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31일 국세청은 1966년 개청하고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청사에서 맞았다. 국세청의 들뜬 분위기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찬물을 끼얹었다. “대한민국에서 역대 기관장이 가장 감옥에 많이 가는 데가 농협중앙회와 국세청이다.” 국세청의 신뢰를 강조하기 위해서 한 쓴소리는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역대 국세청장 18명(전체 19대 국세청장 중 추경석 전 청장이 8·9대 연임) 중 7명이 법정에 섰고(오른쪽 표 참조), 이 가운데 6명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국세청장 9명 중 3명(33.33%)이 범죄자인 셈이다. 이 정도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말은 야박한 소리가 아니라 정확한 지적이다. 사전 구속된 사람도 5명이나 된다.

ⓒ시사IN 신선영8월1일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가고 있다.

4대 권력기관(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으로 꼽히는 국세청 수장의 영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8월3일 영장실질심사까지 포기하고 스스로 구속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다. 2006년 CJ그룹 세무조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30만 달러와 2000만원짜리 시계를 받은 혐의다. 전·현직 국세청 최고위급 간부가 줄줄이 엮이는 스캔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선 정치자금을 만드는 데 앞장서다 감옥행을 한 국세청장부터 청탁을 대가로 수십억원 현금과 그림, 아파트 따위를 받거나 준 수뇌부까지 다양하다. 세무공무원 2만명, 본청·지방청 6개, 세무서 111개를 둔 국세청이 영향력만큼이나 신뢰를 받으려면 국세청의 ‘검은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져간다.

전군표 16대 국세청장은 국세청 내 기록이 몇 개 있다. 현직 국세청장으로 첫 검찰 조사, 첫 구속 그리고 현장검증을 위해 처음으로 국세청 문을 연 인물이기도 하다. 2007년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인사 청탁의 대가로 7000만원가량을 받은 혐의였다. 징역 3년6개월, 추징금 7947만원이 확정되었다. 국세청 내에서 인사를 위해 상납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표한 사건이기도 했다.

뇌물로 국세청을 떠들썩하게 한 이는 전군표 전 청장만은 아니었다. 손영래 13대 국세청장, 이주성 15대 국세청장도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사전 구속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손 전 청장은 2002년 6월 썬앤문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서 최소 추징 세액이 71억원이라는 보고를 받고 25억원 미만으로 세금을 줄이라고 지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다.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주성 15대 국세청장은 신성해운의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는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과 프라임그룹으로부터 20억원대 아파트를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그는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960만원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임명된 국세청장 7명 중 검찰에 기소된 손영래·이주성·전군표·한상률 전 청장 4명은 국세청 내부 승진 인사다(그중에서도 손영래·전군표·한상률 전 청장은 ‘국세청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조사국장을 거쳤다). 무난히 임기를 끝낸 이용섭·백용호 전 청장은 국세청 바깥 인사이다 보니, ‘계속되는 청장 비리 사건이 국세청 내부의 폐쇄적인 조직 문화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 대대적인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채이배 연구원은 “지금까지 국세청장은 내부 승진이 많았는데, 그런 인사는 국세청장이 개혁에 대한 의지가 있어도 과거 관행에 젖어 쉽게 하기 힘든 점이 있다. 몇 년간은 나쁜 내부 관행과 같은 과거에 자유로운 외부 국세청장을 임명하고 또 임기를 보장해주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한상률 17대 국세청장은 재판에 부쳐진 역대 국세청장 중 유일하게 무죄를 받았다. 한 전 청장은 인사 청탁을 위해 당시 자신의 상사인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그림 ‘학동마을’을 상납하고 주정업체에서 자문료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다. 하지만 1·2심 재판부는 “의심 가는 점이 있지만, 충분히 입증되지 못했다”라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한 전 청장의 무죄에 대해서는 뒷말이 많았다. 한 전 청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을 부른 태광실업 기획세무조사를 적극 주도했고, 이명박 대통령 차명 소유 논란이 일었던 서울 도곡동 땅 관련 의혹을 밝힐 인물로 지목받아 온 탓에 ‘검찰이 봐줬다’는 논란이 일었다. 실제로 검찰 수사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한 전 청장은 2년 동안 해외 도피를 했고 2011년 갑자기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결국 한 전 청장의 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한상률 청장, 뒷말 많은 무죄

국세청장의 개인 비리 전에는 정치자금 사건이 주를 이뤘다. 그중에서도 ‘세풍(稅風)’은 국세청 47년 역사 중 가장 어둡게 기록된 사건이다.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이 모으던 불법 대선 자금에 국세청 고위 인사가 개입되어 ‘세풍’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나라 재정의 근간인 세금을 걷고 관리하는 국세청이 집권 여당의 선거운동원으로 전락한 셈이었다. 현대 등 23개 대기업에서 불법 대선자금 166억3000만원을 받아냈다. 임채주 10대 국세청장도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임 전 청장도 구속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국세청장의 불법 정치자금 모금은 전에도 있었다. 1996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가 시작되면서, 안무혁 5대 국세청장과 성용욱 6대 국세청장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1996년 1월11일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검찰조사 결과 1987년 10월 안무혁 당시 안기부장은 육사 후배이자 안기부 출신 국세청장인 성용욱씨에게 ‘13대 대선 자금을 모집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성씨는 11개 중견 기업에게 세무조사를 무기 삼아 모두 54억원을 뜯어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전두환 정권 당시, 국세청장으로 세무 전문가가 아닌 군 출신 측근을 내세워 정권 차원에서 ‘관리’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기사다. 안 전 청장은 불구속 기소되고, 성 전 청장은 구속 기소되어 유죄 선고를 받았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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