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이라는 뜻이다. 금할 금(禁)이 아니라 옷깃 금(襟)자를 쓴다. 정치인이나 언론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의미로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한번 관용구가 되면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법.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8월23일 야당 의원들에게 “공당으로서 금도를 지켜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전날인 8월22일 국정원 국정조사특위 소속 야당 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낸 공식 서한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서한에는 ‘박 대통령은 3·15 부정선거가 시사하는 바를 잘 알고 있는 만큼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는 부분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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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보기에 ‘3·15 부정선거’를 거론하는 건 선을 넘어선 일이라는 것. 그동안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 사건에 침묵을 지킨 청와대인 걸 감안하면, 어지간히 ‘격노’한 게 틀림없다. 이 수석의 발언은 가뜩이나 청문회를 보다 뿔이 난 누리꾼들 가슴에 기름을 부었다. 당장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야말로 선을 넘은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증인이 증인선서를 거부하고, 가림막 뒤에서 모범답안을 읽는 ‘기억상실 청문회’(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손톱을 다친 게 너무 아파 12월15일 점심을 누구와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에 “국가기관 근무자들을 대상으로 기억력 테스트를 시급히 도입하라”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상식선을 넘지 않는’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데에만 2년이 걸렸다. 8월22일 항소심 재판부(재판장 장순욱)는 북한 트위터 계정 ‘우리민족끼리’의 글을 리트윗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지난해 11월 유죄판결을 받은 박정근씨(26)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일부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박씨가 구속될 때 검찰은 ‘트위터는 4명만 팔로해도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는 매우 파급력이 큰 매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누리꾼들은 “그럼 국정원 3차장 이하 70여 명이 알바까지 동원해 댓글 단 건 무지무지한 파급효과라는 것인가?”라고 냉소를 날렸다.


그런가 하면 8월20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변호인은 원 전 원장의 보석을 호소하며 “(전직)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이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겠냐. 사법부가 옛날로 돌아간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제 직원 인권 챙길 때만 21세기에 사는 국정원은 아무래도 시간여행자인가 보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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