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유엔의 명령과 명백한 증거도 없이 다른 나라를 공격한다면 국제법상 의문이 뒤따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국제적 연대를 끌어낼 수 있을까요?”

헌법학 교수 출신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 문제를 놓고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딜레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2003년 유엔의 동의 없이 이라크 전쟁을 감행해 나중에 도덕적·국제법적 문제와 씨름했듯이 오바마 대통령도 시리아 문제로 자칫 부시의 전철을 되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Reuter=Newsis2009년 6월 오바마 대통령이 무슬림에게 공존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보좌진과 상의하고 있다.

5년 전 집권 1기 때는 물론이고 지난해 11월 재선에 성공한 뒤에도 재임 내내 ‘반전론자’로 남아 있을 것 같던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 사태로 발목이 잡혔다. CNN과의 인터뷰 때만 해도 미군의 개입을 주저하던 그가 결국은 미국 스스로 설정한 덫에 걸려 개입 쪽으로 선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몰린 것이다. 미국은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걸 ‘금지선’으로 설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군사행동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강력히 천명해왔다. 그런데 시리아가 지난 6월 금지선을 넘은 것으로 미국 정보당국이 최근 단정하면서 오바마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것이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3월 시작된 시리아의 내전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10만명을 넘어서고 실종자가 2만8000명에 이르자 미국이 개입해야 한다는 요구를 국내외로부터 끊임없이 받아왔다. 의회 쪽에서도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을 비롯해 적지 않은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질타하고 강력한 응징을 촉구했다. 하지만 시리아 사태의 핵심은 아랍 민주화의 영향을 받은 다수의 수니파가 소수파 장기 집권 세력인 알아사드 정권에 반대해 봉기한 ‘종족 분쟁’의 성격이 강해 오바마는 개입 자체에 회의적이었다. 섣불리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다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쉽게 발을 빼지 못하고 장기전의 늪에 갇히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오바마는 가급적 개입을 자제해왔다.

이런 오바마의 반전 성향은 그의 ‘복심’으로 알려진 벤 로즈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의 발언에서도 드러났다. 로즈 부보좌관은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이 처음 밝혀진 지난 6월 중순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행동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우리가 배제한 한 가지 옵션은 미국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이다”라고 확언한 바 있다.

반군 지도부에게 무기 제공 승인

하지만 그토록 미군 개입을 꺼리던 오바마도 시리아가 민간인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주저주저하던 그가 결국은 시리아 반군 지도부인 시리아 최고군사위원회에 대한 공격용 무기 제공을 승인한 것이다. 오바마가 군사 개입 쪽으로 움직인 데는 미군의 개입을 강력히 주창해온 수전 라이스 신임 국가안보 보좌관과 사만사 파워 신임 유엔 대사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국 처지에서 보면 최선의 군사 개입 방안은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정식으로 움직이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불가능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시리아 군사 제재 결의안에 줄기차게 반대해왔고, 중국도 러시아와 보조를 맞춰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이 택한 방법이 유엔을 우회해 미국 중심의 다국적군, 구체적으로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맹국들이 주도하는 군사 개입이다. 미국은 과거 유고 내전 당시 코소보 분쟁 때도 이런 방식을 택했다. 코소보 자치주에 살던 소수 알바니아인들이 세르비아 세력에 의해 이른바 ‘인종청소’(대량학살)를 당하던 상황에서 러시아의 반대로 유엔의 군사 개입이 어렵게 되자 클린턴 대통령은 나토를 이용해 군사작전을 펼쳤다. 당시 작전에는 1000대 이상의 전투기가 78일 동안 총 3만8000회 출격해 결국 세르비아의 항복을 받아냈고, 3만명에 달하는 나토 병력이 평화유지군이라는 명목으로 주둔했다.

ⓒAP Photo8월27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시리아계 주민들이 시리아 내전 개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인 60%, 시리아 사태 개입 반대

그렇다면 오바마 대통령도 이번에 성공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각기 이해관계가 다른 이슬람 종파가 뒤얽힌 시리아 사태는 유고와는 사정이 다르다. 게다가 시리아는 러시아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뒤에 버티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지상군의 투입 배제라는 원칙을 고수하며 크루즈 미사일 공격을 통한 제한적인 군사작전에 치중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시리아를 겨냥한 전면전이 아니라 화학무기를 사용한 알아사드 정권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하는 차원의 제한적 공격임을 뜻한다. 하지만 이런 제한적 공격으로 과연 알아사드 정권을 굴복시켜 내전을 종식할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낼 수 있을지 오바마 참모들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게다가 크루즈 미사일 공격으로 시리아 내의 화학무기고가 파괴될 경우 화학무기 오염으로 인한 환경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익명의 행정부 관리가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화학무기고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 파장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설상가상으로 전쟁이 터지면 난리를 피해 인접국인 터키와 요르단으로 피신할 시리아 난민도 대폭 늘어날 게 뻔해 인도주의적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미군의 시리아 개입을 우려하는 일관된 반전 여론이다. 로이터 통신이 8월19~23일 미국인 1400여 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약 60%가 미군의 시리아 개입에 반대했고, 찬성한 응답자는 고작 9%였다. 여론조사 시점이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 문제로 국제사회가 시끌시끌하던 때임을 감안하면 미국인들은 응당 미군의 개입을 선호했을 법하지만 오히려 반대의 반응을 보인 것이 예사롭지 않다.

이 같은 부정적 여론은 다른 조사기관이 실시한 결과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7월 퀴니팩 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이 미국의 국익에 맞지 않는다고 응답한 유권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2배나 더 많았고, 비슷한 시기에 〈뉴욕 타임스〉와 CBS 방송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최고 69%에 달하는 응답자가 미국의 개입에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비단 시리아 사태뿐 아니라 미군의 해외 분쟁 개입 자체로까지 부정적 여론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저명한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의 앤디 코허트는 “국민들은 전 세계 분쟁에  미군이 개입하는 걸 극도로 우려한다”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부정적 여론은 일단 미군의 개입이 시작될 경우 바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반전 여론’이라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은 채 전쟁에 나서야 하는 처지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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