차지했던 중앙일보와 10위였던 오마이뉴스가 이번에는 TV조선보다 낮게 나왔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의 약진은 보수-진보의 진영 대결로 확연하게 갈린 언론 환경의 수혜를 누린 것으로 풀이된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미국의 폭스TV처럼 보수적인 시청자들에게 충실한 보도를 한 결과다. 보수적인 시청자들은 자기 구미에 맞는 채널을 열심히 찾아 본다”라고 해석했다.
 

ⓒ연합뉴스 6월10일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5·18 왜곡보도 종편 규탄대회’가 열렸다.

국내 언론 지형은 보수와 진보로 갈린 지 오래다. 지난해 대선을 거치면서 더 뚜렷해졌다.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일대일로 붙으면서 조선일보와 한겨레로 대변되는 보수와 진보 언론 역시 대리전을 치르다시피 했다.

이번 신뢰도 조사에서도 그 여파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새누리당 지지층이 꼽은 신뢰하는 언론은 KBS, 조선일보, MBC, YTN, SBS, 동아일보, 중앙일보, TV조선, 네이버, 한겨레 순이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이 꼽은 신뢰하는 매체는 한겨레, KBS, MBC, SBS, YTN, 경향신문, 네이버, 다음, 오마이뉴스, 매일경제 순이다.

출범 2년째를 맞는 종편은 좌우로 나뉜 진영 언론의 환경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특히 TV조선이 이를 적극 활용했다. TV조선은 현재 무늬만 종편이다. 운영은 보도전문 채널에 가깝다. 공중파 방송들의 보도가 취약한 낮 시간에 TV조선은 2~3시간 내내 뉴스특보를 내보내곤 한다. 지난 9월9일 하루만 보더라도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TV조선 방송 분량 중 무려 6시간40분이 뉴스였다.

드라마나 교양 프로그램을 줄여 제작비를 아끼기 위한 고육책인데, 이것이 시청자들에게 오히려 먹힌다. 기자들을 잇달아 리포팅시키고 보수 성향 평론가들을 불러 계속 코멘트하게 하는 식이다. 경쟁 종편사의 한 기자는 “TV조선은 이석기 사건 한 꼭지만으로 3~4시간 방송하는데도 시청률이 높다. 우리도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9월4일 ‘이석기 체포동의안 가결’ 때도 특보 체제를 가동했는데 평균 시청률이 무려 5.6%를 기록했다. TV조선이 자체 분석한 결과, 공중파 포함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이었다. 한 언론사 기자는 “이석기 사건 때는 국정원발 속보가 쏟아지니까 TV조선을 안 볼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가장 불신하는 언론 ‘1위’

좌우 지형이 갈린 언론 환경은 불신하는 매체를 묻는 설문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불신하는 매체를 순서대로 꼽으라고 물었더니, 새누리당 지지층은 한겨레(22.5%)를, 민주당 지지층은 조선일보(46.3%), 중앙일보(25.7%), 동아일보(15%) 순으로 꼽았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불신 매체 2위로 조선일보(10%)를 꼽은 것이 눈에 띈다.
 

전체적으로 보면 1순위 응답에서는 조선일보(20.4%), 한겨레(10.2%), MBC(6.5%), 동아일보(4.9%), TV조선(4.5%), 중앙일보(3.8%) 순서로 불신도가 조사되었다. 1순위와 2순위 응답을 합치면 조선(26.8%), 중앙(13.4%), 한겨레(13.2%), 동아(11.4%), TV조선(7.1%) 순이었다. ‘5·18 북한군 개입설’ 등 오보 사고를 친 TV조선은 불신도에서도 톱 10에 들었는데, 조선일보처럼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양상이다. 김민배 TV조선 보도본부장은 “채널 돌리던 시청자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는 시간은 0.3초다. 공중파를 포함해 종편 4사가 똑같이 방송하면 경쟁력이 없다. TV조선만의 색깔로 경쟁하겠다”라고 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진영 언론으로 나뉜 혜택이 진보 쪽으로는 잘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여권 지지층이 많다는 점이 한계로 작용하는 듯하다.

주관식으로 물은 가장 신뢰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시사 프로그램의 부침이 뚜렷했다. 2010년 조사에서는 KBS 〈9시 뉴스〉(17%), MBC 〈PD수첩〉(11.8%), MBC 〈뉴스데스크〉(8.3%) 순서였고, 2012년 조사에서는 KBS 〈9시 뉴스〉(21.5%),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6.6%), MBC 〈뉴스데스크〉 차례였다. 이번 조사에서는 KBS 〈9시 뉴스〉(19.2%), MBC 〈뉴스데스크〉(4.5%), SBS 〈그것이 알고 싶다〉(4.3%), SBS 〈8뉴스〉(4.1%) 순서였다. 

한때 신뢰받은 프로그램 2위였던 MBC 〈PD수첩〉(2%)은 채널A 〈쾌도난마〉(2.1%)나 JTBC 〈썰전〉(2%)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졌다. 손석희 진행자가 빠진 MBC 〈신동호의 시선집중〉은 0.2%로 추락했다. 〈뉴스타파〉나 〈국민TV〉 등 대안 매체는 응답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주관식으로 물은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은 손석희 JTBC 사장(17.3%)이 차지했다. 종편 JTBC라는 간판과 손석희라는 브랜드가 충돌해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전망과 달리 지난해(17.4%)와 거의 같았다. 민경욱 KBS 〈9시 뉴스〉 앵커(1.7%), 이금희 KBS 〈아침마당〉 진행자(1.7%)가 큰 차이로 공동 2위에 올랐다. ‘힘없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힘 있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뉴스’라는 카피를 직접 만든 손석희 사장은 9월16일 14년 만에 텔레비전 앵커로 복귀했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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