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아이 얻고 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동네 축구클럽 코치로 일하며 새 인생을 기웃거리던 어느 날. 아는 경찰 소개로 만난 시나리오 작가에게 지난 인생 얘기 좀 들려줬더니 자꾸 켄 로치 감독을 만나보라고 성화다.
못 이기는 척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랬더니 덜컥 주인공 역을 맡겨버린다. 난생처음 해본 연기. 당연하게도 난생처음 받아보는 스코틀랜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칸 영화제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한 것도 난생처음, 덕분에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한 SF 영화에 전격 캐스팅되는 행운도 난생처음. 그저 모든 게 다 난생처음인 나날들.
여기까지가 배우 폴 브래니건의 실제 인생 역전 스토리다. 첫 번째 출연작이면서 분명 영원한 대표작으로 기억될 영화 〈앤젤스 셰어:천사를 위한 위스키〉에서 그는 사실상 자기 자신의 인생을 재연했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영화 속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켄 로치가 아니라 위스키라는 정도?
청년 실업자 로비(폴 브래니건)가 싸움박질에 휘말려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근로봉사 나간 첫날. 당장 자기 딸과 헤어지라며 장인어른이 로비를 흠씬 두들겨 팬다. 그 안쓰러운 광경을 사회봉사 교육관 해리 아저씨(존 헨쇼)가 보게 되었다. 집으로 데려가 건넨 위로주 한 잔. 평생 스코틀랜드에 살았으면서도 난생처음 마셔보는 스코틀랜드 몰트위스키.
해리 아저씨 덕분에 뒤늦게 위스키의 세계에 입문한 로비는 자신의 후각과 미각이 꽤 쓸 만하다는 걸 알게 된다. 때마침 열리는 세계 최고 가격의 희귀 위스키 경매에서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기로 마음먹는 로비. 가장 ‘잉여로운’ 또래 친구 셋을 끌어들여 함께 위스키 여행을 떠난다. 가장 은혜로운 결말을 기대하며 모종의 작전을 실행에 옮긴다.
폴란드의 영화감독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가 이렇게 말했다던가. “켄 로치가 허락한다면 기꺼이 그의 커피 심부름이라도 하면서 촬영 현장을 엿보고 싶다. 도대체 그가 어떤 방법으로 그토록 훌륭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지 알아내는 게 나의 소원이다.”
연기 한번 해본 적 없는 동네 청년을 데리고 〈앤젤스 셰어…〉 같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작 위스키 한 병에도 우리 시대의 희극과 비극을 모두 담아 숙성시키는 연출 내공, 그건 절대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는 재능이 아니다.
웃음은 스트레이트, 감동은 온더록
〈레이닝 스톤〉 〈랜드 앤 프리덤〉 〈빵과 장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그리고 〈자유로운 세계〉. 평생 노동자 편에 서서 가난한 자의 꿈과 희망과 좌절과 분노를 “그토록 훌륭한 영화”로 증류해낸 영화감독. “직업도 꿈도 없이 혹독한 미래에 직면한 전 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이 마냥 “한심한 존재”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이 영화를 만든 77세의 노장 감독. 오크통의 향과 색이 배어들어 맛있는 위스키가 빚어지듯, 흔해 빠진 청년 백수 이야기도 켄 로치의 향과 색이 배어드니 참 향긋하고 따뜻한 영화로 맛있게 빚어졌다. 웃음은 스트레이트, 감동은 온더록으로 즐기는 작품. 2012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영화 제목 앤젤스 셰어(Angel’s Share·천사의 몫)는 위스키나 와인을 오크통에 보관해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해마다 그 분량이 2~3%씩 자연 증발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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