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업화의 최대 역군이자 글로벌 철강기업인 포스코 그룹이 난관에 봉착했다. 2010년 사상 최대 흑자로 팡파르를 울린 지 고작 2년여 만이다.

가장 요란하게 경고음을 울리는 것은 무디스, S&P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해당 기업의 주식과 채권이 투자자들에게 높은 수익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줄 것인지 여부다. 그래서 주식과 채권의 수익성을 떠받쳐줄 포스코의 재무상태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요즘 신용평가사들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포스코의 재무상태 악화다.

포스코 그룹은 올해 2분기에 9030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1분기(7170억원)보다 훨씬 우량한 수치다. 그러나 무디스의 크리스 파크 부사장은 “2분기 실적이 포스코의 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라고 밝혔다(로이터통신 7월26일). 지난해 같은 시기(2012년 2분기)의 영업이익인 1조3000억원에 비해 약 4000억원이나 낮다는 것이다. 한 해 동안 영업이익이 30.5% 빠졌다. 이렇게 포스코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데다, 과잉 투자로 부채가 쌓였기 때문에 ‘앞으로 12개월 동안 포스코는 Baa1 등급 수준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파크 부사장은 단언한다.
 

ⓒ광양제철소 제공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6월7일 광양제철소 제1고로에 불을 넣는 화입식 행사를 하고 있다.

Baa1은, 무디스가 포스코에 부여한 신용등급이다. 포스코의 무디스 신용등급은 2011년 초까지만 해도 A2였다. 그러나 포스코가 2010년 ‘자원 기업’ 대우인터내셔널을 3조3000억원에 인수한 것을 계기로 2011년 하반기에 A3로 떨어졌다. 지난 1월에는 다시 Baa1으로 강등되었다. 무디스는 지난 5월, 포스코의 신용등급 전망까지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전환한다. 포스코의 현재 재무상태로는 Baa1도 유지할 수 없다고 경고한 것이다. 다른 유력 신용평가사인 S&P 역시 2011년 이후 A0에서 A-, 다시 BBB+로 세 차례에 걸쳐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내렸다. 이런 상황이라면 포스코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산(보유한 금융상품이나 계열사)을 매각해서 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부채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다시 신용등급을 내리겠다는 것이 신용평가사들의 생각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2010년 9월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맨 오른쪽)이 대기업 총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정준양 포스코 회장.

정준양 회장 취임 후 자원개발 등에 나서

포스코가 어쩌다 이런 궁지에 몰렸을까? 가장 큰 이유는 철강산업 자체가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중국 등 이머징 마켓의 경제발전이 가속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철강 수요가 많아지고 가격이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중국을 중심으로 철강기업의 수와 생산능력도 함께 늘어났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동차·조선·건설 부문 등의 불황으로 철강 수요는 오히려 떨어졌다. 세계적 차원에서는 철강기업이 너무 많고 철강생산 능력도 지나치게 큰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포스코경영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세계적으로 철강기업들이 생산할 수 있는 철강 규모가 전체 수요보다 3억~5억t 많은 상태다. 더욱이 철강이 필요한 산업(자동차·조선·건설 등)의 불황은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포스코 그룹의 매출액 역시 2011년 이후 하향세가 지속된다. 2011년 매출액이 68조9000억원에 달했으나 2012년 63조6000억원, 올해는 60조원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관측된다.

이에 대해 경영에 책임을 묻는 이야기도 나온다. 2009년 2월 취임한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사업 규모를 늘리는 동시에 사업 영역도 에너지에서 자원 개발, 신소재 등으로 넓혔다. 급진적인 ‘몸집 부풀리기’ 전략이다. 정 회장의 비전은 ‘2020년 매출 200조원, 글로벌 100대 기업 진입’이었다. 이에 따라 ‘자원개발 기업’인 대우인터내셔널 등 수십 건의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포스코 연결재무제표’에 따르면, ‘연결에 포함된 회사(=포스코와 그 종속 기업)의 수’는 2008년 말에는 74개에 불과했으나 2009년 이후 급속하게 증가해서 2012년 말 현재 212개에 달한다. 인수합병은 대개 ‘타인 자본(외부의 돈)’을 빌려 추진하기 때문에 부채 규모가 늘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포스코 그룹의 부채총계는 정 회장 취임 첫해인 2009년 말에는 18조6000억원이었다가 2010년 말에는 30조8000억원으로 크게 늘어나 2013년 6월 말 현재 39조7000억원에 이르고 있다.

물론 부채(총계)가 늘어났다고 다 ‘경영 실패’는 아니다. 돈을 빌려 인수한 기업들이 좋은 실적을 내거나 사업 전망이 밝다면 자본금(기업 법인이 사용할 수 있는 자기 돈)을 늘릴 수단은 많다. 그래서 기업 재무상태를 판단할 때 많이 사용하는 지표가 ‘부채비율’이다. 기업이 ‘외부에서 빌려 앞으로 갚아야 할 돈’의 규모가 ‘해당 기업의 돈’보다 얼마나 크고 작은지를 나타내는 수치(부채총계/자본총계)다. 작을수록 해당 기업의 재무상태는 우량한 것으로 평가된다. 포스코의 경우 2000년대 중반에는 부채비율이 38~47%였다.

그런데 이구택 전 회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하차한 2008년, 65.6%에 이른 데 이어 정준양 회장 취임 이후 급속히 증가해서 2013년 6월 말 현재 90.4%에 달한다. 그동안 부채로 인수한 기업들의 실적이 아직 좋지 않다는 뜻이다. 주가 역시 2010년 1월에는 주당 63만3000원까지 올랐으나 지난해 하반기에는 30만원대 초·중반까지 추락했고, 6월 말에는 30만원 이하로 빠지는 등 올 하향세다.

정권 교체될 때마다 정치권에서 입김

이 같은 포스코의 경영부진에 대해 최근에는 정치권의 부당한 개입을 탓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시중에 널리 퍼진 선입견과 달리 포스코는 공기업이 아니다. 민영회사다. 국민연금공단이 8월 말 현재 6.14% 지분을 가지고 있으나 경영 개입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대주주들 역시 일본의 철강 대기업인 신일본제철(지분 5.04%)을 제외하면 1~2% 지분을 가졌을 뿐인, ‘주인 없는 회사’다. 그래서인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포스코의 회장도 바뀌는 등 정치권의 입김이 관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에는 대통령 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회장 후보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정준양 내정설’이 나왔다. 떨어진 회장 후보는 “사퇴 압력을 받았다”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주력 업종이 철강인 포스코가 자원과 신소재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무리한 투자를 진행한 것이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떠돈다. 한마디로 정권의 도움으로 구성된 포스코 경영진이 ‘보은 경영’에 나섰다가 회사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준양 회장은 지난해 초 연임에 성공해 오는 2015년까지 임기를 약속받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퇴진설이 돈다. 경영 위기가 날로 명확해지는 상황에서 다시 정권의 입맛에 따라 경영 시스템이 흔들리는 사태가 발생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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