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판권 면을 보면 주소가 대개 서울이거나 경기도 파주출판단지다. 출판 유통이 서울에 있는 인터넷 서점과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를 통해 이루어지다 보니 출판사가 두 곳에 더욱 밀집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세 출판사가 있다. 어떤 출판사일지 궁금증이 인다. 지역 문화와 밀착해 책을 펴내는 세 출판사를 찾았다.

 홍성 그물코출판사

충남 홍성군 홍동면 갓골마을. 입구에 느티나무헌책방이 있다. 주민들이 ‘마을에 서점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2006년에 문을 열었다. 무인 서점이라 책을 고르고 책값을 돈 함에 넣으면 된다. 느티나무헌책방 안쪽으로 그물코출판사 편집실이 있다. 입구 왼쪽으로 홍동밝맑도서관이 보인다. 장은성씨(43)는 그물코출판사 대표이자, 헌책방 주인이자, 홍동밝맑도서관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홍성에 산다. 지난해까지는 농사도 지었는데 올해는 마을 일이 바빠서 한 해 거르기로 했다. 대신 마을에 하나뿐인 협동조합 호프집 ‘뜰’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 닭도 튀기고 청소도 한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장 반장이다.

ⓒ시사IN 신선영장은성 그물코출판사 대표(사진 맨 왼쪽)와 직원들.
홍성에 온 건 2004년 8월. 서울에서 출판사를 창업하고 두 해가 지나서였다. 생태환경 관련 책을 주로 냈는데 반응이 괜찮았다. 책이 잘나간다고 생각해 계약도 많이 하고, 책을 많이 찍어 ‘밀어내기’식으로 출간도 하고, 술도 많이 마셨다. ‘큰 출판사’가 하는 것처럼. 그러다가 나중에는 사무실 임대료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졌다. 출판사를 접을까 말까 고민할 즈음, 환경단체에서 알게 된 후배가 홍성에 오면 빈 사무실을 쓸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때는 이 마을이 풀무학교나 협동조합, 유기농으로 이렇게 유명한 마을인 줄 몰랐다(이 마을을 찾는 이가 한 해 3만명가량 된다고 한다)”라고 그는 고백한다.

홍성에 내려온 첫해에는 “놀았다”. 책 주문이 들어오면 내보내는 정도. 들로 산으로 돌아다녔다. 서울의 출판 시스템에서 벗어나 보니 어떻게 출판사를 운영할지 오히려 윤곽이 보였다. 작은 출판사는 작은 출판사에 맞게 운영을 해야 했는데, 유통과 제작 모두 큰 출판사가 하는 식으로 따라 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시사IN 신선영그물코출판사가 운영하는 느티나무 헌책방 내부.
1년이 지나고 나서 지역에 관한 책을 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물코는 전국을 대상으로 유통하는 책과, 마을에서 필요해 마을에서만 판매하는 책을 함께 만든다. 많이 찍을 욕심도 없다. 한 번 망해본 경험이 있어서 적게 찍고 적게 판매하는 것으로 족하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인터넷 서점이 그물코에서 출간한 책을 메인 화면에 올렸다. 메인 화면에 오르면 판매가 늘어나기 마련. 그 인터넷 서점에서 전화가 왔다. 메인에 책이 노출되었고, 책을 100부가량 주문할 테니 기존 도서공급률보다 할인해 보내달라고 했다. 그때 장 대표가 한 말이 걸작이다. “내가 메인 화면에 올려달라고 했나요. 인터넷 서점에서 올려놓고 책값 깎아달라니. 지금 당장 메인 화면에서 내리세요.”

‘작은 출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몇 가지 출간 원칙 같은 것도 생겼다. 일반 종이에 비해 가격이 비싸지만 웬만하면 재생용지를 쓴다. 찍는 양이 적어서 종이 가격 차이가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고 한다. 또 가급적 양장본은 만들지 않는다. 광고도 하지 않는다. 신념에 맞지 않는 책은 만들지 않는다.

ⓒ시사IN 신선영책값을 넣는 통.
홍성에 온 지 10년 가까이 되었다. 30대 중반까지 농촌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10년 정도 살아보니 시골의 삶이 정서적으로 맞는 것 같다. 요즘은 출판보다는 들일과 마을 일에 마음이 더 간다고 한다. 원체 많은 일이 벌어지는 마을이고 그 마을 일에 호기심을 느낀다. 도서관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협동조합 호프집에서 닭을 튀기는 일도 돈과는 무관한 그의 ‘즐거움’이다.

그물코출판사는 지금까지 80여 종 가까이 책을 펴냈다. 한 해에 대략 10종을 낸다. 종수를 늘리는 데 욕심은 없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안 되면 말고, 애걸복걸하지 않는다. 지역에서 쓴, 지역을 다룬 책이 언젠가는 한 방 터지는 날이 올 텐데…. 안 터지면 말고(웃음).” 그의 말처럼 ‘느슨한 출판’이다.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고 정해진 휴가도 없다. 쉬고 싶으면 쉬고 일하고 싶으면 주말에도 나온다. 서울 중심의 출판 시스템에서 벗어난 일과 삶. 장단점을 물었다. 장은성 대표는 “단점? 출판을 열심히 안 해서인지 불편한 점은 잘 모르겠다. 좋은 점? 창밖을 보면 안다. 넉넉하다. 저 밖 풍경, 얼마나 넉넉한가”라고 답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지역에서 유기농 요구르트를 만드는 주민이 책방에 들르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를 잇는 작은 점’이라는 출판사 소개처럼, 홍성에 그물코는 그렇게 있었다.

 부산 산지니

강수걸 산지니 대표(46)에게 출판은 오랜 꿈이었다. 부산에서 자랐고, 책을 읽기 위해 열심히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그를 개인적으로 아는 이는 그를 ‘엄청난 다독가’라고 부른다. 2003년 겨울, 그는 다니던 두산중공업을 그만두었다. 출판의 꿈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부산에 출판사를 차렸다. 출판사 이름은 산지니로 정했다. ‘야생의 오래된 매’를 뜻한다. 부산대 앞에 있던 사회과학 서점 이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망하지 않고 지역에서 오래 버텼으면 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경기도 파주와 서울 서교동에 출판사가 몰려 있는 것은 한국의 예외적인 현상이다. 지역에서도 출판사를 차리는 게 가능하겠다 싶었다.” 만약 대구에서 자랐으면 대구에서, 광주에서 자랐다면 광주에서 출판사를 차렸을 거란다.

하지만 막상 지역에서 출판을 하려니 난점이 있었다. 처음에는 부산에서 필름을 출력하고 인쇄를 했다. 파주에서 제작해 전국으로 보낼 때보다 부산에서 제작해 전국으로 배본하는 게 더 비용이 많이 들었다. 단도 인쇄는 어느 정도 가능했는데 컬러 인쇄는 품질에 문제가 있었다. 결국 필름만 부산에서 뽑고, 택배로 파주에 보내 인쇄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시사IN 신선영강수걸 산지니 대표(위)는 지역 출판사의 생존방법으로 ‘3등 전략’을 지향한다.
산지니는 ‘부산 출판사’로서의 자부심이 강하다. 필자 가운데 부산 사람이 많고 부산을 소재로 한 책을 많이 낸다. 2005년 10월 산지니가 낸 첫 책도 영화 속 부산의 문화와 풍경을 담은 〈영화처럼 재밌는 부산〉과 해운대 지역 주민공동체의 이야기를 담은 〈반송 사람들〉이었다. 부산 쪽 비평가들이 내오던 문학 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도 비용 문제로 발행이 중단될 뻔했는데 산지니가 넘겨받아 계속 펴내게 되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하는 이벤트는 일절 안 한다. “돈이 들어가니까.” 하지만 지역에서 하는 ‘저자와의 만남’ 행사는 2009년부터 매달 열고 있다. 지역 출판사가 지역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지역 출판사의 길이 애초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떠올린 게 3등 전략이다. “2등이 1등을 따라가려고 무리하다간 망한다.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3등 전략으로 기업의 고유한 색깔을 가져가면서 성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자기 색깔을 유지하면서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하고 진지전을 펼치는 것, 부산에서 출판하면서 부산 사람들의 협력을 끄집어내려 했다.” 9년 동안 200여 종 가까이 책을 펴냈다. 1년에 24~25종을 낸다. 4년째부터 흑자로 전환했다.

강수걸 대표는 지역 문화의 거점이 되는 출판사를 꿈꾼다. 그런 점에서 책 문화를 소홀히 하는 행정에 아쉬움을 느낀다. “유럽에는 도시 중심부에 서점이 많다. 서점이 있어야 지역 문화를 살릴 수 있다고 보고 임대료를 지원하기도 한다. 또 파리 도서관이 파리에 있는 출판사의 책을 파리의 서점에서 구입하는 방식으로, 지역 출판사를 키운다. 그게 출판문화의 종 다양성을 유지하는 노력인데, 한국에는 그런 노력이 거의 없다.”

출판계 불황으로 지역 출판사도 경영 여건이 좋지 않다. 연초에 올해 목표를 ‘원칙을 지키면서 망하지 않고 버티는 게 중요하다’로 정했다. 강 대표는 “산지니가 지역에서 독자와 만나는 문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남해의봄날 출판사 제공정은영 남해의봄날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와 직원들. 정 대표는 내년에 책을 4~5종만 낼 계획이다.
 통영 남해의봄날

처음부터 통영에서 회사를 차릴 생각은 아니었다. 정은영 ‘남해의봄날’ 대표(41)가 경남 통영으로 내려온 건 건강 때문이었다. 잡지사 기자, 어느 대기업 프로모션 기획팀 등에서 일하다 2003년 말에 콘텐츠 기획 전문회사를 창업했다. 죽기 살기로 일했다. 회사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건강에 적신호가 울렸다. 2005년 고객과 인터뷰를 하다가 쓰러져 119 구급차에 실려 갔고, 2009년 말에 또 한번 쓰러졌다. 과로로 몸이 방전된 상태였다. 보다 못한 남편이 ‘서울을 떠나 쉬자’고 했다. 2010년 3월, 안식년 삼아 통영으로 내려갔다. 그해 12월까지 통영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먹고 자고 몸을 다스렸다. 과로로 쓰러지면서 인생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했다. ‘왜 이렇게 사나.’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고 나니 서울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올라가기가 싫어졌다.”

통영에서 지역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차린 회사가 스토리텔링 전문회사 ‘남해의봄날’이다. 기업 브랜드 구조를 짜고 온·오프라인의 여러 미디어를 통해 일관된 메시지를 구현해주는 일을 한다. 가령 통영에 거북선호텔이라는 작은 호텔이 있는데, 건물을 짓기 전부터 이 호텔의 콘셉트를 잡고 공간을 기획하고 온·오프라인 홍보물을 기획 제작했다. ‘아이들이 좋아서’ 문방구를 하던 부부를 도와 ‘나무 아래 식탁’이라는 분식집으로 리모델링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우리는 모든 서비스가 집중된 서울을 떠나 우리를 더 필요로 하는 이 지역에서 뛰어난 재능과 기술력을 갖춘 지역의 작은 기업들과 사람들의 성공을 도우며 그들과 함께 성장할 것’이라는 회사 소개말처럼.

출판은 남해의봄날의 또 다른 일이다. 기업 관련 일이 절반, 출판 일이 절반이다. 남해안 구석구석에 숨겨진 이야기와 세상 곳곳에서 용기 있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펴내고자 한다. 회사가 알려지기 전까지는 저자 파워에 의지하지 않는 ‘기획출판’을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확실한 콘셉트를 정하고 필자를 여러 명 모으는 방식으로 책을 펴냈다. 또 남해의봄날과 연관된 책을 초반에 내기로 했다. 첫 책 〈행복한 열 살 지원이의 영어 동화〉는 영국에 사는 한국인 아이가 영어 동화를 쓰는 내용이었다. 아이가 스토리텔러인 셈. 스토리텔링 전문회사의 출발점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 남해의봄날처럼 규모가 작은 회사에 다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 남해의봄날 직원들처럼 지역에 정착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 등을 펴냈다.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는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 편집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얼마 전에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주최 우수출판기획안 공모에서 대상(〈가업을 잇는 청년들〉)을 받기도 했다. 출판계에 ‘남해의봄날’이라는 브랜드를 확실히 인지시켰다.

정은영 대표는 내년에 책을 4~5종 낼 계획이다. 종수를 늘릴 생각은 없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오래 두고 볼 만한, 잘 만든 책을 내고 싶어서다.” 번역서는 내지 않는다. 책 만드는 재미가 없어서다. 조만간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가 치열한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펴낸다. 절반은 필자가 글을 쓰고, 절반은 그와 가장 가까우면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그 사람에 대한 글을 쓰게 하는 방식이다.

통영에서의 삶은 정은영 대표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우선 건강해졌다. 지역에서 출판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돈을 많이는 못 벌더라도 수지타산을 맞출 것 같다. 적게 벌면 적게 쓰면 된다. 무엇보다 마음이 바뀌었다. 미래 가치에 투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남해의봄날은 정 대표의 삶을 온전히 바꿔놓았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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