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FTA?
  • 장영희 전문기자
  • 호수 4
  • 승인 2007.10.0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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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가 국회 비준을 거쳐 발효되면 한국에는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닥칠 것이다. 농민·노동자·서민·소비자·중소기업인 처지가 어떻게 될지 정밀 분석했다.

   
‘개척자 광개토대왕처럼, 해상왕 장보고처럼 우리 민족에겐 뜨거운 도전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시장을 향한 우리의 끝없는 열정,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우리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할 새로운 기회입니다.’ 이런 내레이션이 흐르는 가운데 말발굽에 풀이 흔들리고 뽀얀 연기가 일어나는 초원에서 말에 탄 장수는 고지에 깃발을 꽂는다. 한·미 FTA의 장밋빛 미래를 홍보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지원위원회’ 명의의 텔레비전 광고다. 정부는 한·미 FTA 협상을 개시한 지난해 2월 이후 지금까지 FTA 홍보비로 165억원을 쏟아부었다.

체험관도 등장했다. 무역협회 등 경제 단체로 구성된 한·미 FTA 민간대책위원회가 인터넷에 개설한 한·미 FTA 체험관(www.happyfta. com)에서는 한미 FTA를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이 사이트의 ‘한·미 FTA가 만들어낼 우리 가족의 기분 좋은 변화’에 따르면, 한·미 FTA는 국민 모두를 만족시킨다. 의류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관세 인하로 대미 수출이 늘어 즐거운 비명이다. 알뜰 주부인 ‘어머니’는 장보기가 즐겁다. 대학 졸업반 ‘아들’은 국내 기업으로부터는 서른 번이나 고배를 들었지만, 한·미 FTA 체결 이후 투자가 늘어 미국계 기업에 거뜬히 취업한다.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는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다 죽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피해가 크지 않다”라며, 인터넷 쇼핑몰을 통한 직거래와 브랜드 농산물로 활로를 찾는다.

이 ‘기분 좋은 변화’는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한국 정부가 자랑하듯이 섬유`의류 분야가 그나마 한·미 FTA에서 따낸 이득이라 사례로 들었겠지만, 아버지가 혜택을 받으려면 우선 까다로운 섬유`의류 원산지 규정인 얀포워드(원사 기준)를 만족시켜야 한다. 가령 실을 중국에서 가져와 옷을 만들면 한국산으로 인정받지 못해 관세 인하 혜택이 없다. 수출이 늘 턱이 없다. 혹여 아버지가 미국이 얀포워드 예외로 인정한 제품을 생산한다면 다행이지만, 인정 품목은 33개뿐이다. 당초 한국 정부는 200여 개 품목을 요구했다.

   
 
ⓒ뉴시스
300여 단체로 구성된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대표 세력이었다.
 
어머니는 마트에서 쌀과 복숭아를 빼고, 쇠고기·체리·오렌지·치즈를 값싼 미국산으로 구매해 장바구니 물가를 낮추었다. 한·미 FTA 발효 전 이 여섯 가지 먹을거리를 사는 데 6만2000원이 들었지만, 발효 후에는 5만원 이내로 준다. 식비 25.3%가 굳는다. 오호! 환호할 만하지만 어머니에게도 이 상황이 마냥 계속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당장에야 미국 농산물 값이 싸지만 국내 농산물의 경쟁력이 갈수록 지리멸렬해진다면, 장기적으로 가격이 오를 것이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는 인간 광우병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농민인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받을 혜택은 값싼 미국산 농산물이 밀려들어도 대한민국 국민은 역시 우리 농산물을 쓸 것이라는 가정 아래 출발하는데, 이것은 소비자 혜택과 모순된다. 어머니 같은 소비자는 값싼 미국산 농산물을 사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미 FTA가 ‘오히려 농업 혁신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아들의 혜택도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한·미 FTA 협정문에 따르면, 투자자 권리가 크게 신장되었지만, 이것을 곧장 고용 창출에 유용한 직접투자가 크게 늘어날 근거로 보기는 어렵다. 정부가 강조하는 서비스 역시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현지 주재가 의무 사항도 아니고 합병`매수(M&A)의 경우 고용승계 의무도 부과할 수 없으니 말이다.

만약 한·미 FTA가 국회의 비준을 거쳐 발효된다면 한국에는 어떤 파장을 몰고 올까. 우선 한국이 다른 나라와 맺은 FTA와는 차원이 다를 것은 분명하다. 거의 모든 품목에서 관세가 철폐되기 때문이다. 관세화 예외 품목은 1만1천2백79개(HS 10단위 기준) 가운데 쌀 관련 16개 뿐으로 단 0.14% (품목 수 기준)에 그친다.

관세 철폐로 인한 이익도 미국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평균 관세율이 미국보다 대부분 높기 때문이다. 공산품에서의 관세 철폐보다 정작 위협적인 것은 서비스와 투자 분야 개방이라는 이른바 비관세 장벽 철폐이다. 한·미 FTA가 발효하려면 두 나라 모두 협정문에 맞게 법과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바꾸어야 할 법과 제도는 엄청나게 많은데, 미국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최재천 의원은 한국이 바꾸어야 할 법률(시행령 포함)이 무려 100개가 넘는다고 주장한다(정부 주장은 24개). 급속한 ‘미국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FTA 발효 이후 후폭풍이 어떻게 불어닥칠지는 전문가들도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복잡다기하고 동태적으로 펼쳐질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FTA로 인한 혜택(혹은 피해)이 비대칭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김종훈 당시 협상 수석대표(현 통상교섭본부장)가 텔레비전 토론에 나와 “농업을 지키자면 FTA는 없었다”라고 극언하는 판이니 최대 피해 분야가 농업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고 다른 분야가 온전한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거의 전 산업 분야에서 거센 산업 구조조정의 회오리가 몰아닥치리라고 내다본다. 상당수 기업이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놓일 것이다. 물론 일부 국내 대기업은 끄떡없을 수도 있다. 이미 글로벌 분업 구조에 깊이 편입되었으며 시장과 제품이 매우 다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세 소기업이나 농업, 서비스 같은 비교역재의 생산자, 그리고 그들이 고용한 대다수 노동자들의 처지는 딴판이다. 경제·사회적 약자는 한·미 FTA의 재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저지운동 진영에서 한·미 FTA가 한국 사회를 20 대 80을 성큼 넘어서 10 대 90의 사회로 변모시키리라는 섬뜩한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시사IN 포토
한·미 FTA는 영세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임금노동자에게는 ‘재앙’이 될 공산이 크다.
 
노동자·서민` 영세 기업인 '한숨' 
한·미 FTA의 최대 희생양은 힘없는 임금노동자가 될 것이다. 전체 임금노동자 1573만1000명 가운데 특히 고용 상태가 불안정하고 임금 수준이 낮은 비정규직 노동자(874만4000명·55.6%)에게는 직격탄이 될 공산이 크다.

한·미 FTA 이전에도 노동자의 삶은 불안했다. 한국 경제가 이미 사람을 덜 쓰는 노동배제적·자본집약적 기술·산업구조로 탈바꿈해 ‘고용 없는 성장’의 늪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미 FTA라는 더욱 강력한 구조 변화도 추가될 판이다. 협정문을 관통하는 ‘개방·민영화·규제 완화’라는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를 통해 한국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권리가 무제한 강화되면 이것이 노동자에게는 무제한의 노동권 약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버틸 수 있겠지만,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정규·비정규 노동자는 그렇지 못하다. 300만 개에 이르는 중소기업에서 1042만명(고용 비중 86.5%)이 일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한·미 FTA가 비정규직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고용의 질을 더욱 나쁘게 하거나 실업을 늘리는 쪽으로 나타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수출·내수기업 간, 대기업·중소기업 간 혹은 정규직·비정규직간 임금 양극화를 심화하고 고용 없는 성장 기조를 고착화해 소득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다.

정부는 자동차, 전기·전자, 섬유 등 주력 대미 수출품 수출이 크게 늘어나리라고 본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 현재도 무관세(품목 수 36.9%, 금액 기준 52.7%)이거나 관세율이 높지 않으며, 자동차와 전기·전자의 경우는 갈수록 현지 생산 비중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무역위원회가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한국은 섬유에서는 좀 이득을 보겠지만, 자동차에서는 수출 증가율이 미미하리라고 분석했다.

설령 대기업의 수출이 늘어난다 해도 이미 국내 산업과의 전후방 연관 효과가 느슨해져 있다. 수출품 조립에 필요한 부품 소재를 주로 납품하는 국내 중소기업에는 잘해야 가물에 단비 정도일 것이다. 좋은 예가 수출 증가가 예상되는 IT(정보기술) 분야다. IT는 총수출의 36%를 차지하지만, 이 가운데 대기업 비중이 83%에 달한다. 2005년 기준 IT 분야는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 경제성장 기여율은 47%나 되지만, 고용 규모는 6.5%에 그친다.

제조업 분야에서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제약업계도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다(2005년 현재 855개사·3만7000명). 화학, 정밀기계, 식품 따위 미국이 강력한 우위를 점하는 제조업에서도 어김없이 구조조정 회오리가 몰아칠 것이다. 미국기업과의 직접 경쟁에 맞닥뜨린 국내 기업들은 더욱 비정규직 노동자의 저임금에 의존하려 할 것이고, 이것도 여의치 않으면 인력 조정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한·미 FTA를 계기로 미국의 대한국 투자가 늘어나 고용 창출 효과가 크다고 선전한다.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주로 주식 투자 같은 간접투자에 집중되었다. 반면 고용 창출 및 경영 노하우 이전에 유용한 직접투자는 고작 8%에 불과하다. 후자의 경우에도 대부분 공장 신설(Greenfield)보다는 M&A에 몰렸다. 이러한 미국계 기업의 투자 행태로 볼 때 과연 한·미 FTA로 인해 고용이 얼마나 증가할지 의문이다. 설령 정부의 주장대로 외국인 직접투자가 늘어나 고용이 증가하더라도 비정규직 비중이 높아질 개연성이 높고 M&A의 경우는 인력 구조조정을 음성적으로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어쩔 수 없이 어려움에 처한 분야에 대해서는 피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 구제 대책은? 있기는 있다. FTA에 따른 기업 및 근로자의 피해를 보상하고 산업 구조조정을 촉진하겠다는 취지로 올 4월부터 시행된 ‘무역구조조정법’이다. 문제는 이 지원 제도가 실업자의 재취업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생색내기에 그친다는 점이다. 10년간 총 2조8000억원이 투입된다고 하지만, 이 가운데 92.7%가 기업의 구조조정 지원에 충당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실업자 대책에 쓰일 재원 7.3%(2073억원)의 절반은 기존 고용보험기금에서 끌어다 쓴다.

한·미 FTA에 대해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밖에 없을 것이다. 한·미 FTA를 저지하거나 아니면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게 될 상위 10%로 어떻게든 진입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 현실적이고 상대적으로 쉬울지는 자명하다.

   
 
ⓒ뉴시스
축산 농민들이 지난 9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미 FTA 비준 반대를 외치고 있다.
 
 
농업`농촌`농민의 해체 가속화 '불보듯'

도시의 임금노동자 못지않게 한·미 FTA로 고통을 겪을 이는 농민이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농산물 개방은 농업·농촌·농민의 해체를 가속화할 우려가 높다. 기실 농업 보조금의 엄청난 차이로 말미암아 애초부터 ‘공정 무역’은 가당치 않았건만 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연간 20조원 내외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고 여러 가지 명목으로 농가 소득의 35%를 보전해주는 나라와의 경쟁은 체급이 다른 권투 선수가 싸우는 것과 같은데도 말이다.

최근 의회에 제출된 미국 무역위원회 보고서는 95쪽에 달하는 부문(품목) 간 분석에서 무려 50쪽을 농업에 할애했다. 그만큼 비중 있게 농업을 들여다봤다는 얘기다. 미국에서 산출과 고용이 증가한다면 그것은 농업에서 비롯한다는 평가도 곁들였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거꾸로 해석해야 한다. 한국 농민의 피해가 엄청날 것이라는 뜻이다.

정부도 인정하듯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분야는 축산업이다. 각각 40%인 쇠고기와 육우의 관세는 15년 후에 철폐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특히 중소 규모의 한우와 육우 사육 농민은 전업을 심각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유제품도 예외 없이 관세가 철폐된다. 10∼15년의 유예 기간이 있다지만, 규모가 크고 경쟁력이 높은 낙농인만 살아남을 뿐 서서히 낙농업 해체가 진행될 공산이 크다.

감귤 나무를 불태우는 제주 농민의 격렬한 시위가 웅변하듯 제주 감귤 농가는 FTA의 직격탄을 맞았다. 감귤은 제주 농산물 생산액의 53%, 지역 경제의 30%를 차지하는 주요 산업이다. 감귤 수확기에 평소보다 높은 관세를 부과해 자국 생산자를 보호하는 계절관세 수단을 발동할 수 있다고는 하나, 감귤 주생산 시기와 계절관세 기간이 일치하지 않아 특히 한라봉 같은 만감류는 피해가 불가피하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관세가 완전 철폐되는 15년 후 한국 감귤류 시장의 절반 가까이가 미국에 잠식당하고 15년간 누적 피해액이 1조1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고성보, ‘한·미 FTA가 감귤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서’).

값싼 미국산 오렌지와 힘겨운 경쟁을 해야 하는 감귤 농민 처지에서는 재배 면적과 생산량을 줄이는 선택을 강요당할 것이다. 국내 감귤 시장의 83%를 차지하는 제주산 감귤이 2022년에 58%에 그치리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농업 관련 산업의 개방 조건도 관세 철폐 못지않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생산과 연계된 유통· 가공·저장 등 관련 산업에 미국 자본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한·미 FTA가 발효할 경우 농산물 생산 감소액을 발효 후 5년째에는 4000억원, 10년째에는 9000억원, 15년째 1조원으로 추정했다. 이는 생산액 감소만을 피해액으로 계산한 것이어서 과소 추정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농민들의 소득 감소액을 산정하지 않았고 농축산물 전후방 산업의 피해도 아예 빠져 있다.

윤석원 교수(중앙대․농업경제학)는 협정문대로 발효된다면 상위 규모화농 10%와 영세농 30%만 남고 60%의 중농 농민은 중장기적으로 분해되리라고 전망했다. 이때 농업은 현재 규모의 30~40%만이 남고 농촌은 거의 사라지며, 농민은 2~3%만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간 60조원으로 추정되는 지금의 농업·농촌·농민의 경제 가치 가운데 60~70%가 사라지는 것이다.

농촌은 농민 삶의 터전만이 아니다. 농촌의 붕괴는 식량 주권처럼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결코 잃어서는 안 되는 가치를 유실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가공할 만한 결과를 낳는다. 이런 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일본은 한국과의 FTA를 사실상 포기했다. 중국도 농업을 움켜쥐고 있다. 이를 송두리째 던져버린 한국과 매우 대조적이다.

   
 
ⓒ시사IN 안희태
농산물 가격 등이 싸진다지만, 소비자에게도 한·미 FTA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소비자는 선택권 박탈 당하고...

개방에 따른 이득으로 흔히 소비자 후생 증대를 거론하지만, 이것이 성립하려면 수입 제품이 국산과 경쟁 관계에 있어야 한다. 만약 강력한 경쟁 우위를 바탕으로 국내 시장을 독점하게 된다면 국내 소비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수입 상품을 살 수밖에 없다. 도리어 소비자 선택권이 박탈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생필품 같은 식료품은 가격 탄력성이 낮다. 가격이 올라도 소비해야 하는 것이다.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옥수수 생산이 급감해 옥수수로 만드는 주식인 토르티야 가격이 일곱 배나 뛴 멕시코 사례는 남의 일이 아니다.

농산물뿐이 아니다. 미국 무역위원회가 농업을 빼고 최대 수혜 분야로 꼽은 의약품ㆍ의료기기, 정밀화학 등 미국산 제품이 강력한 우위를 점하는 산업은 급격한 개방의 부작용이 심각할 것이다. 예컨대 국내 제약업계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도 백혈병 환자는 글리벡 같은 치료제를 사야 한다. 현재도 한 달 약값이 400만~500만원이나 하지만, 가격이 오른들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서야 그 약을 살 수밖에 없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시행해 약값 비중을 떨어뜨리려고 했으나 미국 제약회사들이 강력히 반발해 사실상 실패했다. 인하가 예상되었던 약값은 오히려 5년 동안 1조~5조원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제약회사들의 신약 특허권을 연장해주고 임상시험 자료를 보호하는 자료독점권을 인정하는 등 이들의 요구를 대거 수용했기 때문이다.

한·미 FTA는 의료 제도의 근간을 뒤흔들 공산도 적지 않다. 한국 의료시스템의 특징은 병·의원 모두에게 건강보험 적용을 강제하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병원 주주 또는 채권 소유주에 대한 이윤 배당을 불허하는 ‘비영리 병원 규정’, 전국민이 모두 가입해야 하는 ‘건강보험 강제 가입’이라는 세 가지 제도에 있다. 국가가 의료 부문의 공공성을 강제로 유지하려는 것은 잘살든 못살든 모든 국민에게 의료 혜택을 주기 위해서다.

반면 미국에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보험이 없다. ‘시코’라는 영화에서 마이클 무어 감독이 신랄히 고발했듯이, 미국은 GDP의 14%를 의료비로 지출하면서도 국민의 16%, 5200만명이 의료 사각 지대에 놓여 있다. 의료 시스템에 관한 한 한국은 미국보다 선진적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후진적인 미국 의료 시스템이 한국에 이식되고 있다. 인천 송도의 경제자유구역에서다. 이곳에 건설 중인 뉴욕 기독장로회병원(NYP Hospital-세브란스 병원)에는 1인실 병상이600개 있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건강보험 지정병원에 비해 의료비 부담이 6~7배나 높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당초 ‘건강보험 비적용·영리병원 허용’을 경제자유구역에서 먼저 시행한 후 전국적으로 확산하거나 폐지할 작정이었는데, 확산은 가능하지만 폐지는 할 수 없다. 한·미 FTA서비스·투자 분야에 적용되는 ‘역진 금지 기제(래칫)’ 때문이다. 일단 개방된 것은 아무리 부작용이 심해도 그보다 낮은 수준으로 되돌릴 수 없다.

문제는 건강보험에서 이탈한 병원이 송도에 단 한 곳 생기지만, 그 파장이 그곳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재 민간 의료보험 시장은 10년 전부터 매년 20%씩 초고속 성장(2005년 현재 7조5000억원)을 거듭해왔지만 한·미 FTA가 발효하면 규제하기도 곤란해진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민영 보험과 경쟁해야 하는 건강보험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부자들의 반란’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고소득층은 민간 보험을 통한 고급 의료 서비스를 선호하지만, 건강보험도 들어야 하므로 이런 이중의 보험료 부담을 반길 리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AIG 같은 미국계 보험회사들이 한국의 강제가입제가 부유층의 민간 보험 가입을 막아 자신들의 잠재 이익을 침해했다며 투자자 국가 제소권(ISD)을 동원한다면 건강보험의 무력화는 시간문제다.

물론 이것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것이지만 의료 양극화가 초래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서민층일수록 양질의 의료 서비스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NHS(국가 의료체계)와 민간 의료보험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영국에서 벌어진 현실이다.

협상 선결 조건으로 수입을 재개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는 광우병이라는 치명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쇠고기 수입 조건은 ‘30개월 미만 소의 뼈를 제거한 살코기’이지만, 첫 수입분부터 뼛조각이 발견되었다. 심지어 뼛조각 수준이 아니라 척추뼈` 등뼈가 통째로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검역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았다. 최근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이 농림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것도 이를 문제삼은 것이다. 미국의 쇠고기 검역 시스템은 미국 회계감사원이 지적할 정도로 부실하다. 광우병 전달 물질인 프리온(변형 단백질)은 0.001g만 있어도 전염된다. 20∼30개월령 소에서도 광우병이 발견된 사례가 100건이 넘으며 살코기도 안전하지 않다는 보고도 잇따르고 있다.

게다가 한국인은 인간 광우병에 더욱 취약하다. 쇠고기의 뼈를 이용한 음식을 즐겨 먹는 식습관에다 유전적으로도 취약하기 때문이다(한림대 일송생명과학연구소). 예방법도 치료법도 없다는 인간 광우병은 잠복 기간이 최소 10년이다. 미국에서 광우병 소를 발견한 것이 2003년이니 2013년은 되어야 환자의 발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한·미 FTA는 공공 서비스로도 연결된다. 투자 분야 협정문에는 공공질서 유지를 위한 유보가 “그 투자가 사회의 근본 이익에 대해 진정하고 충분한 위협을 가져오는 경우에만 채택되거나 유지된다”라고 제한하고 이를 입증할 책임을 정부에 지웠다. 경쟁 장에서는 상업적으로 더 우수한 외국 상품이나 서비스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시했다. 이뿐이 아니다. 금융 서비스, 정부 조달, 의약품/의료기기, 투명성, 분쟁 해결 등에서도 한·미 FTA는 공공 서비스와 (미국의) 사적 서비스를 경쟁시키고 있다.

미국의 공공 서비스 민영화의 실험장이었던 아르헨티나 같은 비극은 ‘개방ㆍ민영화’를 강요받은 국가에서 여지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이 지나친 억측이 아니라는 사실은 미국의 무역정책 및 협상자문위원회(ACTPN)가 의회에 제출한 한·미 FTA 평가보고서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위원회는 서비스에 대해 “서비스 합의가 특별히 강력하다고 본다. 협정은 서비스 분야 미국 기업에 대단한 기회를 부여할 것이다. 특송, 법률, 회계, 의료를 포함한 중요 분야가 자유화됐다”라고 평가했다. 투자 분야는 아예 칭찬 일색이다. “협상단의 탁월한 성과에 갈채를 보낸다. 우리는 한·미 FTA가 2002년 무역법에 규정된 투자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켰다고 믿으며 투자 조항들의 포괄성에 박수를 보낸다, 경쟁 장은 기존 FTA의 반독점 관련 의무를 뛰어넘는다. 이 성과는 매우 중요하다.”

이미 한국 정부(기획예산처)는 핵심 네트워크 산업을 ‘시장형’으로 분류해놓았다. 물, 에너지, 우편, 철도 및 운송 등의 공공 서비스가 한·미 FTA를 계기로 사실상 개방을 통한 민영화로의 출발점에 선 것이다. 이것은 공공 서비스가 공공성이 아니라 기업 이윤을 위해 존재함을 의미한다. 한국 소비자에게는 공공요금 인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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