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는 〈태엽 감는 새〉를 잇는 묵직한 장편으로, 이야기를 도중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가보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졌다. 큰 인상을 남긴 〈1Q84〉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출판사가 부담한 책이니 적어도 〈1Q84〉만큼의 재미와 감동을 기대한 것이다. 일본에서의 판매 부수도, 일본판을 미리 읽은 몇몇 지인의 이야기도 기대감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양한 매체에서 쏟아지는 하루키 관련 기사와 비평들을 발견하면 꽤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실제로 읽은 하루키 신작 소설은 ‘하루키 소설’다운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규모 면에서 〈1Q84〉가 마치 교향곡 같다면 이번 신작은 소나타 같다고나 할까. 꽤 중요하게 언급된 인물(하이다 같은)과 단서들이 적절하게 처리되지 않고 펼쳐만 두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 소설이 〈1Q84〉보다 더 큰 금액으로 계약을 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나? 소설 자체로만 본다면 아닐 것이다. 하지만 16억원이라는 금액이 지불하고 있는 것은 작품 자체의 가치보다는 하루키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심리와 그 기대심리에 부응하기 위한 언론들의 보도 경쟁 의지일 것이다.
대형 뮤지션의 신보나 블록버스터 영화가 출시되어 소비되는 과정과도 얼추 비슷한 과정에 있었으며, 어쩌면 우리가 진정 바라는 건 소설 자체보다는 출판·문학계의 괜찮은 뉴스거리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거대한 자본주의가 주는 상실과 허무를 소설 속에서 꼬집곤 하는 하루키는 이런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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