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보는 만큼 알게 되기도 한다. ‘초캠(초보 캠퍼)’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생초보가 굳이 캠핑 고수들을 따라나선 이유다.

기자가 소개받은 고수는 이름하여 ‘캠핑크루 엣지’. 다섯 가구로 이뤄졌고 ‘제대로 캠핑을 즐길 줄 아는 내공 있는 사람들’이라는 정도가 캠핑에 합류하기 전 주워들은 정보의 전부였다. 디데이는 3월16일. 격월로 열리는 엣지 팀 ‘정모(정기 모임)’가 이날이다. 봄기운이 막 찾아들락 말락 하는 주말 오후, 이들이 모이기로 했다는 경기도 남양주 팔현캠프장을 찾았다. 울창한 잣나무 숲 덕분에 수도권 캠핑장치고 자연친화적이라는 평을 받는 곳이다.

그런데 숲 아래편, 캠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소를 아무리 뒤져봐도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거니 산 위로 한참을 올라오란다. 올라갈수록 취사장·화장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보아하니 숲 위쪽은 전기도 사용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 사람이 뜸한 데 이르러서야 엣지 팀이 있는 곳을 찾았다. “불편하더라도 조금만 더 올라오면 숲을 훨씬 가깝게 느낄 수 있거든요.” 엣지 팀의 맏언니 격인 조민서씨(47)가 웃으며 환영 인사를 건넨다.

ⓒ시사IN 백승기‘캠핑크루 엣지’ 팀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캠핑장과 취사장 간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날 미리 재료를 다듬었다.
그렇게 만난 엣지 팀은 기자의 고정관념을 여러 모로 깼다. 먼저 고수들의 캠핑인 만큼 온갖 화려한 장비를 볼 수 있으리라는 예상부터 깨졌다. 이날 박동우(38)·김은정씨(32) 부부가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파르테논 흰색 텐트를 가져오기는 했다. 어릴 적 운동회 할 때 학교 운동장에 세워져 있던 본부석 텐트를 연상시킬 만큼 규모가 크면서 디자인은 그보다 훨씬 세련돼  ‘텐트계의 타워팰리스’라 불린다는 가옥형 텐트다. 그러나 나머지 네 가족은 일명 인디언 텐트라 불리는 원추형 텐트(티피 텐트) 내지 캠핑 갔을 때 흔하게 볼 수 있는 돔형 텐트를 치고 있었다. 박동우씨 또한 본래는 집에 있는 작은 텐트를 가져올까 하다가 ‘취재팀 촬영하는 데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특별한 일 아니면 쓰는 일이 거의 없는 파르테논을 가져온 거란다.

ⓒ시사IN 백승기해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어른 중 한 명이 캠핑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돌본다.
또 하나 놀란 것은 이 캠핑 모임을 주도하는 이가 여성들이라는 사실. 알고 보니 엣지 팀을 결성한 것 자체가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던 30~40대 여성 다섯 명이 만나면서였단다. 그렇다면 보통 이 또래가 그렇듯 아이를 위해 캠핑을 시작했다가 인연이 닿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란다. 이들은 구성부터가 제각각이다. 아들딸이 중·고등학생이어서 이미 캠핑을 잘 따라다니지 않는다는 조민서씨(닉네임 안나)가 있는가 하면 조혜진씨(36·진지한가필드)는 미혼, 장현숙씨(36·유쾌한야옹씨)는 아이 없는 신혼이다. 신영미씨(35·유키)는 남편이 사업으로 바빠 딸 윤희(8)와 주로 모녀 캠핑을 즐긴다. 막내 김은정씨(김여사) 정도가 ‘엄마·아빠+자녀’ 세트로 구성된 전형적인 캠핑 패밀리다.

화려한 장비? 실용적인 장비!

그럼에도 이들은 지난해 봄 첫 만남을 가진 뒤 ‘이러다 같이 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급속도로 친해졌다고 했다. 차이를 넘어 강력한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 일단 다섯 명 모두 캠핑 경력 3~4년차로 경험치가 비슷했다. 캠핑 취향도 닮은 데가 많았다. 사진과 요리에 능하고, 개성 있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 또한 공통점이었다. 이들이 중심이 되니 남편 또는 남친도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남자들이 중심이 되는 캠핑 모임에서는 나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술이 과해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생기고…. 그런데 엣지 팀에 오면 그런 게 없어 즐겁고 편안하다”라고 조민서씨의 남편 김완욱씨(45)가 말했다.

ⓒ시사IN 백승기생일을 맞은 조민서씨(오른쪽)에게 남편 김완욱씨가 케이크를 건네고 있다.
이들이 내려준 드립 커피를 마시다 취재 목적이 생각나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캠핑 고수와 초보는 뭐가 다른가요?” 이들은 고수라는 표현 자체를 부담스러워했다. 캠핑에 고수와 하수는 없다고 했다. 그저 즐길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 그렇지만 초보 시절과 비교해 분명한 변화는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내 취향이 뭔지 잘 몰랐다. 남들 하는 대로 이것저것 캠핑 장비 사들이고, 유명하다는 캠핑장은 다 찾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이게 무슨 짓인가 싶더라”고 조민서씨는 말했다. 캠핑 오갈 때마다 짐을 꾸리고 정리하는 일이 피곤하게만 느껴졌다. 그즈음, 지금은 없어진 춘천 중도캠핑장에 갔다가 이들 부부는 전기를 맞았다. 어머니 같은 대자연의 품속에서 처음으로 “캠핑이 고단함이 아니라 즐거움임을 알았다”는 것. 아들 주원이(7)가 두 돌이 되면서부터 캠핑을 시작했다는 박동우·김은정씨 또한 비슷한 권태감에 시달리다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캠핑의 참맛에 비로소 눈을 떴다고 말했다. 이렇게 ‘나만의 캠핑 스타일을 아는 것’, 이것이 캠핑을 즐기는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엣지 팀 사람들의 공통된 캠핑 스타일은 ‘불편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처음에는 캠핑장에 화장실이나 세면장 같은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졌는지를 맨 먼저 따졌다”라고 조혜진씨는 말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자연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까운 곳을 찾아다니게 된 지금은? 재래식 화장실이라도 있기만 하면 감사하게 생각한단다. 벌레라면 질색을 했다는 신영미씨는 “요즘은 아이가 송충이를 잡아오면 함께 송충이 눈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예뻐?’라고 감탄한다”라며 웃었다.

초보 시절과 달라진 두 번째 차이점은 캠핑 장비의 간소화다. 이들이 모여 앉은 식탁은 텐트처럼 소박했다. 앉은뱅이책상보다 약간 높은 사이드 테이블에 키 낮은 의자(로 체어)가 전부였다. “한때는 다들 빵빵한 IGT(아이언 그릴 테이블)에 릴랙스 체어를 갖고 다녔다”라고 김완욱씨는 말했다. 이들 장비를 펴놓으면 웬만한 주방을 옮겨놓은 듯했다. 그런데 캠핑 경력이 쌓일수록 최소화한 장비, 그러면서도 실용적인 장비에 손이 가더라는 것이다. 이들의 말마따나 ‘사람도 캠핑 장비도 군살 없는 게 최고’인 경지에 이른 셈이다.

최근 엣지 팀이 백패킹(backpacking)의 매력에 새롭게 눈을 뜨면서 미니멀리즘 경향은 더 강해지고 있다. 캠핑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등에 지고 다녀야 하는 백패킹의 특성상 간소화는 필수다. 자동차로 다니는 오토캠핑에 익숙한 이들에게 백패킹은 어쩌면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때묻지 않은 자연에 더 깊숙이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얼마 전 남편 박진수씨(39)와 전남 영암으로 백패킹을 다녀왔다는 장현숙씨는 “완전히 신세계였다”라는 말로 그 매력을 요약했다.

초보 때와 달라진 세 번째는 ‘따로 또 같이’ 즐길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캠퍼 중에는 나 홀로 캠핑 혹은 가족 캠핑만 고집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같은 패턴을 반복하게 되면 제아무리 캠핑 애호가라도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고 이들은 말한다. 반면 캠핑 동호회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 여럿이 뭉쳐 다니는 이른바 ‘떼 캠핑’에 재미를 붙이는 경우도 있는데, 너무 이쪽으로 치우치면 자신이나 가족을 돌아볼 시간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엣지 팀은 ‘모두가 함께 모이는 캠핑은 두 달에 한 번만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물론 혼자 떠나는 캠핑은 자유와 불안을 동시에 수반한다. 그러나 캠핑 경험이 쌓일수록 두려움이 줄어들더라고 김완욱씨는 말한다. “처음에는 캠핑을 떠날 때마다 원래 계획했던 대로 안 되면 어떡하나, 기상악화 등 돌발 상황이 생기면 어떡하나, 근심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설사 장비 몇 개를 빠뜨리고 가더라도 현지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아니까.” 이는 지난해 아내와 함께 용감하게 떠난 12박13일의 스위스 캠핑 여행에서 경험칙으로 다져진 자신감이기도 하다.

따로 또 같이 노는 가족들

이들이 ‘따로 또 같이’ 노는 모습은 확대가족인 양 자연스러웠다. 어른들이 해먹에 누워 책을 읽거나 의자에 앉아 수다를 떠는 동안 아이들은 산으로 쏘다니며 나뭇가지를 주웠다. 간만에 캠핑에 합류한 신영미씨의 남편 한준섭씨(42)가 아이들을 돌봤다.

 

저녁 어스름이 되자 캠핑의 하이라이트, 저녁 식사가 준비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양장피·안동찜닭·잡채·과메기에서 타이식 요리인 팟타이에 이르기까지, 숲속 식탁에 상상도 못한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특히 이날이 조민서씨 생일이라 나머지 네 여자가 더 신경을 썼다고 했다. 팔현캠핑장의 경우 캠핑장과 취사장 간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지라 캠핑 오기 전날 새벽 1시까지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며 미리 재료를 다듬었다고. 뜻밖의 생일상을 받은 조씨는 “아침에 미역국 끓이기도 번거로워 식빵 한 조각으로 대신했는데 내가 복 받은 사람이다”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음식은 미니멀리즘과 거리가 머네요”라고 기자가 농을 건네자 신영미씨는 “멋진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이걸 사진으로 담아 블로그에 기록하고 나눠 보는 게 우리의 기쁨이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여성들이 주도한 캠핑이기에 이런 일이 가능하겠거니 싶기도 했다. 남이 시켜서야 이 정도 정성이 우러나겠나. 캠핑에 빠진 남자들이 흔히 하는 고민이 ‘어떻게 하면 아내를 설득할까’라고 한다. 이런 이들에게도 엣지 팀은 최상의 롤모델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러니 아내가 캠핑을 싫어한다면 아래 주소를 메모해 은근슬쩍 보여주시라. 다섯 여자의 블로그 주소, 지금 공개한다.

◆ 안나의 캠핑 이야기  blog.naver.com/ulipin7
◆ 진지한 가필드(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jinny3go.blog.me
◆ 유쾌한 야옹씨  saingl.blog.me
◆ 유키의 야영 이야기  ukivill.tistory.com
◆ 김여사의 주말N캠핑  playgeo.blog.me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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